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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 눈물의 편지

  작성자: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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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3-26 09:43:42




오늘은 천안함 폭침사건 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어제 올해 처음으로 제정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성대하게 개최됐는데요, 서해 NLL과 서북도서를 수호하다 전사.순직한 55용사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천안함 폭침 6주기를 맞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분들의 얘기를 좀 하려 합니다. 바로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에 대한 얘기인데요 이 분들에 대해선 그동안 “경계 근무를 소홀히 했다가 북 잠수정 기습에 당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았고 호된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가 아닌 평시에, 그것도 탐지가 매우 어려운 잠수함정의 기습 공격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대잠작전 능력을 가진 미군도 사전에 탐지해 대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은 "'천안함 46+1용사'를 영원히 추모하고 '불굴의 천안함 58전우'에게도 우리가 먼저 뜨거운 전우애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따뜻한 격려와 배려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전 해군부대에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해군참모총장이 공식 문서를 통해 생존 장병들에 대해 '전우'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위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중 아마도 가장 마음고생을 하셨을 분은 당시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이 아닐까 합니다. 최중령께서 이번에 해군참모총장의 지휘서신을 보고 그동안 가슴속에 꼭꼭 묻어두고 삭여왔던 소감을 정리한 눈물의 편지를 썼는데 이를 최 중령의 지인을 통해 입수하게 됐습니다.  최 중령에 대해 군 일각에선 고대 로마나 미국 등 군사선진국 같았으면 대령으로 진급시키고 2함대에 재배치해 설욕의 기회를 줬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천안함 폭침 6주기일을 맞아 이 편지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아울러 해군참모총장 지휘서신과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한 조선일보 기사도 함께 소개하니 참고바랍니다.  

먼저 최원일 전 천안함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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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안함 함장입니다. 제 몸 같은 배와 제 피붙이 같던 부하들을 잃은 죄인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때가 다가와 저에게 들립니다. '함장승함' 방송! 저는 자신있게 여러분들과 함께 라면 뭐든 다할거라고.... 늘 즐겁게 천안함에 오르곤 했습니다. 저는 그해 3월 16일 오후 104명과 같이 힘차게 출동임무를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58명 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전 2년간 함장을 하며 한번도 부하들을 남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들이 손끝하나 다치고 감기한번 걸리는 걸 용납 못 했답니다.


그러나 그러던 부하들이 3월 26일 이후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46명은 영원히 제 곁을 떠났답니다. 그날 바로 내귓가에 재잘대던 내 전우들이...전 아직도 현실이 아니라 느껴지는 데 그들은 차디찬 돌덩이 묘비에서 저와 만납니다. 저도 그들 곁으로 가려고 수차례... 했지만 살아도 죽은 듯 57명 때문에 하찮은 생을 붙잡아 봅니다.

울고 싶어도. 더 아픈 유가족들, 생존장병들 아련 거려 또 나를 걱정하다 2013년 하늘가신 아버지와, 천안함 가족들이 밟혀 강해지려 세수할 때 물 켜놓고 울고 머리 감으며 울고 운동하며 땀 흘리며 웁니다. 그러나 이제는 슬프면 울겠습니다. 제가 울음을 감추면 46명과 57명이 더 슬프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김없이 또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울며 말하겠습니다. 46명을 너무 사랑하고 보고 싶다고... 지금은 울지만 하늘에서 함장과 기쁘게 만날 날을 기다리며. 부디 편안하게 쉬소서 내 전우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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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서 생존한 58명 戰友에게도 손 내밀어 격려를"

- 전현석 기자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이 천안함 폭침(爆沈) 6주기를 앞두고 "'천안함 46+1용사'를 영원히 추모하고 '불굴의 천안함 58전우'에게도 우리가 먼저 뜨거운 전우애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따뜻한 격려와 배려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전(全) 해군부대에 보냈다고 24일 해군이 밝혔다.


'46+1 용사'는 전사한 천안함 승조원 46명과 수색·구조작전에 나섰다가 숨진 한주호 준위를 뜻하며, '58전우'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의미한다. 해군참모총장이 공식 문서를 통해 생존 장병들에 대해 '전우'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위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총장은 '천안함 피격 6주년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지휘 서신에서 "우리 군 내에서도 '천안함이 적 어뢰에 피격된 것은 장병들이 경계 근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이 일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당시 천안함은 평소와 같이 NLL(북방한계선) 근해에서 철저한 경계 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부여된 초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또 "천안함이 어뢰 피격을 받게 된 이유는 적(敵) 잠수함이 기습적으로 어뢰 공격을 하기 위해 침투해 온 그 시각과 장소에 천안함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사전 경보와 음파탐지기 성능이 미흡해 불가피했던 요소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총장은 "과연 불굴의 천안함 58전우에 대한 우리의 마음 씀씀이가 충분히 따뜻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정 총장은 미국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함과 영국 구축함 셰필드함의 과거 피격 사건도 언급했다. 인디애나폴리스함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잠수함의 기습 공격으로 침몰했고, 셰필드함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아르헨티나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가라앉았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각 함정에 마땅한 탐지·대응 수단이 없었던 사실을 고려해 승조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정부는 25일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과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26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 23일) 등 서해를 수호하다 숨진 장병을 추모하고 북한 도발을 상기하기 위한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행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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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얼마 받았냐" "자작극 아니냐" 들을때마다 가슴 아파

- 전현석 기자


천안함 폭침 생존자들 목소리


- 당시 조타수 함은혁 예비역 하사

"쿵 소리후 배 뒷부분 없어져… 그날은 가족·집을 잃어버린 날"


- 당시 갑판병 최광수 예비역 병장

"차라리 군대 있을 때가 편안… 한국에 있을 수 없어 佛 유학"


- 당시 갑판병 전준영 예비역 병장

"나라 지키려 최전방 임무중 생존, 왜 패잔병 소리 들어야하는지…"



함은혁(27) 예비역 하사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의 조타수 부사관이었다. 그는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폭침(爆沈)당했던 그날을 "가족과 집을 잃어버린 날"이라고 말했다. "'쿵' 하는 굉음이 나고 5~10분쯤 기절했던 것 같아요. 선임하사 두 분과 같이 갑판으로 올라갔는데 배 뒷부분이 없어졌어요. 전우들이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그때 이후 저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인이 됐습니다."


26일 천안함 폭침 6주기를 맞아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족들은 "하루하루가 (2010년) 3월 26일 같다"고 했다. 함씨는 천안함 폭침 12일 만에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가진 생존 장병 기자회견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왜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회견 전에는 지휘관 지시에 따라 환자복과 전투복을 수차례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함씨는 당시 회견에서 장병이 답변할 때마다 "서로 입을 맞췄다" "지시받은 대로 답한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수군거림을 지금도 듣는다"고 말했다.

 


천안함 갑판병이었던 최광수(28) 예비역 병장은 2012년 1월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한국에 더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씨는 "천안함 폭침 이후 두 달 만에 전역을 했는데 차라리 군대에 있을 때가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제대 후 그가 '천안함 생존자'라고 소개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상 얼마 받았어?" "천안함 폭침은 (우리 정부의) 자작극 아니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 당국의 사후 조치도 그에게 상처를 줬다. 최씨는 "사건 직후 한 지휘관이 천안함 장병에게 군병원 이용 2년 연장, 예비군 훈련 2년 면제, 국가 유공자 신청 조치 등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지켜진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배를 탔는데 6년 전 그날 상황이 닥친 것처럼 불안했다"고 밝혔다. 파도 소리, 엔진 소리 등을 들은 이후부터 다시 악몽을 꾼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호국보훈협회가 지난 5~8일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생존한 예비역 22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16명이 최근 6개월 이내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PTSD는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하고 나서 당시 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에 시달리는 등의 고통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22명 중 10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고, 5명은 실제 자해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씨는 "요새는 악몽을 꾸더라도 서로 의지하고 장난치던 전우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갑판병으로 복무했던 전준영(29) 예비역 병장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살아남았는데 왜 '패잔병' 소리를 듣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따지고 싶다가도 더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천안함 전사자 유족을 생각하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은 현재 '천우회(천안함 전우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며 각종 경조사를 챙긴다고 한다.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이 생존 장병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선 적도 있다고 했다. 전씨는 "대한민국이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뭉치자고 다짐한다"고 했다.


24일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 회원 80여명은 계룡대에 모였다. 25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46용사 유족협의회는 최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만원을 기부했다. 매달 2만원씩 내는 회비 중 일부를 모아서 성금을 냈는데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한다.


고(故) 박석원 상사의 아버지인 박병규(60) 유족협의회 회장은 "아들이 천안함 폭침 보름 전에 월급을 쪼개 모은 돈 100만원을 용돈으로 보내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최근 아들 둘이 더 생겼다. 2012년 입양했다고 한다. 현재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초등학생 아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 박 회장은 "두 아들이 잘 자라서 우리 석원이처럼 대한민국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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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 best 울프독 2016-03-26 추천 8

    참---- 이 한국형 관료주의 ---해군도 이래야만 하나?

    유능한 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청문회나 조사하고 그분의
    과실이 없다고 밝혀졌으면 다시 바다로 보내서 설욕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진급 심사에도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한심합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중요 원자탄 부품을 싣고
    단독 항해하다가 일본 잠수함 I 58의 뇌격에 침몰된 중순양함 인디아나포리스의 함장은 그후 제독이 되었습니다.
    수백명의 부하 수병이 표류하다가 상어밥이 되었는데도 그의 중요 과실은 없다는
    조사위원회의 결론때문이었습니다.

    최함장을 다시 바다로 내보내거나 진급시킨다고 부정적일 국민 여론은 없어보입니다,
    피해자인 최함장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천안함 괴담을 퍼뜨리는 개새끼들에게는 관대하기 짝이 없는 당국의 태도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 당당 2016-03-28 추천 4

    1. 본인의 과실이 없는 건 아니지요.
    2. 그 함정의 총 책임자가 함장이고, 그 전함의 모든 영욕을 함께하지요.
    3. 기회를 새로 줄지 말지는 고도의 정치적판단이 있어야겠지요.
    (여야 이런 차원의 정치적 판단이 아닌 군대를 지휘통솔하는 차원의)
    4. 휴전선의 철책이 뚫리는 것과 비교판단해야지요.
    물론 기술적-세부적 판단사항은 다르겠지만.
    5. 단순히 인정으로 봐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6. 북한군이 도발했다고해서 그 책임이 면책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경감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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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케 2016-03-27 추천 1

    참으로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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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baba 2016-03-27 추천 0

    어떻게 해서든 북괴 잠수함이나 잠수정 하나 때려잡았으면... 하나만 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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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fking 2016-03-26 추천 0

    Force님... 그런 인간들 휴전선에 갖다놔도, 책임감...뭐 이런거는 약에 쓸려고해도 없는 인간들이라
    막상 전쟁나면 제일 먼저 군화 바꿔 신거나,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제일 먼저 도망갈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은 삼청교육대 같은걸 다시 만들어, 거기에 넣어 확실히 밟아버리는 방법외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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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RCE 2016-03-26 추천 0

    천안함 폭침이 군의 실수라고 지랄하시는 키보드 워리어 놈들을 군함에 태우고 지들이 잠수함 접근하는거 탐지해 보라고 합시다. 진짜 어떻게 그분들이 패잔병입니까?
    지들이 방에 틀어박혀서 키보드 누르고 있는동안 누가 그들을 지킵니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군에 대한 불신이 높은지요? 누구 대신해서 싸우고 또 죽고 하는 분들입니다.
    키보드 워리어 놈들 잡아다가 최전방에 인간방패로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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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fking 2016-03-26 추천 0

    유랑자님...제가 단 댓글을 제대로 이해 못하셨나봅니다.
    잠수함을 왜 탐지 못했냐 책임을 묻자는 얘기가 아니라, 잠수함 같이 탐색하기 어려운,
    그것도 작심하고 기습하고 도망치는 놈을 잡아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나마 살아돌아온 함장님과 장병들에게 경계를 허술하게 했다느니 하면서 비난하고
    군은 위로는 못해줄망정, 가뜩이나 동료들을 잃고 죽음에서 살아돌아와 정신도 못차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청문회를 하고 조사를 한다하면서, 책임을 그들에게만 떠넘기려 한다는 것을
    비판하는것이 저의 댓글의 요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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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르만스크 2016-03-26 추천 4

    오늘 천안함 6주년이라 글들 올라오는거 보고 선거철이라고 지껄이는 사람들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선거 가까워 졌으니 천안함 격침된 날이라도 쉬쉬 해야되나요???
    저런 사람들 머리속엔 북한 미사일 발사도 여당을 돕기 위해서고 도발도 선거를 위해서
    어이가 없다가도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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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랑자 2016-03-26 추천 0

    제가볼때, 북에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이 가장큰사람인데, 전시에 가장 절저하게 불괴놈들을 부셔버릴수 있는 사람인데...
    그리고 efking 님 잠수함이 어쩨서 무서운 물건이지 아시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단독으로 탐지하기가 힘든 물건입니다.
    특히나 서해와 같은 곳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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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두께 2016-03-26 추천 2

    원인 제공자는 북한인데,,왜 우리 군인들이 북한이 도발하면 우리 군인들이 보직해임을 당해야 하는지요? 최함장을 전투함에 다시 복직 시켜서 다시한번 기회를 줘야 할거 같습니다..저분을 저렇게 두는건 북한이 원하는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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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사리 2016-03-26 추천 0

    노파심으로 말하지만 북한의 천안함폭침임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지만..
    사후조치에 관련된 상황판단에 관련된 내용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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