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코너 전사적지답사기

알렉산드리아와 스웨즈운하 전쟁역사

전사적지답사기 작성자: 부국강병조국통일
조회: 12483 추천: 0 글자크기
0 0

작성일: 2017-01-03 15:20:46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포트 사이드!

그곳에도 전쟁의 상흔은 남아 있었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BC 333년 이곳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과거 이 나라의 수도였다. 이집트 대문역할을 하는 수에즈운하 북단의 포트 사이드. 그러나 이 항구도시들도 전쟁의 참화를 피해 나갈 수는 없었다.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카이트베이 요새 전경




▶항구의 파수꾼 카이트 베이 요새


지중해를 끼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카이로에 비해 훨씬 정돈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정국 불안정으로 주요 도로에는 빨간 베레모의 이집트 헌병들이 지프차와 장갑차에 분승하여 순찰을 돈다. 이런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시민들은 자유롭고 활기차다.


알렉산드리아 항 끝부분에는 시퍼런 지중해를 지켜보는 웅장한 성곽이 버티고 있다. 이곳은 항구의 파수꾼 “카이트 베이 요새”다. 특히 그 성채 안에는 2300여 년 전에 세워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파로스(Pharos) 등대가 있다. 높이 135m, 가시거리 43Km에 달했다는 이 건축물은 현재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 언저리에서 어떻게 24시간 불꽃을 피웠으며 거대한 렌즈는 누가 만들었을까? 1303년, 지중해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이 등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고 현대과학은 아직도 그 의문점을 풀지 못하고 있다. 

 


▲ 알렉산드리아 시내 전경(멀리 계엄하의 이집트군 헌병들이 보임)



▶해군박물관의 알렉산드리아 전쟁역사


요새 내부에는 이집트 해군역사와 이 항구의 전쟁사를 전해주는 해군박물관이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전쟁이 있었다. 또한 이 도시는 과거 영국해군의 모항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물관 전시물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이 항구의 전투사례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1941년 12월 18일 심야, 이탈리아 해군특전요원 6명이 잠항정 3대에 분승하여 항구로 은밀히 침투했다. 이들은 영국군함에 고성능 폭탄을 장착하였으나 2명은 생포되고 4명은 육지로 탈출한다. 다음 날 아침, 폭발시간이 닥아 오자 포로는 영국해군에게 대피할 것을 통보했다. 곧 이어 대폭발과 함께 전함 “밸리언트”호와 “퀸엘리자베스”호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유조선 ”사고나“호도 폭발충격으로 침몰하였다.” 이처럼 사소한 경계소홀이 대형 함정의 격침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멀지않은 해안도로 옆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중동전쟁에서 전사한 이집트 해군장병들을 위한 대형추모탑이 말없이 지중해를 지켜보고 있었다. 

 


▲ 알레산드리아 항구의 이집트 해군장병 추모탑



▶수에즈 북단의 숨구멍 포트 사이드 항


포트 사이드는 인구 50여 만의 작은 도시이며 수에즈 운하 최북단 항구이다. 또한 이집트 물류교통의 요지로 거리도 깨끗하며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1일 100여 척의 선박이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홍해로 빠져 나간다.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수시로 전쟁에 휘말리는 뼈아픈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였다. 

 

포트 사이드 군사박물관은 시나이 전쟁을 중심으로 근·현대 전쟁역사를 잘 정리해 두고 있다. 특히 1956년 11월 5일, 영국·프랑스군과 이집트시민군 사이의 처절한 전투장면 사진과 그림들이 꽉 차 있다.


“45분간의 영국군함 시내포격, 공수부대 낙하에 이어서 상륙부대 진입, 대항하는 이집트 시민군들···” 이런 전투가 시내전역에서 한동안 계속 되었다고 한다. 야외에는 1973년 10월 전쟁 당시 격추된 이스라엘 공군 팬텀기 꼬리와 노획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내에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인지 초저녁 시간에 의외로 어린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모여 놀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한국인”에 대한 호기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순식간에 몰려 온 학생들의 질문공세에 정신이 없다. 특히 ‘무하마드 알리(13세)’는 학교 태권도 대표선수다. 자신의 꿈은 한국에서 주최하는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는 한 때 15만 명에 달하는 수련생들이 있었고 지금도 이 나라는 태권도 세계강국으로 이름나 있다. 

 


▲ 포트사이드 군사박물관에서 만난 이집트 학생들
 

 

 


▲ 1956년 시나이전투 시 포트사이드 시민군의 전투장면
 

 

 


▲ 포트 사이드의 시가지 전투 장면(박물관 내부 전시물)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요르단으로.


다시 시나이 반도를 거쳐 가는 요르단 여정을 계획했다. 카이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터번을 쓴 청년의 의도적인 접근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였다. 혹시 인질범 끄나풀은 아닌지?


다소 멀지만 시나이 해안선을 따라 운행하는 안전한 코스의 버스에 올랐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뒷자리에 앉아 가급적 외국인 신분을 감추었다. 차장 밖의 해변에는 건축이 중단된 콘도시설이 즐비하다. 오전에 출발한 버스가 밤늦게 시나이반도 중간의 “다합(Dahab)” 외곽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야 한단다. 깜깜한 어둠에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런데 “웬걸!” 이곳은 택시가 픽업트럭이다. 화물칸에 5-6명씩 웅크린 승객들을 보니 흡사 납치범에게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때 나그네를 친절하게 인도하는 의인(?)이 나타났으니 그는 바로 카이로 터미널의 그 청년이다. 알고 보니 그는 시내에 있는 한 식당의 종업원이었다. 지레 의심하며 그와 대화를 기피했던 행동에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 시나이 반도 이집트 다합시의 택시(화물과 승객 동시 탑재 가능)
 

 


▲ 납치범 끄나풀로 오인했던 이집트 청년(카이로에 거주하며 다합의 식당에서 일함)











댓글 0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