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코너 슈트름의_War_and_History

툴롱 항에서 자침한 비시 프랑스 해군 전함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슈트름의_War_and_History 작성자: 슈트름게슈쯔
조회: 18605 추천: 1 글자크기
12 0

작성일: 2018-02-05 22:24:39

Vichy French navy Battle ship Provence -Alpes-Cote-d'Azur succumbed to suicide in the Toulon






























제 2차 세계대전 중반기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툴롱항에 정박해 있던

 비시 프랑스 해군의 함대를 강제로 접수하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모조리 자침시킨 관계로 함대 강탈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자폭시 발생한 

화재의  매케한 냄새를 맡으며 검은 연기에 휩싸인 전함들을 바라보는 

독일 제 25 기갑사단의 812번과 822번 823번 4호 전차 승무원들   - 1942년 11월 27일







툴롱 항에서 자침시 불타는 비시 프랑스 해군의 전함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 1942년 11월 27일 



비시 프랑스 해군 함대의 자살 폭침이었던 툴롱항 자침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2년 11월 27일에 나치 독일이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프랑스 함대를 강탈하려고 하자

 툴롱항에 정박해있던 비시 프랑스 함대가 자침한 사건이었다.  

1942년에 연합군의 횃불 작전으로 비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하고

이 과정에서 연합군은 프랑수아 다를랑 제독을 포로로 잡는다. 

다를랑 제독은 연합군에 협조하기로 약속하고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전함인 리슐리외급 전함을 연합군에게 넘긴다

한편 독일은 더 이상 비시 프랑스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비시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기 위한 안톤 작전을 발동하였으며 동시에

 남은 프랑스 함정들을 접수하기 위하여 라일라 작전을 발동한다.  

1942년 11월 19일에 시행된 라일라 작전은 독일 7 기갑사단에 의해서 진행되었고

 이들은 툴롱으로 진입하여 조병창, 해안 방어시설등을 점령하였고 

프랑스 함대의 탈출을 막기 위해여 기뢰를 부설하였다. 

11월 27일 4시에 독일군은 툴롱으로 진입하였고 이는 프랑스 해군 장교들을 놀라게 하였다. 

비시 프랑스 해군 함대 사령관이었던 장 드 라보르드제독은 

자침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전달하고 군함에 접근하는 자는 사살해버리라는 지시를 내린다. 

4시 50분에는 조병창에서 독일군은 프랑스 잠수함들에게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이에 프랑스 해군 잠수함들은 자침하기 위하여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였고 

이런 상황에서 5시 40분에 잠수함 카사블랑카는 알제리로 도망친다.

 한편 독일군은 조병창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하여 기지로 진입하는것이

 당초 계획보다 늦은 5시 25분에 진입하게 된다. 

독일군이 진입하자 기함 스트라스부르는 전 함대에 자침 명령을 내렸다. 

자침조를 제외한 승무원들은 탈출하였으며 남은 인원들은 해수 밸브를 열고 폭파시켰다.

 일부 독일군은 프랑스 함정에 올라타서 자침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라일라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프랑스 해군은

 그들의 배를 강탈당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전함 3척, 순양함 7척, 구축함 15척을 포함한 77척의 배가 자침하였고 

독일은 전력으로 쓰기도 어려운 작은 배만을 건졌다. 

한편 잠수함 몇척은 자침하는 대신 북아프리카로 도주했다. 

이후 독일군은 일부 프랑스 해군 순양함들을 건져서 수리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연합군의 공습에 의하여 저지되었다. 

전함은 기함 스트라스부르, 됭케르크, 프로방스 3척, 

수상기모함 1척, 중급과 경급을 포함한 순양함 7척, 

구축함 15척, 어뢰정 13척, 호위함 (슬르푸 형) 6척, 잠수함 12척, 경비정 9척, 

보조함정 19척, 연습선 1척, 예인선 28척에 프랑스 함대 전력이 

틀롱 앞 바다에 가라앉았고, 항구 크레인도 4개나 파괴됐다.

  이중에 35척은 프랑스가 새로이 만들었던 신형 함선들이며, 

스트라스부르와 됭케르크는 일반 전함보다 더 빠른 속력을 가진 신형 전함이었는데 

모두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자침시킨 것이었다.  

오직 몇몇의 잠수함이 자침을 거부하고 도주했는데, 

그 중 2척은 알제리에 자유 프랑스로 합류했고, 

1척은 중립인 스페인으로 향했다. 

 이외에 수송선 1척도 알제리로 도주했다.  

툴롱 자침으로 인명 피해도 상당했는데 12명의 프랑스 수병이 전사하고

 2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독일군은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일로 다를랑과 연합군은 실망했으며, 드골을 비롯한 자유 프랑스는 

드 라보르드 제독을 비롯한 틀롱의 비시 프랑스 해군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드 라보르드 제독은 독일로부터 

큰 책임 없이 풀려나 비시 프랑스 해군부 차관으로 일하였다. 

 프랑스가 해방된 후 재판에 회부된 드 라보르드 제독은 

함대를 연합군에 넘겨주지 않았다는 것과 

비시 정부 협력에 대한 죄목을 이유로 1947년 6월에 사형이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량이 점차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더니 1954년에 특사로 풀려났다. 

 드 라보르드 제독은 1977년 7월 30일에 99세의 일기로

 천수를 누리고 지롱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댓글 12

  • best 쿠비즈 2018-02-14 추천 2

    잘 알지도 못하면서 FX사업이후로 이상하게 프랑스만 관련되면 까고보는 바보들이 많네요. 저 사건 이전에 영국이 프랑스 해군에게 저지른 짓거리를 안다면 독일군에게 넘기지 않고 자침시킨것만으로도 훌륭한겁니다. 캐터펄트 작전이라고 프랑스 해군을 무장해제하겠답시고 가서는 프랑스해군의 장슐제독이 무장해제를 하겠다고 통보를 했음에도 자신들이 지정한 시간내에 통보가 늦었답시고 그대로 공격해버린 개 또라이 영국군의 엄청난 활약(?)이 없었다면 당연히 저 상황에서 연합군에게 프랑스 해군은 합류했을겁니다. 프랑스 해군의 사정(독일의 전격전으로 어쩔 수 없이 항복한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바로 전까지 연합군으로 싸우던 동지들의 뒤통수를 쳐날린 영국군... 개쓰레기 짓거리를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이류니 삼류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지요.

  • L 2018-02-17 추천 0

    어쩔 수 없이 항복했지만..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사보타지를 한 경우내요... 과거 친일파와 북한 부역자들 중에도 이러한 자들이 있지 않나 합니다.. 일제는 친일파를 중용했지만 북한은 부역자를 다 숙청하죠..
    서구 사회에서는 그리고 일본에서는 전쟁이 나서 지배세력이 바뀌어도 민초들의 삶은 그리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부역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일본은 미국에게 패망하고 미국의 동맹이 되었구요...

    댓글의 댓글

    등록
  • 파렌하잇 2018-02-14 추천 0

    저 당시 프랑스 해군력을 접수하려면, 독일 해군 전력으로는 어려운 만큼 육군과 공군의 협력이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독일 육군과 공군 입장에서 본다면 프랑스 해군력을 접수해서 해군을 키워주는 것은 새로운 경쟁자를 더 양산하는 격이고, 향후 전쟁을 더 이상 자신들이 주도할수 없게 된다는 의미인데, 과연 적극적으로 프랑스 해군력을 접수하려 했을까요?

    오히려 방관하였을수도 있지 않은지....

    댓글의 댓글

    등록
  • 쿠비즈 2018-02-14 추천 2

    잘 알지도 못하면서 FX사업이후로 이상하게 프랑스만 관련되면 까고보는 바보들이 많네요. 저 사건 이전에 영국이 프랑스 해군에게 저지른 짓거리를 안다면 독일군에게 넘기지 않고 자침시킨것만으로도 훌륭한겁니다. 캐터펄트 작전이라고 프랑스 해군을 무장해제하겠답시고 가서는 프랑스해군의 장슐제독이 무장해제를 하겠다고 통보를 했음에도 자신들이 지정한 시간내에 통보가 늦었답시고 그대로 공격해버린 개 또라이 영국군의 엄청난 활약(?)이 없었다면 당연히 저 상황에서 연합군에게 프랑스 해군은 합류했을겁니다. 프랑스 해군의 사정(독일의 전격전으로 어쩔 수 없이 항복한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바로 전까지 연합군으로 싸우던 동지들의 뒤통수를 쳐날린 영국군... 개쓰레기 짓거리를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이류니 삼류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지요.

    댓글의 댓글

    등록
  • AK74S 2018-02-08 추천 0

    조이독/ 잘못 알고 계신 게 당시 전세는 이미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때입니다. 독일이 승리할 거라 생각할 시기는 한참 지남.

    댓글의 댓글

    등록
  • 조이독 2018-02-07 추천 0

    저당시에는 독일이 승리할 거란 생각에 그랬을 겁니다.. . 패자인 연합군편에 서서 고달픈 망명과 저항생활을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숙적인 독일에 항복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그러니 저런 선택을 한거죠..
    여기에서 만약 미군이나 영국군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은 연합군이 패했다 해도 대부분은 주저하지 않고 연합군편에 섰을 겁니다..

    즉, 역사에서 프랑스가 영국에게 조금 모자랐던 이유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류국가인 거죠..

    그래도 이류국가도 괜찮은 겁니다.
    함대를 고스란히 독일군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었을 테니까요..
    아마, 이탈리아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싶군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역사상으로 보면 우리도 이류와 삼류사이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만약,, 북한이 서울 점령해서 정부의 항복을 받고 우리군에게 무장해제와 장비를 북한군에게 넘기라면
    어쩌시겠어요?

    전함과 잠수함, 전투기를 북한군에게 넘기고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면서 평화와 높은자리를 보존할까요?
    아니면 자침, 자폭시킬까요?
    아니면, 그것들을 몰고 일본으로 가서 북한에 저항을 계속 할까요?

    생각해 보면 쉬울 것 같지만 가치관에 따라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죠..

    댓글 (5)

    베레나스 2018-02-18 추천 0

    군대란 조직이 정부의 결정이 마음에 안든다고 지휘관별로 제멋대로 행동하면 그게 군대입니까? 프랑스 항복은 합법적인 프랑스 정부의 결정이었고 드골의 자유프랑스는 일개장성의 쇼였을 뿐입니다. 당시 프랑스 입장에선 반역자일뿐입니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상황이 반전 된 것일 뿐이고 영국은 캐터펄트 작전으로 많은 프랑스인들과 프랑군들에게 배신감을 심어준 비열한 국가였을 뿐입니다.
    조이독님 논리대로라면 만약 한국정부가 북한의 기습에 항복하자 미해군이 제주도의 제 7기동전단을 공격해 반수이상의 함정과 승조원들을 물속에 가라앉혔는데 남은 호위함들과 미사일고속함등의 승조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것이냐는 식이죠.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북한에 항복할 것이냐 적에게
    항복한 정부따위 인정못하니 아군주력함 다수를 갑자기 공격해 격침시킨 동맹국 미국에 항복할 것이냐? 어떤 선택을 해야 1류일까요?.

    유동인구 2018-02-12 추천 0

    마지막으로 하나의 국가를 1류, 2류로 구분해보는 시각은 매우 지엽적인 관점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따지면 1류 군대인 미군이 3류에 가까운 북베트남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수적우위나 장비만을 가지고 향후의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많은 전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유동인구 2018-02-12 추천 0

    전쟁에서의 승패를 떠나 프랑스 해군전력은 프랑스 항복 이전의 육군전력 만큼 막강했습니다. 설사 프랑스 해군 전력이 독일군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지 전쟁이 종료되는 시점만 늦췄을 뿐이겠죠.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독일에게 총력전 준비는 1944년 이후에나 가능했다는 점, 둘째는 독일내 군수물자를 둘러싼 알력싸움 때문에 상당히 비효율적인 운용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애당초 독일내 비효율성 문제는 최종적인 전쟁 승리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반면 1942년이면 미국이 점차 자신들의 군수생산능력을 끌어올릴때였기 때문에 독일이 프랑스 군함 몇척을 더 가지고 있더라도 물량 측면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끝으로 군함도 기름을 먹고 움직입니다. 안정적인 물자조달은 매우 중요하죠. .

    유성11 2018-02-07 추천 0

    아마 비시 프랑스해군의 막강 수상전력이 독일군에게 넘어갔다면 영국도 항복하고 역사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노르망디 작전이고 뭐고 영국도 프랑스와 같은 전철을 밟았을 겁니다. .

    유성11 2018-02-07 추천 1

    드 라보르드제독은 당연히 전후 사형이 아니라 사면이 되었는던게 맞죠.
    저 당시 비시 프랑스해군이 자침하는 경우보다 북아프리카 프랑스령 항구에서 영국해군에 의해 격침당해 더 큰 사상자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예나지금이나 유럽에서 2류 국가도 아니었고, 2차대전 당시 프랑스해군의 전력은 유보트 위주인 독일해군보다 압도적인 규모였는데 무슨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

    등록
  • 다나끔 2018-02-07 추천 0

    몇가지가 빠져서 보충하자면,
    다를랑 제독이 남은 프랑스 함대에게 연합군에 함대를 넘기라고 연락했지만 이를 거부 했었고,
    심지어 페텡국가원수와 오팡참모총장과의 비밀면담에서도 함대를 연합군에 넘기라고 제안했지만
    이를 거부 한겁니다. 단순히 독일에 넘기지 않겠다고 저 짓을 한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아무에게도 안줄꺼야~ 하면서 다 침몰시킨 심보). 달리 사형선고를 받았던게 아닙니다요.

    댓글의 댓글

    등록
  • FORCE 2018-02-06 추천 0

    자침명령을 내린게 딱히 잘못한 거라 보여지지는 않는데요

    댓글의 댓글

    등록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