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MIL 쉼터
꿈속의 해커
지난밤의 어수선한 꿈 때문에 일어남이 개운치 않았다.
내가꾸는 꿈은 거의 모두가 소위 “개꿈”으로 분류되는 저예산 작품으로서 주제는 물론이고 줄거리마져도 일관성이 없어 그 꿈이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될지는 깨어보아야 아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꿈은 조금은 기이하였다..
잠들자마자 꿈이 시작되었고 어디선가 하나의 질문이 날아든 것이다.
“월튼네 사람들”에서 맏아들 역할을 했던....한쪽 뺨에 큰 점이 있는 배우가 누구였지?“
그걸 내가 왜? 기억하고 있어야하는데?
미국 T.V 드라마 “월튼네 사람들”이 국내에 방영된 것이 70년대 인지?80년대인지도 모르겠고 “초원의 집”보다 먼저 들어온 것이지 나중인지도 잘 모르겠다.
더구나 그 뺨에 점이 있는 젊은 배우는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에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돌이켜 생각해보니 순박하고 진솔한 가정의 맏아들이라는 역할 때문인가 내가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구나...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그에게 호감을 가졌었다는 기억마져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엉뚱한 질문에 호기심을 느낀 나는 집요하게 내 기억의 심연을 뒤져 용의자의 이름들을 건져내고 그 이름들에 비슷한 이름을 붙여가며 정답 찾기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수행자가 화두 끝에 깨우침을 얻듯이 정답을 찾아낸 것이다.
“티모시 보텀스!!” 그렇다, 티모시 보텀스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간밤의 꿈에서 실력을 보여준 내 두뇌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며 출근을 재촉하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기억력에 대하여 자신감을 얻는 기회는 소중한 것이니까.
책상에 앉아 손가락들은 유연하게 주물러 준 후 자판을 두들겨 “티모시 보텀스”의 이름을 입력하였다.
엔터!
이제 점박이 배우의 젊은 시절의 얼굴과 월튼네 가족들이 웃는 모습으로 내 기억력에 표창장을 수여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티모스 보텀스”는 월튼네 사람들의 출연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월튼네 사람들의 주인공은 "리처드 토머스" 였다.
그러면 "티모시 보텀스"는 누구인가?
찾아보니 “티모시 보텀스” 는 70년대에 상영되어 인기를 끈 “새벽의 7인” 에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였다.
나는 그 당시에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다만 그 영화를 보고 온 친구들이 자주 이야기를 하였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 지하실에 차오르는 물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자결하는 장면에 큰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모르겠다... 혹시나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는 “하버드의 공부벌레들” 시리즈에서 그 이름이 무의식의 경로로 들어왔을지도.
여하튼 “티모시 보텀스”는 내 기억에 저장되어 있었다.
평소에 관심도 없었고 먹고사는 문제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버려진 기억이 왜 밤새 꿈속에서 시달리면서 검색되어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져야 했을까?
운전중에도 이 궁금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 생각을 주제로 “베르나르 베르베르”풍의 기이한 상상력의 세계를 연출하면서 라디오를 틀었다.
맙소사! 여성 진행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의 단편을 낭독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꿈을 뒤지는 해커>
단지 우연일까?
아니면 내 잠재의식은 라디오를 틀면 베르나르의 이야기가 나올 것을 미리 감 잡고 있던 것인가.
이러한 놀라움과 더불어 깨우침처럼 다가온 느낌은 간밤에 내가 해킹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해커는 내 안에 잠입하여 화두를 던졌다.
“월튼네 사람들” 에 대한 내 기억을 물었고 나는 그에 반응하여 영화에 대한 기억들이 모여 있는 특정 폴더를 개방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개방된 방에서 내 의식이 열심히 쩜박이 주인공의 이름을 찾고 있을 때 슬며시 따라 들어온 해커는 그가 본래 원하던 “티모시 보텀스” 의 자료를 챙겨간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저마다의 두뇌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어있는 것이다.
현실의 이성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를 얻듯이 내 내면의 존재는 나름대로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타인의 두뇌에서 정보를 챙긴다.
<내면의 정보관리자>
이 내면의 존재가 바로 “영혼”이다.
“영혼”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할 일 없이 무위도식하고 있다가 육체가 죽으면 미련 없이 떠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내면의 방대한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내” 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어오기에 바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영혼이 얻어온 정보가 매우 유효할 때 우리는 그 정보를 “영감”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보를 해킹당한 내 영혼은 미안한 마음에 과도한 촉각을 세워 내가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베르나르의 이야기를 송출한다는 것을 미리알고 내게 그와 연관된 생각을 일으킨 것이다.
서울과 포천은 거리가 멀므로 전파가 여기까지 날아오려면 맑은 날에도 10분은 걸릴 터이니 내 의식을 자극시켜 베르나르의 이야기들이 생각나게 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누구나에게 그러할 것이듯이... 먹고사는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기억에 대한 엉뚱한 질문이 떠오를 때 해킹을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름이 아주 긴 영화감독이 누구였지?
“아루오혼도하루가사루”
가장 긴 영화제목이 뭐였지?
“라디움 광선은 달무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
어째서 그러한 질문이 떠오르는지에 대한 의심 없이 자신의 기억력을 자랑스러워하며 기억의 폴더를 열 때 은근히 잠입한 해커는 그 열린 폴더에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파일을 챙겨가는 것이다.
한 가지, 나의 이 심오한 깨우침을 가로막는 생각이 있다면 그 해커는 도대체 “티모스 보텀스”라는 이름을 어디에 써먹으려고 한 것일까.
그 해커는 미성년자의 영혼일까?
아니면 티모시 보텀스의 이름과 함께 꿰어진 무언가가 있는 것이었을까?
내가 가치 없다고 버린 100원짜리 통장이 밤새 긁어모으는 해커에게는 1억원짜리 불루오션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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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5포병여단장. (112.175.xxx.xxx)
- 2018-03-14 08:45:30
- 내 일상과 관련이 없으면 개꿈으로 분류하는 게 맞는지요?
개꿈을 수시로 꾸니 무시하고지나치는데 예지몽을 자주 꾸시는 장모님의 경우 적중율이 80퍼 입니다.
전 주로 모텔 특설링에서 이쁜 아줌마랑 자유형, 그레코로망형 레스링을 하는 꿈이 많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힘들어 죽겠습니다.
토너먼트 형식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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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眞波 (112.175.xxx.xxx)
- 2018-03-17 15:06:19
- ㅎㅎ 선배님 어디가셧나 했더니 저 예산 영화만드신다고 연출,출연 자작하시고 해묵은 외화포스트만 출연시켰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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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트름게슈쯔 (112.175.xxx.xxx)
- 2018-03-14 00:44:28
- 영화 새벽의 7인에 체코출신 영국군 특공대원 얀으로 출연했었던
티모시 보텀즈의 사진이 제프 브리지스를 닮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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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사 (112.175.xxx.xxx)
- 2018-03-14 08:48:18
- 5포병여단장.님
그런꿈은 개꿈이라기보다는 늑대꿈이라 불러야 겠지요.
꿈에 시달리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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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사 (112.175.xxx.xxx)
- 2018-03-14 08:45:48
- 배흘림님
저도 이런 영양가없는 꿈 말고 그저 복권이라도 맞는 꿈을 꾸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꿈이 인생에서 실제적으로 별 도움이 안되는군요. ^.^
인간이 갖고있는 모든 기능은 삶에 무언가 기여를 하도록되어있을 것인데 꿈의 역할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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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포병여단장. (112.175.xxx.xxx)
- 2018-03-14 08:45:30
- 내 일상과 관련이 없으면 개꿈으로 분류하는 게 맞는지요?
개꿈을 수시로 꾸니 무시하고지나치는데 예지몽을 자주 꾸시는 장모님의 경우 적중율이 80퍼 입니다.
전 주로 모텔 특설링에서 이쁜 아줌마랑 자유형, 그레코로망형 레스링을 하는 꿈이 많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힘들어 죽겠습니다.
토너먼트 형식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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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흘림 (112.175.xxx.xxx)
- 2018-03-14 08:39:46
- 꿈을 꾸고 나면 어떤 때는 신기하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
꿈은 무의식의 무작위라고 하던데 ..
어째거나 용꿈을 꾸면 기분이 좋을 것만 같습니다.
꿈속의 헤커 알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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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사 (112.175.xxx.xxx)
- 2018-03-14 08:31:57
- 슈트름게슈쯔님,
저는 제프 브리지스가 누군지 모릅니다. ^.^ (시대에 뒤덜어졌죠)
위에 올린 티모시 보텀스의 모습도 인터넷에서 찾아 올렸을 뿐이고요.
내가 그 얼굴도 모르는 티모시 보텀스의 이름이 왜 내 안에 저장되어있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또한 방송과 내 생각이 기묘한 일치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러한 사건이 우연만은 아닐 것 같고요.
아니,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즐겁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