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MIL 쉼터
신읍리 시절, 송년의 밤
오늘은 아내와 수원화성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왔습니다.
역시 명절이 좋군요.
이렇게 하루를 지냈는데도 내일이 일요일이라 또 쉴 수 있다니 말입니다.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즐거움도 누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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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 아래서>
신읍리에는 전등이 없었다.
어두워지면 남폿불(석유등잔)을 내무반 통로위에 걸어놓고 그 아래에서 병기수입(청소)을 하고 취침점호를 받았다.
불침번이 되어 어두운 등잔불아래 가지런히 잠들어 있는 동료들을 내려다보노라면 내 마음속에서 어떤 기이한 감정이....전우애랄까, 연민이랄까..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저마다 고향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곳에서 불려와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젊은 날의 우리들,
사실 이러한 감정은 내가 중대에서 가장 쫄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건방진 일이었다 할 것이다.
(팁: 잠든 전우들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눈뜬 고참은 사랑하기 힘든 것이외다.)
여하튼 이 등잔불 효과로 인하여 흑백영상으로 남겨진 기억은 그 시절을 더욱 오래전의 시대로 착각하게 하는데,
나의 신읍리에서의 추억담에는 이 등잔불이 주었던 정서가 다량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하여 주시기 바란다. (주:1)
<루돌프 사슴코 와 슬룹 존비>
12월 초에 중대장 (김성문 대위)이 3소대장 장소위를 불렀다.
"어이 장소위, 이번 크리스마스에 "사단 군가경연대회"가 열린다네."
"장소위가 3소대를 연습시켜 경연대회에 참가하도록 하지?"
R.O.T.C 출신의 장소위는 소대원들에 대하여 마음이 열려 있었고 지나치리만큼 군인냄새가 나지않는 소대장이었다. (주:2)
장소위는 당장 그 날 저녁식사후 부터 합창연습을 시작하였다. 선곡은 "루돌프 사슴코"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귀챦은 병기수입과 취침점호를 생략하고 이 쉬운 노래를 불러댄다는 것은 처음에는 괜챦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슬슬 지겨워지기 시적하였다.
군대도 년말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서 옆방인 1소대와 2소대에서는 자주 회식이 벌어지는데,
노래판이 시작되면 예쁘장한 신참 "이무연" 이병이 "해변의 여인" 을 열창함으로 시작하여 옛곡 "전선편지" 와 조영남의 "이일병과 이쁜이", 양희은의 "긴~밤 지새우고~~" 가 으싸으싸 나오다가 흥이나면 노래마다 "쿵다라닥닥~삐약삐약"으로 장단을 맞추고 결국은 "소령,중령,대령은 00 도둑놈~" 이라는 불온한 노래로 판을 마감하는 법인데, 우리는 오로지 "루돌프 사슴코~" 만 줄창 불러댔던 것이다.
소대원의 불만을 반영한 장소위의 두번째 선곡이 또 기발하였으니 비치보이스의 "슬룹 존비(Sloop John B"
"위 캠온 더 슬룹 존비~~~~~
마이 그랜드 파더 앤~~ 미~~~~"
솔직한 말로 우리 중대의 수준은 "니나노~" "도롯도" 가 즐거운 수준이었으나 어찌할까, "사단 경연대회" 라고 하지 않느냐!
소대원들에게 신뢰받는 장소위의 진지함에 우리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장소위는 소대원들에게 한글로 된 가사를 나누어 주고 기타로 반주까지 하며 열심이었다.
이렇게 "루돌프 사슴코" 와 "슬룹 존비"가 이어지던 어느 날 밤,
탄약고 보초근무를 마치고 중대막사로 올라오던 나는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데쟈뷰!!"
겨울밤,
연병장에 쌓인 눈을 밝히며 흘러가는 달,
방풍망을 덧댄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정겨운 노랫소리가..... 내가 언젠가, 아니면 전생에서라도, 이 장면 그대로 분명히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뇌리를 때렸다. (주:3)
.....내 기억이 사실이라면 거기는 어데였고 그 장면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었던 것일까.
마음은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 허공을 나르고 가슴은 이유없이 따뜻하였다.....
어두운 밤의 평화로움, 60년대 크리스 마스 카드의 장면들, 꽃재 예배당의 성탄절, 그리고 하이얀 칼라가 있는 교복을 입고 함께 예배를 드리던 소녀들의 모습,......
노랫소리로 추억의 문이 열릴 때 평안함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그 부드러운 힘에 압도된 나는 다만 머리를 수그리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주:4)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그 노랫소리를 군대생활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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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폭격의 밤>
사단 군가경연대회는 결국 열리지 않았고 크리스 마스도 지나갔다.
사단 군가경연대회는 결국 열리지 않았고 크리스 마스도 지나갔다.
그 해의 마지막 날 오후,
전 중대원은 연병장에 집합하여 중대장의 노기어린 훈시를 받았다.
"뿌리를 잘 지키란말야! 그걸 그렇게 함부로 흔들어대냐? 왜? 담장에 엘에무지(LMG)를 쏘냐고?"
사연은 이랬다,
중대의 화장실은 밖으로 나와서 저 편에 있었으므로 추운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내복차림으로 나온 대원들이 근처 나즈막한 돌담장에 소변을 갈긴 것이다.
밝은 대낮에 보니 눈이 싸인 돌담장 아래에 마치 기관총을 맞은듯 수백발의 구멍들이 나 있었다.
중대장의 노기어린 훈시는 중대원들이 맨손으로 그 노랗게 구멍난 눈들을 치우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저녁을 먹고, 취침점호도 끝나 자리에 누으려는데 성질 더러운 고참 2소대장의 비상점호가 걸렸다.
"전 중대원들은 팬티, 런닝만 입고 연병장에 집합!!!"
낮에 중대장에게 소변건으로 망신을 당한 앙갚음이 시작되었다.
토끼뜀과 오리걸음, 푸시업이 반복되고 P.T 체조가(마지막 숫자는 복창하지 않는닷!) 시연되더니만 결국 그 유명한 "원산폭격" 과 "함흥철교"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었다.
기합(얼차려)이 끝났을 때는 새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내무반으로 들아왔을 때 추위속에서 생존한 내 손은 거의 두 배로 커져 있었다.
피들이 손으로 몰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기합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킥킥대며 내복을 주워 입었다.
"전일병(전순길 일병)님, 이 주먹 좀 보십시요. 항상 이렇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헤헤 ^.^"
<젊은 우리 나날들>
잠시 눈을 붙이니 새해 아침이 되었다.
아침점호!!
"새해가 시작되었다. 고향을 향하여 좌향 좌!"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3회복창 실시!!"
"부모님~~~~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살려주세요~~~"
우리는 모두 웃었고 일직사관 양중사도 웃었고 소대장들도 웃었다...... 우리는 젊었으니까.
***************** 짜투리 글 *****************************
1. (주:1) 등잔빛이 사람에게 주는 정서의 힘으로 보건대,
"괴테"여, 색채가 사람의 마음에 주는 영향에만 주력하셨다면 뉴턴에게 굴욕을 당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색채론)
2.(주:2) 이문열의 "새하곡"에서 "ROTC가 군인이면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 운운.
3.(주:3) 이러한 데자뷰 현상은 누구나 한 두번씩은 체험하셨으리라.
4. (주:4) 소년 슈바이쳐가 시골 초등학교 분교에서 공부하다가 본교를 방문하였을 때 본교생들이 부르는
합창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였다..
그의 마음이 너무 격하게 흔들려 담벼락에 기대었는데 기대지 않으면 몸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 마음의 흔들림은 이런 정도는 아니었으나 소년 슈바이쳐의 감성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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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김바사 (10.0.xxx.xxx)
- 2021-02-16 20:57:52
-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구타를 당했다면 지금과 같은 그 시절에 대한 애정은 없겠지요
그 점에 대하여 내가 근무한 부대의 앞선 군대문화에 감사합니다
하급자에 관대하던 고참들도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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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眞波 (10.0.xxx.xxx)
- 2021-02-17 12:57:09
- 화천지역의 겨울은 길고도 추워 백암산 골짜기 눈이 5월이 되어야 사라졌지요. 아침 점호가 끝나면 빗자루와 넉가래를 어깨총하고 구보하여 할당된 신작로 제설작업 후 조식을 먹고 근무를 했었지요. 얼마나 많은 눈이 자주 오던지 심할땐 주야로 제설작업을 하여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한진그룹 고 조양호 회장께서 보병7사단 근무시절 제설 작업을 하도 많이 하여 사장시절 제설차 몇대를 군에 제공했다 합니다.) 또한, 화장실 청소담당이 되면 똥작대기로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넘겨야 했습니다. 작업 후 밥맛이 좋았습니다.^^ 정겨운 글월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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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열며 (10.0.xxx.xxx)
- 2021-02-15 11:17:56
- 글을 읽다보면 거의 저와 동시대에 군대생활을 하신게 아닌지...
신병때 기성부대에 배치를 받으니 그날마침 제대장병의 회식이 있었습니다
너희들 그동안 신병훈련받고 오느라 고생많았다 많이 먹으라고 막걸리도 주고
빵도 주며 친절하게 대하길래 이만하면 군대생활 할만한게 아닌가 속으로 생각
하는데... 오늘온 신병들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제대장병이 차례 차례 신병들
아구창을 한대씩 돌립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황당...
그제대장병 왈 이게 군대야~...
다음날 부터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가 춤을 추는데... 하루 3대이상 맞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잠든 사람 언제 또 불러내서 때릴줄 모르니... ㅠ
전기가 안들어와 내무반 조명은 석유등잔... 아침이 되면 석유등잔 유리가 까맣게 됩니다
석유등잔 유리딱는건 이등병들 책임 한겨울 처음엔 모르고 석유등잔유리를 찬물에
담갔더니 파삭 유리가 깨져버립니다 깨트리면 깨트린 사람 책임... 사비로 석유등잔유리
사다가 끼워 넣어야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물론 좋은분들도 많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지난 군대 생활이 등골이 서늘해 질때도 많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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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열며 (10.0.xxx.xxx)
- 2021-02-17 08:39:00
- 전방부대에는 그런일들이 없었다는데 후방부대 특히 밥먹고 별로
할일없는 부대들은... 신병때하두 괴롭힘을 당해 고참때 우리는 신병들
괴롭히지말자 고참들이 단합 무슨일 있으면 인사계에게 불려가 대신
빳다맞고...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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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사 (10.0.xxx.xxx)
- 2021-02-16 20:57:52
-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구타를 당했다면 지금과 같은 그 시절에 대한 애정은 없겠지요
그 점에 대하여 내가 근무한 부대의 앞선 군대문화에 감사합니다
하급자에 관대하던 고참들도 고맙고요
-
- 김바사 (10.0.xxx.xxx)
- 2021-02-16 20:53:33
- 그러시군요
저는 요행히도 군대에서 기합은 여러차례 받았으나 고참병에게 얻어 맞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