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MIL 쉼터
설날, 남은 노년을 어찌 살 것인가.
설날,
처음 겪는 이상한 세태,
아내는 찾아오는 손님을 5인하로 맞추려고 애를 쓰면서 아파트 통로에서도 쉿,쉿---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웃에게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들릴까봐.,
어찌되었건 세월은 가는 것이고 이 시대 또한 기억으로만 남겠지요.
맛있는 음식으로 배는 부르고 마음은 평안하니 컴퓨터앞에 앉아 인생타령이나 해 볼랍니다.
저는 아마도 앞으로 10년이나, 20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하긴,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나이들어 건강에 자신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지난 해 5월의 어느 날 처럼 도둑같이 찾아온 병으로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되어 누워있게 될 줄이야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이빨도 빠지고, 머리털도 빠지고...>
중학교 시절에 읽은 "채근담"에서 다가올 노년을 묘사하는 한 귀절, "발락치소 (머리털은 빠지고 이빨은 성글어지고..)" 는 생명력이 약동하는 어린 나이에 전혀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락치소"가 저주처럼 내 마음속에서 반세기를 넘게 잠복하여 있더니만 기어이 제 본성을 드러내네요.
숙명은 무섭습니다. 임플란트를 6개나 하고 있거든요.
<죽음 이후의 세계>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님의 영향으로 당연하게 기독교의 내세관, 천국과 지옥의 세계를 배웠지요.
그러나 지금은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살아온 인생에 만족하며 흙으로 돌아가고 싶으며, 지금의 삶을 다음 세상을 위한 투자로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님이 즐겨 부르시던 "허사가"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 뽐내지 마라.
유수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맞는 말이지요,
다만 이 노래의 작사자는 죽음 뒤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하여 현생의 가치를 폄하하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입장은 삶의 허망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내 존재의 모든 것이 이 허망함의 원칙을 따라 다시 흙으로 스러지는 것을 긍정합니다.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키케로의 노년에 대한 안내서는 별 보탬이 안되고 죽음을 앞두었던 무신론자 "히친스"의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절박하고 슬픕니다.
김형석 교수가 100세가 넘어서도 강연을 다니던데 이 분이 하는 말들은 노년에 얻은 지혜이지만 이미 철학자로서의 말은 아니지요.
그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모색하고 발견한 깨우침에 대한 주장이 없습니다. (주:1)
이어령 교수의 경우는 더 섭섭한데 이 분은 여생이 얼마 남지않았슴에도 불구하고 너무 말이 많더군요.
대담자가 물어보는 하나하나의 질문에 답이 너무 장황합니다.
이는 일생에 벌어놓은 지식이 지혜의 엑기스로서 숙성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것이지요.(주:2)
어차피 이 시대에 인생은 이런 것이다!! 하고 일갈하는 스승은 없으며....
그러한 분이 있다하더라도 내가 이미 낡은 버젼이라 거기에 접속 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그럼, 세상에서 이름을 얻은 분들에 대하여 야박하게 말하는 소시민으로서의 나는?
그저 건강하여 아들, 딸 녀석에게 폐나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남아있을 때 까지 일하여 우선 손자에게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자식들에게 손내미는 일이 아주 훗날의 일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내가 살아온 세상에 대하여>
나는 버킷 리스트가 없습니다.
일생을 삶의 현장에서 공정표를 짜고 진행상황을 체크하며 메모하고 반성하던 삶의 성취수단을 남은 인생을 몰아세우는데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전제하에 혹시 로또라도 맞아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 눈을 돌이켜 내가 지나온 시대를 관찰해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먹고살기에 허덕이고, 소소한 쾌락에 끌려다니고, 한 줌의 꿈에 끌려다닐 때.... 내 곁으로 과연 어떠한 시대, 어떠한 존재가 흘러간 것인가.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패티페이지, 케네디, 엘비스 프레슬리, 마리아 앤더슨, 함마슐드, 존 레논, 소피아 로렌, 마고트 폰테인, 헤르만 헷세, 마해송, 임어당....시대의 물결을 타고 흘러간 이름들과,
관타나모, 안케고지, 디엔비엔프, 장충단, 타이콘데로가, 달과6펜스, 래드비치, 4.19와 5.16, 경무대와 같이 이름지어진 것들이 그 물결을 따라 흘러갔습니다.
내가 미욱하여 느끼고, 바라보지 못한 삶의 대하(大河)속에... 이미 효용은 지났지만 .....
거기에 무언가가, 삶을 안심시키는 무언가가 그 흐름을 주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무언가의 존재>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의 어느날 밤.
나는 앉은뱅이 책상앞에 무릎을 꿁고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지요.
어둠에 싸인 방에 가족은 모두 잠들어 있는데 문풍지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촛불은 흔들렸고 그 흔들림을 따라 내 그림자는 뒤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내일이 일요일인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지난 주에 숙제로 내어주신 "주기도문"을 아직도 외우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두운 방, 내 뒤에서 춤추는 그림자 녀석을 보지 않으려고 주기도문에만 집중하던 어느 순간에,
갑자기 어느 존재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전혀 두려움을 주지않는 존재가 내 곁에 나를 감싸듯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그 존재를 이미 알고있기나 했던것 처럼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고 그 시간이 지속되기를 바랬지요. (주:3)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이 삶의 공간 어디엔가 마치 공기와 같이 투명한 어느 존재가 있음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성장하면서 내 인성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그 존재는 다시는 나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셜록 홈즈"처럼 나를 태워서 여기까지 흘러온 세상의 물결을 뒤적여 이 시공간 흐름의 배후에서 유년의 나를 안심케 한 그 존재를 찾아내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그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면 "여기"를 벗어나는 내일(來日)에 대하여는 관심도, 두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 짜투리 글 ******************************
1. (주:1) 이 분에 대한 세평이 아니라 제 느낌을 직설적으로 나타낸 것 뿐입니다.
김 교수님의 글을 휴대폰에 모아놓고 읽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2. (주:) 마찬가지 입니다. 그 분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고자하나 말씀이 너무 방대한데에 대한
이해력 부족한자의 불평일 뿐입니다.
3. (주:3) 이 체험은 일생에 잊지못할 경험으로서 누차 언급한 바 있습니다.
어떤 신비주의의 냄새를 풍기지않도록 경계하고 있고요.
-
- best솔개79 (10.0.xxx.xxx)
- 2021-02-14 11:25:36
- 글을 잘 쓰시던데 글을 써 보세요. 나는 유튜버도 해 봤는데, 그럭저럭 괞찮기는 했습니다. 유튜브를 하다 보면 그 스크립트를 쓰는 능력이 향상되고요.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제목을 구상하는 능력도 향상됩니다. 어떻게 글을 쓰면 조회수가 얼마나 더 나오나 맨 날 그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면, 실력이 늘어 납니다.
글을 쓰면서 이 문장 하나가 이걸 읽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유혹하나에 집중하게 되죠. 알고 보면 문장 하나 하나를 읽는 독자의 마음 속을 탐험하면서 써 내려가는 능력이 생긴다고 할까요?
그런 다음에 소설을 쓰는 겁니다. 소설 습작을 많이 해 봤는데, 이제 깨달았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선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것, 설명을 모조리 빼고 듬성 듬성 건너 뛰어도 독자들은 잘 이해한다는 것, 오히려 독자들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보기때문에 더 흥미진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바사님 필력은 나에 비해 월등하니 아마 몇 년 노력하면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 眞波 (10.0.xxx.xxx)
- 2021-02-17 13:22:56
- 현역은 아니지만 퇴임 후 항공구조단을 지원하는 일을 가끔하고 있습니다. 어제 12번 고속도로를 이용 지리산을 넘어 영암까지 1박2일 업무를 보고 귀가하며(코로나로 식당이 일찍 문을 닫아 이틀간 2끼니) 신체의 각 부위에서 노쇠 에러 신호가 울려 정비 소요가 발생했구나 느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리산 구간 교각 도로에 블랙 아이스가 생겨 차가 기우뚱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구형CPU에 경험치가 많이 입력되어 제동 않고 위험지역을 무사히 이탈했습니다. 아직 쓸만한 부속은 몇 있다 생각했습니다. 선배님 부속은 운용을 잘하시어 좋은 편이라 생각됩니다.^^
-
- 김바사 (10.0.xxx.xxx)
- 2021-02-17 21:11:50
- 오늘 날씨가 올겨울에 제일 추운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비행기를 엄청 좋아했는데 다시 군에 가라면 공군을 지원할 겁니다
제 몸도 지난 해에 호되게 망가진 후 복구에 애를 먹고 있지요.
올 한 해는 소극적, 방어적으로 몸조심하는 해로 정했습니다
-
- 솔개79 (10.0.xxx.xxx)
- 2021-02-14 11:25:36
- 글을 잘 쓰시던데 글을 써 보세요. 나는 유튜버도 해 봤는데, 그럭저럭 괞찮기는 했습니다. 유튜브를 하다 보면 그 스크립트를 쓰는 능력이 향상되고요.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제목을 구상하는 능력도 향상됩니다. 어떻게 글을 쓰면 조회수가 얼마나 더 나오나 맨 날 그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면, 실력이 늘어 납니다.
글을 쓰면서 이 문장 하나가 이걸 읽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유혹하나에 집중하게 되죠. 알고 보면 문장 하나 하나를 읽는 독자의 마음 속을 탐험하면서 써 내려가는 능력이 생긴다고 할까요?
그런 다음에 소설을 쓰는 겁니다. 소설 습작을 많이 해 봤는데, 이제 깨달았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선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것, 설명을 모조리 빼고 듬성 듬성 건너 뛰어도 독자들은 잘 이해한다는 것, 오히려 독자들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보기때문에 더 흥미진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바사님 필력은 나에 비해 월등하니 아마 몇 년 노력하면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 김바사 (10.0.xxx.xxx)
- 2021-02-14 23:27:50
- 그리 말씀하여 주시니 영광입니다. ^.^
저는 오로지 쓰는 즐거움에 이따금 끄적여 볼 뿐입니다.
그리고 올리는 글도 언젠가 올린 글의 재탕이고요.
다만 재탕이라 하여 그 글을 그대로 퍼올리는 경우는 없고 다시 씁니다.
한,두해의 간격을 두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제 과거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의 변화를 알게 되더군요. 그저 지금의 즐거움으로 만족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디지타이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배워 제 글들을 장식해보려 합니다.
마치 어린왕자의 생택쥐페리 선생처럼 말이죠. (감히 이런 비교를 ^.^)
그림에 약간 소질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장비만 사다놓고 배우지를 못하고 있지요.
글과 그림이 노년의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