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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탑

  작성자: 배흘림
조회: 2881 추천: 0 글자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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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3-12 08:39:16


 

아름다움이란 

사랑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볼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사랑 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

 



孤高하고 

정숙하며 그리고 친근감도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볼 때  

아니 느낄 때 , 

자신도 한 송이 청초한 꽃이 되어 아름다워 지리라.  

 



어둠을 뒤로하고 우뚝 선 탑의 실루엣과 

蒼空(창공) 속에 힘차게 뻗어나가는 탑신의 육중한 모습에서  

경외심과 엄숙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함께 느낀다. 

 



인간과 정신 그리고 물질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일체의 연결 속에서 존재 한다고 한다. 

 

음영에서 느끼고 얻는 것은 각자의 근기에 .... 

벌써 매화가 피더라. (2018.3.12)








댓글 5

  • 배흘림 2018-03-13 추천 0

    워카님의 깊은 해설 지식에 경의를 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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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진 워커 2018-03-12 추천 0

    불국사는 지금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나, 그 당시에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록에 딴따라의 원조인 49대 헌강왕 관련 기록에 불국사부근까지 건물의 처마가 줄지어 있어 비를 안맞고도 갈 수 있다 라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석탑에 많은 치장을 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건물의 지붕 형태가 본 떤 석탑 옥계석 (지붕돌)의 시각은 우동이라고 하여 약간 두툼하게 조각을 하였는데, 그곳에 금동으로 장식하고,,, 각 지붕돌을 끈으로 연결하여 작은 종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서라벌 곳곳에 높은 탑이 있고,,,금동 조각장식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을 때,,진짜 눈이 부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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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진 워커 2018-03-12 추천 0

    탑은 부처님의 무덤입니다.
    석가모니불 사후 그 사리를 나누어 8개의 나라에 나누어 주어 각 나라가 무덤을 만드는데 그걸 근본8탑이라 부르죠... 석가모니 사후 탑이 곧 부처님이니 종교행사는 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간다라미술의 영향으로 불상 재작이 이루어지고,,, 금당도 세우면서...탑은 그 종교적 상징성이 많이 쇄퇴하게 됩니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각국은 그 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로 탑을 만드는데,,
    중국은 전탑(벽돌탑) 한국은 석탑 그리고 일본은 목탑으로 상징되죠.....

    그냥 몇자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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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진 워커 2018-03-12 추천 0

    불국사 삼층석탑은 경덕왕 때 불국사와 석굴사(암)를 지을 떄 만든 것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이며, 가장 아름다운 3층탑이죠. 불국사는 김대성과 관련된 사찰로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사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불국사 3층석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연기설화(절 창건과 관련된 설화)는 대충.... 이름은 그냥 생각 안나서,,,,안씀
    지금의 건천쯤 어디에 찢어지게 가난한 아이(대성)와 엄니가 살았는데, 귀족 집안의 일을 돌보아주며,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주인이 먹고 살라고 작은 토지를 주었는데,,,어느날 어린 대성이 집에 있는데, 스님 한분이 무슨 절의 재건인가 먼가,,,가만 종 제작인가... 하여간 시주를 하라고 꼬십니다.
    "현생에서 부처님에게 시주를 하면, 후세에서 10배 ,,,00배 이사으이 보답을 받는다고.,..."

    그러자 어린 대성이 밤에 어머니에게 말하죠
    "우리집안이 비루하게 사는 것은 부처님에게 안 갖다 바쳐서입니다.. 없지만 그 작은 토지를 시주하여., 죽어서 잘 삽시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엄마는 승락을 하고 땅을 시주합니다.
    근데 곧 대성은 죽고 말죠.
    그리고 건천의 어느재상 집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어디어디 살던 대성이가 이집에 태어나려고 한다..." 진짜 재상은 아들을 가지게 되었고, 태어날 떄 아기손을 열어보니 작은 금패(금으로된 판)에 대성이라고 쓰여 있었죠., 이상하게 여긴 재상이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어디어디 마을에 대성이란 아이가 죽엇다는 것을 알게 되죠...

    결국 대성의 모친도 델꼬와 잘먹여주고 재워주었다는... 그래서 김대성이 추후 재상이 되었을 때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사를 세우게 됩니다.

    일통삼한후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던 통일신라는 35대 경덕왕 사후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으며 쇄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경덕왕 아들인 36대 헤공왕이 8세에 즉위하자 삼촌의 섭정이...게다가 혜공왕은 "애자" 라고 하나,,,하여간 남자가 아니라 여자 행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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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진 워커 2018-03-12 추천 0

    탑을 올려 주셨네요.
    쌍탑은 감은사지 3층석탑이고, 다른 건 불국사 3층석탑

    둘다 우리나라 탑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감은사지 3층석탑은 신라 최초의 석탑이고, 불국사 3층석텁은 신라탑의 전형이죠.

    감은사는 신라 31대 신문왕2년인가 완공되었습니다. 사찰을 건립하는데 보통 20년 정도 걸리는 걸 계산하면 아마 문무왕때부터 짓기 시작을 한 걸 신문왕때 완공되었겠죠,
    감은사지 3층석탑은 완공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런 경우 사찰 창건 연대와 같다고 표기합니다.
    그전의 신라탑은 목탑, 전탑, 모전석탑(분황사3층석탑)이었는데, 감은사 창건시에는 석탑을 쌍탑으로 세웠습니다.
    금당 앞에 쌍탑을 세우고 금당 뒤에는 강당을 세운 전형적인 1금당 쌍탑 형식으로, 감은사와 관련된 설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만파식적 또한 감은사와 관련된 설화입니다.
    감은사 앞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옛 명칭은 동해천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대종천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약간만 걸어가면 이견대가 있고, 문무왕의 산골처로 추정되는 문무왕 수중릉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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