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MIL 쉼터
군대기억.... 소총 삶아먹기
첫 휴가를 다녀와 일병으로 진급한 나는 중대내의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졸지에 서무병에 임명됩니다.
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란 행정병 주특기를 가지고 나보다 졸병으로 들어온 서무병 대상병사가 영내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이 병사에 대한 가슴아픈 이야기는 별도의 글로서 남긴 바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서무병이란 자리가 이따금 연대본부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생기죠.
중대원들의 월급수령이라던지..행정교육을 받기위해서 말입니다.
어느 날, 일병 중고참이 되어 연대를 방문했을 때 우리 중대에 있다가 연대로 발탁되어간 김구룡 일병(실명)이 병기계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여기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그린 어느 기자의 기록화
드럼통으로 만든 솥에 AK-47 소총들을 삶고 있더군요.
그것 참.... 김일병에게 물어보니 창고에 있는 적장비 소총들을 이렇게 삶은 후에 보관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삶은 총을 보여주었는데 개머리판에 바니쉬가 다 날아가서 허연 나무살결을 드러내고 표면이 쭈글쭈글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왜? 소총을 이런 식으로 삶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나의 주특기인 어거지적(的)상상력이 나서야지요. ^.^
<소총 국물>
듣자하니 소총에 사용되는 목재로는 고급은 호두나무, 일반품은 가래나무와 같은 단단한 재질의 나무를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 소총들은 어떤 나무로 만든 것일까.
연대장님의 먹거리에 대한 기호가 특출하시어 이 총을 다린 국물을 들이키시면 속이 편안하셨던 것일까요?
소총을 삶은 국물은 무슨 맛이 날까요?
호두나무의 그윽한 향기에 구리스와 병기기름을 가미하고 녹슨 산화철 냄새를 살짝 가미한 그 맛은?
사실 극한의 전장에서 군용장구를 뜯어먹는 사례를 우리도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가죽으로 만든 장화나 벨트 같은 것 말이지요.
"황금광 시대" 에서 구두를 맛있게 발라먹던 챠플린의 명연기가 생각납니다.
구두를 삶아먹는 챨리 채플린
<트라우마>
또 그런데 말입니다.....
사회에 나와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충남 당진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회식을 하게되어 그 장소에 찾아가 보니 커다란 들통에 닭을 삶고 있더군요. 이건 좋습니다.
그런데 그 들통안에 큼직한 장작덩이 두 개가 담겨져 있더군요...
나는 근처의 어느 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의자를 만들고 남은 나무를 실수로 넣은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이게 옷나무였는데 이 옷나무 장작을 넣어 끓인 삼계탕이 "옷나무 삼계탕" 이 되겠습니다.
이 기이한 삼계탕을 보는 순간, 번쩍! 생각나는 것이 바로 그 5연대 연병장에서 드럼통에 삶고있던 소총들이었습니다. 입맛이 떨어지더군요.
그 옷나무 삼계탕을 마주하기 전에는 내가 "5연대 소총국물"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내 두뇌가 너무 과잉반응을 보인거죠.
왜? 맛있는 삼계탕에 장작이라는 어울리지않는 이물질을 집어넣어 미관과 맛을 해치는 것일까요.
이물질이라... 국물에 들어가는 이물질에 대한 또 하나의 트라우마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동경제국대학을 나오신 선생님의 말씀,
"고참들의 헌 신발을 솥에 넣고 끓인 후에 국물을 국자로 퍼서 신입생들에게 퍼 먹였지"
이 이야기의 변형은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고참의 구두에 소주를 담아 마시게 한다던가....
<하늘의 계시였을까?>
내 안에 자리잡은 이러한 기억들은 단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고 한 구석에 콤플렉스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먹거리 사사건건에 등장하여 트집을 잡습니다.
치유의 주문......"호오노 포노포노"....... 이러한 기억들은 정화되어야만 합니다.
뭔가 이러한 기억들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죠. 이런건 어떨까요?
"5연대 소총국물사건" 은 .... 어쩌면 나에게만 보여진 하늘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그날이 오면...무리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리니...." 성서 미가서 4장
나는 이 아름다운 예언에 불경하옵게도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또 그날이 오면 총을 삶아 국물을 마시고....."
******************* 짜투리 글 ****************************
1. 5연대 본부에 근무하던 김구룡 일병,
내가 제대하여 개구리복을 입고 사단으로 가는 길에 연대본부에 들려 인사를 나누었던가....
김일병의 아버님은 유명하신 화가셨고 불교그림에 정통하신 분이라고 들었네.
김일병이 보여준 아버님의 그림.....무우수 아래에서 출산하는 마야부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아직 기억하고 있네. 두터운 안경, 수류탄을 제일 멀리 던지던 낙천적인 김일병,
사회에서도 행복하게 지내리라 믿네.
2. 소총을 삶아 국물을 만든다면 역시 옛날 소총이 맛이 좋을 겁니다.
현대소총에 들어가는 알루미늄은 신맛이 나며 고무는 그 뒷맛이"씀바귀"나 "육모초" 같습니다.
가장 문제는 역시 플래스틱으로서 옛사람들이 사약으로 사용하던 "부자"를 달인 맛이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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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라이프 (218.145.xxx.xxx)
- 2015-03-22 12:53:49
- 뭔가 정확한 이유는 지시한 사람만 알겠죠.
하지만 외형을 유지하면서 사용불가로 만드는 방법은 그방법이 가장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근데 왜그랬을까요? 군에서 총잃어버릴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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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사 (218.145.xxx.xxx)
- 2015-03-22 11:14:09
- 싱글라이프님
그렇군요. 그런데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말씀하시니 이런 기억이 납니다.
오래 전에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던 무기전시나 자유센타에 전시된 무기들....특히 대포류...을 보면 포신의 안쪽을 꽉 막히게 용접을 해 두었더군요. 좋은 방법이던데요.
이러한 방식은 나폴레옹의 시대에서도 사용되어 대포에 구리못을 때려박아 못쓰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AK-47 소총에도 구리못이나 때려박지... 그렇게 더운물로 삶을 것 까지야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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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라이프 (218.145.xxx.xxx)
- 2015-03-22 09:43:12
- 절단하거나 외형을 변형 하지 않고 사용을 못하게 만들기 위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겁니다.
부식되서 사용은 못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가끔 요즘에도 전시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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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사 (218.145.xxx.xxx)
- 2015-03-22 09:32:03
- 싱글라이프님
글세요... 폐기할 것이라면 용접기로 절단을 내어 고물상에게 팔면 될텐데요....
또 저렇게 삶은 총들 몇정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훨씬 고물스러워 보이더군요.
아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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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라이프 (218.145.xxx.xxx)
- 2015-03-22 07:51:12
- 아마도 일련의 폐기과정이 아니었을까요?
끓는 물이라면 총기내외의 기름을 녹여내기에 충분했을테니 꺼내서 방치한다면 급속도로 부식이 될것같습니다.
가끔 전시되는 노획장비류가 노획시기에 비해 많이 손상된 상태인 이유가 이런게 아닐까 추측해보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