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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군의 독일 전함 틸피츠 폭격

슈트름게슈쯔의WarandHistory 작성자: 슈트름게슈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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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2-15 23:30:01

WW2 British Air Force Dive Bombing German Battle Ship Tirpitz

 

 

 

 

 

 

전함 틸피츠(Tirpitz) 진수식에 참석한 아돌프 히틀러와 독일 해군 레다 제독 - 1939년 3월 1일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전함 틸피츠(Tirpitz)는

1936년 11월 2일 제작을 시작하여 1939년 3월 1일 진수시킨 비스마르크급 전함이었다.

전함 틸피츠는 무게가 42900톤에 무장으로 380mm 함포 8문과 150mm포 12문과

105mm 포 16문과 37mm포 16문 그리고 20mm 대공포 12문및

8개의 21인치 어뢰 발사관을 장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찰용으로 아라도 Ar -196 수상비행정 4대를 탑재시켰다.

최고시속은 39노트(시속 56km)였으며 항속거리는 16430km 였다.

  

 

 

독일군의 아라도 Ar-196 수상 비행정

 

 

 

독일 전함 틸피츠(Tirpitz)는 비스마르크(Bismarck) 전함의 자매함으로

독일 해군(German Kriegsmarine)의 비스마르크급(Bismarck class) 2번함이다.

 틸피츠의 이름은 알프레드 폰 틸피츠(Admiral Alfred von Tirpitz) 제독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전함은 거의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고 사실상 연합군 함선을 향하여 대포 한번 쏘아본 적이 없지만,

노르웨이 연안의 여러 항구를 순시하며 존재만으로 연합군 해군을 압박하였는데,

만일 틸피츠가 공세로 나온다면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과 항공기가 필요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인들 은 항구의 틸피츠를 가리켜 "북부의 외로운 여왕"(Den ensomme Nordens Dronning)이라고 불렀고,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틸피츠를 "야수"(The Beast)라고 불렀다.

틸피츠 전함은 자매함 비스마르크보다 용적이 조금 더 크게 만들어져

 유럽에서 만든 전함 중 가장 규모가 컸다.

1944년 11월 12일 영국 공군의 랭카스터 폭격기가 투하시킨

톨보이 폭탄에 의해 틸피츠는 피요르드 협만의 정박지에서 격침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거함 틸피츠는 1939년 4월 1일 취역하였다.

당초 이 전함은 비스마르크와 마찬가지로 북대서양 지역의 연합군 수송선단을

차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건조되었지만

 비스마르크가 격침된 이후 히틀러는 전함에 의한 작전 효율성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잠수함들이 이 역할을 대체하게 되면서 틸피츠는 제한된 임무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1942년 초 북극해 수송선단(Arctic convoys)과 영국 컴만도우 특공대의 기습을 압박하기 위하여

 노르웨이로 이동한 틸피츠는 이후 이곳의 절벽해안인 피요르드(fjord)에서 전쟁기간 대부분을 보내게 되었다.

독일 해군의 틸피츠가 행동에 나서면 영국 해군과 미국 해군의 많은 자원이 묶이게 된다.

1942년에 두차례, 1943년에 한차례 노르웨이에서 제한적인 공세에 동원되었는데,

비록 틸피츠에 의해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큰 위협을 느낀 연합군은 틸피츠가 항구에 있을때

이를 격침시켜야 한다고 판단하여 영국 공군은 랭카스터 중 폭격기에 의해

1944년 11월 12일 틸피츠를 전복시키는데 성공하기까지 독일 전함 틸피츠 폭격 작전에 많은 공작을 수행하였다.

 

 

 

 

 

발틱해의 독일 전함 틸피츠 - 1941년

 

독일 전함 틸피츠는 연합군의 북대서양 수송선단의 위협적인 존재였다.

2차 세계대전 중반기에는 영국 공군의 전략 폭격을 피하여 독일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안에 정박시켜 경계를 강화시켰다.

하지만 영국 공군의 집요한 폭격 작전을 피하지는 못한다.

독일의 마지막 거함이었던 틸피츠는 1944년 영국 공군의 폭격에 의하여 그 최후를 맞이 하게 된다.

  

 

 

 

발틱해에서 함포 사격을 가하는 독일 전함 틸피츠 - 1941년 여름

 

 

 

틸피츠 전함의 아라도 Ar 196 수상 비행정 - 1941년

 

 

 

트론헤임의  피요르드로 항진하는 전함 틸피츠 - 1942년

 

 

 

노르웨이 트론헤임에 정박한 독일 전함 틸피츠 - 1942년 여름

 

 

 

 

선체를 위장한 독일 전함 틸피츠

 

 

 

전함 틸피츠 함상의 독일군 위문 공연 - 1942년

 

 

 

 

노르웨이 나르빅 근처의 보겐 항에 정박해 있는 틸피츠 - 1942년

 

 

 

뢰셀스프룽 작전에 투입된 전함 틸피츠 - 1942년 7월 5일

 

뢰셀스프룽 작전(Operation Rosselsprung)은 독일 해군이

1942년 여름 동안 연합군의 북극해 수송선단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2개의 함대가 소집되어 준비 되었다.

트론헤임(Trondheim)에서 틸피츠와 아드미랄 하퍼(Admiral Hipper),

나르빅(Narvik)에서 아드미랄 셰어(Admiral Scheer)와

뤼초우(Lützow)등 9척의 구축함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알테피오르드에 소집되어 있다가 호위함을 발견하면 베어 아일랜드를 지나칠때 공격하였다.

1942년 6월 27일 아이슬란드를 떠난 PQ-17은 많은 호위함들이 따랐으며,

또한 이 지역에는 당시 강력한 연합군 기동부대(Task Force)들이 작전중이었다.

7월 1일 혹은 7월 2일 호위함을 발견되자 틸피츠는 알테피오르드에 있던 트론헤임에서 호위를 받으며 떠났다.

1942년 7월 4일 틸피츠가 호위함들과 함께 항구를 떠났다는 정보가 연합군에 포착되자

영국 정보부는 이를 수송선단을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여 수송선단의 산개를 명령하였다.

 밀집 선단이 전함과 마주칠 경우 예상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호위도 없이 뿔뿔이 흩어진 수송선들은 독일 유보트(U-boat)들과 독일 항공기들의 좋은 먹이가 되어

10일 동안 24척의 상선이 침몰하게 되었다.

7월 5일 틸피츠는 짧은 출격을 했지만 곧 발각 되었다.

이윽고 독일 레더 제독의 명령에 의해 귀환하였다.

영국 본토 함대(Home Fleet), 특히 항공모함에 의한 실현가능한 공격에 대한 걱정때문이었다.

 출격은 중지되고 틸피츠는 항구로 돌아왔다.

 

 

 

노르웨이의 알텐 피요르드(Altenfjord)로 들어오는 독일 해군 전함 틸피츠 - 1942년

 

 

 

 

 

노르웨이의 코 피요르드(Kåfjord)에 정박해 있는 독일 해군 전함 틸피츠 - 1943년 3월

 

1944년 4월 수리를 마친 틸피츠는 다시금 연합군에 위협적인 존재로 돌아왔다.

영국은 텅스텐 작전(Operation Tungsten)을 기획하여 항모를 동원, 

항공기의 힘으로 틸피츠를 격침시키고자 하였다.

2척의 전함, 2척의 항모, 5척의 호위항모, 2척의 순양함, 16척의 구축함과

2척의 유조선으로 구성된 함대가 출발하였고,

계획보다 하루 빠른 4월 2일 항해 시험을 위해 대기중이었던 틸피츠를 향해 항공기들을 출격시켰다.

공격은 페어리 바라쿠다(Fairey Barracuda) 뇌격기들과 호위기들로 구성된

2개 비행대의 순차 폭격 진행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뇌격기들은 수중 폭발 피해를 입히기 위한 대잠탄, 갑판을 뚫기 위한 철갑탄,

상부 구조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소형 폭탄들과 승무원 및

대공병기에 피해를 입히기 위한 일반 폭탄 등 다양한 폭탄들을 적재하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방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승무원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전투기 일부는 갑판에 기관총을 난사하기도 하였으며 05:30에 시작된 공격은 08:00에 끝났다.

영국 해군은 3대의 항공기를 잃었고, 틸피츠는 승무원 122명 사망에 300명 가량의 부상자를 냈지만

 함선 자체의 피해는 상부 구조물 일부에 국한되었다.

약간의 누수를 빼고는 본체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이 피해를 수리하는데 2개월이 걸렸다.

 

 

 

 

독일 전함 틸피츠에 투하시킬 폭탄을 준비하는 영국 공군대원들

 

 

 

영국 해군 퓨리어스 항공모함 함상의 훼어리 바라쿠다 뇌격기에 장착된 폭탄에

 

노르웨이 알텐 피요르드의 독일 전함 틸피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는 영국 수병의 익살 - 1944년 4월 3일 

 

  

 

영국 항모 퓨리어스에서 발진하여 노르웨이 알텐 피요르드에 정박해 있는 독일 전함 틸피츠 공격 작전시

 

훼어리 바라쿠다 뇌격기 조종사들에게 급강하 폭격의 지점을 브리핑 하는 영국 공군 827 항공대 지휘관 해리슨

 

 

 

영국 해군의 훼어리 바라쿠다(Fairey Barracuda) 뇌격기에 폭탄을 장착시키는 영국 공군 827 항공대 대원들

 

 

 

영국 공군 827 항공대의 15차례에 걸친 급강하폭격을 받은 독일 전함 틸피츠 - 1944년 4월 3일

 

 

 

영국 공군이 독일 전함 틸피츠에 3발 투하했던  지진폭탄 톨보이(Tall Boy)

 

 

독일 전함 틸피츠를 격침시키기 위하여 영국 공군은

 1944년 9월 15일 패러베인 작전(Operation Paravane)에서는 러시아에서 출발한

제 617, 제 9 편대 소속 아브로 랭카스터(Avro Lancaster)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반즈 웰리스(Barnes Wallis)가 설계한 5톤 톨보이(Tallboy) 폭탄과 시험 제작된 5천 파운드

 '조니워커(Johnny Walker)' 수중 보행 지뢰를 투하하였다.

연막 덕분에 대부분의 폭탄이 빗나갔지만 한발이 명중, 심각한 피해를 입히면서

틸피츠는 더이상 연합군 수송선단을 공격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독일은 1944년 9월 23일 해군 참모 회의를 통하여 틸피츠가 

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연합군측에 숨길 것을 의결하였다.

같은해 10월, 더이상 전함 전력으로 간주되지 않게 된 틸피츠는

 노르웨이 지역의 연합군 침공을 방어하기 위한 해상 포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남쪽 트롬세(Tromso)로 이동되었다.

이로써 틸피츠는 스코틀랜드(Scotland) 일대 비행장을 사용하는 영국 공군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1944년 10월 28일 영국 공군의 두번째 공격인 어비에이트 작전(Operation Obviate)이 개시되었다.

로지머스(Lossiemouth)에서 개조된 랭카스터 폭격기들이 톨보이 폭탄을 적재하고 날아올라

틸피츠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였지만 바다안개에 가려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작전으로 틸피츠의 프로펠러 축이 휘어졌다.

 

 

영국 공군이 투하한 3발의 지진폭탄 톨보이(Tallboy)에 의해 최후를 맞은 독일 전함 틸피츠 - 1944년 11월 12일

 

영국 공군의 독일 해군 전함 틸피츠에 대한 마지막 공격 가테키즘 작전(Operation Catechism)은

1944년 11월 12일 이루어졌고, 불행히도 연막 장치가 가동되지 않았다.

 제 617, 제 9 편대의 랭카스터들이 폭격을 개시하였고, 틸피츠에 떨어진 세 발의 톨보이 폭탄중

하나는 포탑에 맞고 끝났지만 두발이 선체 장갑을 뚫어버리며 200피트 구멍을 내었다.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3번째 포탑이 폭발하였고, 틸피츠는 수분 내에 전복되었고

1,700 명의 승무원중 1천여 명이 수장되고 말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왜 독일 공군(Luftwaffe)이 이 폭격을 막지 못했는가 하는 사실이다.

당시 한대의 폭격기가 격추되었지만 이는 대공포에 의한 것이었다.

작전에 동원된 랭카스터 B.1 스페셜(Special) 기종은 중앙 상부에 단 하나의 기관포 포탑만이 있었고,

 장갑 일부게 제거된 형태라 전투기 공격에 상당히 취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공군이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것은 자가당착이었다.

폭격기들을 발견한 독일군은 이들이 노르웨이의 

발더포스(Bardufoss) 비행장을 폭격하러 가는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틸피츠 측의 원조 요청에 대한 독일 공군의 응답은 '전투기 부족' 이었다.

방공체제는 무력함을 드러냈으며, 이 지역의 독일 조종사들은

새 포케불프(Focke-Wulf 190) 전투기에 숙달되지 못한 상태였다.

틸피츠가 침몰한 이후 노르웨이 지역 제 5 전투비행단(Jagdgeschwader) 지휘관인

하인리히 소령(Heinrich Ehrler)은 직무 태만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재심에서 3년으로 감형,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지휘권을 박탈당한 채 독일 내로 배속되었다.

 

 

 

폭격후 전복되어 버린 독일 전함 틸피츠

 

 

 

 

파괴되어 전복된 독일 전함 틸피츠의 선체를 고철로 처리하는 분리 작업 선박 

 

 

 

 

 

 

 

 

photo from : maritimequest.com

                              forum.worldofwarships.com

댓글 1

  • best 엄청난 밀덕 2017-02-17 추천 1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언뜻보면 약하고 보잘것없는 항공기들일지라도 방심하면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 엄청난 밀덕 2017-02-17 추천 1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언뜻보면 약하고 보잘것없는 항공기들일지라도 방심하면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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