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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전쟁장비 10가지.

전쟁사 작성자: 탑건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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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7-15 13:13:04

*주: 순서는 해당 무기가 발명된 연도에 따라 정해졌으며,
(고대전차->코페쉬->합성궁->등자->장창->사슬갑옷->석궁->대포->총기->비행기)
기준은 '세계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에 따른것입니다.
예를들자면 거북선이나 일본도도 놓고보면 우수한 장비임에 틀림없지만,
세계사에 대한 공헌도는 낮고 국지적으로 사용된 장비이므로 순위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동물이 이끄는 전차(War Chariot)

전차는 다른말로 '병거'나 '병차', '전거'라고도 부르는데, 전차는 바퀴 발명 이후 기원전 23세기경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사륜전차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 전차는 육중한 목재로 차체를 만들고 바퀴살이 없는 통바퀴 네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나귀가 끄는 형태인데, 이 전차를 이후 기원전 20세기경 악카드인들이 바퀴살을 달아 날렵하고 원거리주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아직 등자가 개발되기 전이라 기병은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시대에 전차는 비교적 쉽게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공격할 수 있는 훌룽한 도구였고 곧 모든 문명권에 퍼지게 되었다. (기원전 13세기쯤에는 중국과 고조선에도 전차가 전파되었고, 춘추전국시대 초기 대부분의 전투는 거의다 전차전이었다.) 전차가 발명되면서 청동기시대의 전투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원정거리도 넓어지게 되는데, 기원전 15세기경 히타이트의 무르실리 1세가 바빌론을 점령한 원정도 전차를 이용해 1000여km 가까이 원정할 수 있었다.

전차는 보통 3인 (운전수, 궁수, 창수)이 승차하게 되어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경우는 운전수와 궁수 2인이 탑승해서 싸웠다. 기원전 13세기 이후로 이집트가 전차를 이용해서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일명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고 알려진 '투트모세 3세 (?~BC 1426)'는 전차육성에 힘을 쏱은 결과 시나이와 가나안 지방까지 이집트의 판도를 넓힐 수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집트를 '전차의 강국'으로 묘사하고 있고, 솔로몬 왕이 이집트에서 주로 전차를 구입했다고 기록하는데 실제로 이집트의 전차는 성능이 좋아 다른 나라로 많이 수출했다.

기원전 8세기 이후 강국으로 부상한 아시리아도 전차를 사용했는데, 이 시대의 전차는 바퀴축에 낫이나 창날을 달아 전차 옆에 접근하는 보병이나 타 전차를 공격할 수도 있게 개량이 되었다. 하지만 전차의 최대단점인 '평지에서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는 점'과 '기마에 비해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 때문에 그리스,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선 의장용과 전차경주를 통한 오락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현 시대 대전차의 조상격이라고 볼수 있다.



코페쉬

코페쉬는 고대 이집트의 무기지만, 이런 형태의 무기는 기원전 30~25세기경 수메르인들이 고안한 최초의 청동검의 형태에서 기원한다. 이 청동검은 칼날 중간부분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방패 너머로 적을 공격하거나 베는 힘을 극대화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실제로 코페쉬의 위력은 엄청났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권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코페쉬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발달하고 가장 잘 알려진 모양은 '이집트식'이다. 코페쉬는 훗날 야금술의 발달로 철 재련이 가능해짐에 따라 철로도 주조되었는데, 이후 아랍지방의 언월도와 고대 그리스의 코피스, 사벨의 먼 기원이 되기도 하다.



합성궁 (Composite bow)

활은 기원전 1~2만년경 중석기시대부터 사용해온 유서깊은 무기이다. 하지만 초기의 활은 한가지 재료로만 만드는 단궁이었고, 초기의 활은 투창과 사정거리가 거의 비슷해 전쟁용 무기로써는 이용의 한계가 있었다. 투창에 비해 위력이 한참 모자라기 때문에 대부분 초기 문명권에선 활보단 투창을 선호했다.

이후 기원전 20세기 악카드인들이 나무와 쇠뿔을 이용해 원시적인 합성궁을 만들게 되는데, 악카드인들은 사르곤 대왕을 중심으로 새로이 개량된 합성궁과 전차를 이용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을 통일하게 된다. 합성궁의 위력은 단궁을 훨씬 능가했고, 잘 쏘면 가죽갑옷은 물론이고 청동방어구도 관통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전차와 합성궁의 조합은 무시무시했고, 이는 악카드인이 정복제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합성궁 제작법은 전차와 함께 여러 문명권으로 퍼져 나갔는데, 합성궁의 위력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엉뚱하게도 북방 유목민족들이었다. 합성궁 제작법은 고대 스키타이부터 시작해서 몽골, 한국에도 퍼져나갔는데 현재 한국의 국궁은 세계적으로 그 성능을 입증받은 합성궁이다.



등자 (Stirrups)

등자의 개발로 인해 사람들은 안장에서 안정적인 자세로 말을 탈 수 있게 되었다. 이 등자는 기원전 4세기경 북방 유목민족들이 처음 개발했는데, 기원전후에 한국에도 전파되었다. - 하지만 중국에는 2~3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자가 전래되었다. - 우리나라의 등자는 고대 북아시아 유목민족들이 사용했던 등자와 같은 구조와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등자가 우리나라 고대사를 푸는 중요한 수수깨끼가 될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이 등자를 사용함에 따라 기마병은 좀더 안정적인 자세로 돌격할 수 있게 되었고, 사격도 좀더 정확해질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기병들은 말을 탈때 말에 매달리다시피 한 자세로 있었는데, 창으로 적을 찌를경우 그 반동력으로 인해 말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적을 찌르는 동시에 창을 손에서 놓는 고도의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등자는 중국에는 2~3세기에, 유럽에는 8세기가 되어서야 전래되었는데 이후 국가들의 중장기병 - 유럽의 기사계급, 비잔티온 제국의 '카타프락토스', 이슬람과 중국권의 중장기병, 고구려 개마무사등등 - 을 양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장창 (Pike)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 세계는 등자의 개발과 마갑, 갑주의 발달로인해 기병은 보병의 보조역에 불과했던 역활에서 벗어나 전장의 주력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 중세 유럽의 기사는 무식하긴 하지만 기병 본연의 돌파력을 극단적으로 잘 살린 부대중 하나다. - 보병이 사용하는 기존의 무기체계로는 중장기병의 속력을 실은 돌격을 막아내기 힘들었고, 때문에 기병을 제압하는 방면으로 공격거리가 긴 무기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선 장창부터 설명하려고 한다.

창은 구석기시대부터 투창부터 시작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전통적인(?)무기이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경 마케도니아에서 창의 길이를 4~5m씩 늘리는 극단적인 장창을 만들어냈는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제는 이 장창 밀집대형(팔랑크스)을 기반으로 그리스를, 아울러 페르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명권을 석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창대형은 전세계적으로 비교적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신라가 675년 당나라와의 기벌포 전투에서 장창부대를 이용해 당나라 기병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이러한 장창부대는 훗날 유럽에서 총이 사용되고 나서 소총수를 엄호하기 위한 형태로 최종 발전했는데, 철판으로 만든 흉갑과 5m가 넘는 장창을 이용해 적 기병대의 돌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부대였다. 하지만 총이 점점 발전해감에 따라 장창은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고, 1703년 영국의 군제개혁이후 장창병은 더이상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슬갑옷 (Chain armour)

사슬갑옷은 거의 대부분의 유라시아 문명권에서 널리 사용된 갑옷이다. 처음 사슬갑옷은 기원전 1세기쯤 캘트족이 먼저 개발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슬갑옷은 쇠로 철사를 뽑은다음 고리를 수천, 수만개씩 만들어서 연결해 만든 것이었다. 이 갑옷은 기존의 철판갑옷에 비해 철을 적게 사용했기 때문에 착용시 더 민첩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방어력도 판갑옷에 뒤지지 않았다. 이 사슬갑옷은 로마제국 말기에 로마제국의 제식무장으로 정착하기도 했으며 5세기경에는 다른 문명권에도 퍼져 사산조 페르시아, 인도등지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중국에 이 갑옷이 들어온것은 당나라 시기이며 동양에서는 이 갑옷을 '쇄자갑'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갑옷은 화살이나 베는 무기를 방어하기에는 용이했지만 철퇴나 창같은 무기에는 너무 쉽게 무력화되는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각 문명권에서는 사슬을 이중으로 엮거나 하는 방법을 창안해서 사용했다. 유럽에서는 사슬갑옷이 13세기쯤에는 판금갑옷으로 대체되었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사슬갑옷위에 철판을 덧대거나 하는 식으로 사용했고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석궁 (Crossbow)

석궁(노궁)은 기원전 3~4세기경에 중국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중국인들은 이 노궁을 이용해서 전차나 기병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고, 중국의 군대는 대부분 노궁수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 졌다. 노궁은 기존의 활에 비해 훨씬 더 조작하기 쉬웠으며 - 유럽의 경우 딸랑 3시간만 훈련받은 농부가 평생동안 싸움만 한 완전무장한 기사를 쏴 죽일 수도 있었다. - 명중률도 더 높았다. 활에비해 사정거리가 조금 떨어지고, 장전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때문에 석궁을 선호했다. 석궁이 전장에 등장하면서부터 전투의 규모는 점점 더 거대해졌는데, 석궁수는 금방금방 양성할 수 있어서 전투 인원을 쉽게 늘릴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궁은 14세기 총이 발명되고 나서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스포츠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석궁이 전래되고 신라시대부터 널리 이용해 왔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석궁은 각궁과 조총으로 대채되었다.





대포 (cannon, Artillery Gun)

최초의 공성무기는 기원전 7~8세기경 아시리아에서 등장했다. 아시리아 제국은 과학자들을 전장에 끌어들여 당시 엄청난 두께와 높이를 자랑하는 성벽과 요새를 뚫기위한 방법들을 골몰했는데, 그 결과 나온 무기가 투석기와 공성탑 같은 공성무기였다. 아시리아 제국은 이러한 공성무기와 합성궁을 이용해 다른 근동의 제국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는데, 이 투석기는 곧이어 여러나라에 퍼지기 시작했다. 유럽에는 기원전 2세기경에, 중국에는 기원전 1세기쯤에 알려졌는데, 훗날 사람 혹은 동물의 힘으로 포탄을 발사하는 투석기 대신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포탄을 날리는 대포가 개발되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대포는 9~10세기경 중국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대포를 별로 대단한 무기로 여기지 않았는데, 이러한 대포 제조술은 11세기 몽골의 침략이후 몽골제국 곳곳으로 퍼져 13세기에는 유럽과 중동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대포를 곧바로 전장에 투입시켜 사용했는데, 불순물 투성이인 화약때문에 자주 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대포는 당시 유럽의 성과 기사계급을 무력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총기 (Gun, Musket, Rifle)

현재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기들 가운데 총만큼 전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무기는 없다.
최초의 총은 9~10세기 중국에서 개발한 대포에서 시작하는데, 총이란 것은 이 대형 형태의 총인 대포를 조그맣게 줄인것에서부터 유래했다. 유럽에는 14세기쯤 들어와 이러한 원시적인 총이 전래되었는데, 이 초창기의 총이 바로 핸드곤느(handgonne)이다. 대포와 마찬가지로 화약을 장전한 다음 불을 직접 붙여야 발사되는 무기였다. 하지만 15세기쯤에 방아쇠가 달리고 화승을 이용해 점화하는 화승총이 발명되었는데, 이 화승총은 곧바로 전장의 흐름을 바꾸게 되었다.

총은 기존에 존재했던 모든 무기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장전시간이 길고, 비가와서 화약에 습기가 차면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총의 장점은 단점들을 커버하고도 남았는데, 총은 기존의 무기들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었고, 효과도 우수했으며,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문명권의 경우 총이 발사할때 나는 엄청난 소리에 놀라 군대의 사기가 떨어지는 위력도 가지고 있었다. 16세기 유럽을 시작으로 세계는 총을 중심으로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총이 가지고 있는 사정거리 때문에 전투는 기존의 난전이 아닌 전선과 진형을 가진 전투로 고착화 되기 시작했고, 이는 18세기 유럽의 라인배틀 (Line-Battle)형태를 낳게 되었다.

화승총은 점점 진화해서 16세기에는 부싯돌을 이용해 점화하는 플린트록 머스킷이 개발되고,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실탄만 넣고 연발로 발사할 수 있는 라이플 소총이 등장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한꺼번에 수백발씩 쏠 수 있는 기관총이 등장했고, 이러한 새로운 총기가 등장함에따라 전장의 판도와 전술은 그때그때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총기는 전쟁 이외의 모든 전투에서 조차 최고로 효율적인 모습을 보이며, 현 시대 최대 강국인 미국이란 나라 자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행기 (Flying machine)

인간의 날고자 하는 욕망은 그리스신화의 이카루스 이야기부터 시작해 끝없이 이어져왔다. 이러한 꿈은 몽골피에의 열기구와 체펠린 박사의 비행선, 그리고 1904년 라이트형제의 최초의 동력비행기의 개발을 낳았고, 이 새로운 날틀은 곧바로 전쟁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전쟁시기 프랑스는 열기구를 타고 영국상공에서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최초의 폭격을 시도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영국 소총수가 공중을 향해 쏜 탄환에 의해 열기구는 격추되었고, 조종사들은 포로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비행선부대를 이용해 런던을 폭격함으로써 최초의 근대적인 폭격전술을 성립했다. 한편 전투기는 1차세계대전 초기에 전장에 등장해 처음에는 정찰용도로 사용되었으나 연합군측에서 독일군 비행선을 격추하기위해 사용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공중전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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