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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리포트> 美 이지스함 충돌사건 미스터리

  작성자: 유용원
조회: 984 추천: 0 글자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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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9-18 10:14:46


 
▲ 지난 8월 21일 말라카해엽에서 유조선과 충돌해 선미 좌현이 크게 파손된 미 7함대 소속 이지스함인 존 S. 매케인함. photo 연합



9년 전인 2008년 7월 미 하와이에서 태평양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채피(CHAFEE)’함에서 2박3일간 동승 취재를 한 적이 있다. 한국계 함장 덕에 국내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 이지스함에서 사흘간 먹고 자며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채피는 1조2000억원짜리 최신예 함정으로 최대 1000㎞ 밖의 적 항공기나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다.
  
   첨단 AN/SPY-1D 위상배열 레이더와 컴퓨터로 한꺼번에 18대 안팎의 적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요격하는 능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첨단 장비에만 의존하지 않고 수병(견시병)들이 교대로 함정, 함교 양 측면에서 감시를 계속했다. 민간 선박들과의 예상치 못한 충돌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장병들이 실수로 함정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지는 사고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미 함정에선 실족에 의한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채피는 훈련 기간 중 승무원 실족 상황을 상정, 바다에 빠진 승조원을 구조하는 훈련도 했다. 이지스함에는 이처럼 레이더 외에도 선박과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2중, 3중의 인적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최근 민간 선박과 잇따라 충돌한 미 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매케인함과 피츠제럴드함도 채피함과 같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이다. 알레이버크급은 길이 154m, 폭 20m, 승무원 300여명으로 만재배수량은 8400~9200t이다. 1300㎞ 떨어진 목표물을 족집게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크루즈(순항)미사일을 비롯, SM-2 및 ESSM 대공미사일, 구경 20㎜ 근접방공시스템, SH-60 ‘시 호크’ 대잠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신의 방패’로 불리며 첨단 함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 이지스함이 두 달 사이에 두 차례나 민간 선박과 충돌 사고를 낸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지난 8월 21일 오전 5시24분쯤 미 해군 7함대 소속 이지스함인 존 S. 매케인함이 싱가포르 동쪽 말라카해협에서 라이베리아 국적의 유조선 알닉MC호(3만t급)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조원 10명이 실종되고 5명이 다쳤다. 매케인함은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조부와 부친을 기념해 명명된 배다.
  
   7함대에 따르면 이날 충돌은 매케인함이 싱가포르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항해하던 중 발생했다. 7함대는 “심각한 손상으로 승조원 침상과 기계실, 통제실 등이 침수됐다”고 밝혔다. 사고 후 싱가포르 창이항에 도착한 매케인함의 좌측 후미 쪽에는 커다란 충돌 흔적과 구멍이 나 있었다. 알닉MC호는 길이 183m에 배수량이 매케인함의 3배가 넘기 때문에 충돌 때 매케인함이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6월 17일 새벽 7함대 소속 이지스함인 피츠제럴드함이 일본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선 ACX크리스털호(2만9000t급)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승조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 해군은 지난 8월 17일 예비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피츠제럴드함 함장인 브라이스 벤슨 중령 등 지휘관 3명을 해임했다. 7함대 함정들의 잇단 사고로 7함대 사령관도 보직해임됐다.
  
   잇단 충돌 사고의 자세한 원인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 해군은 피츠제럴드함의 경우 ‘상황인식(situational awareness)’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1차 결론 내렸다. 레이더 감시병이든 함정 측면에서 감시를 하는 견시병이든 다가오는 민간 선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미 언론들은 매케인함 사고의 경우도 매케인함 쪽 대응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고가 난 말라카해협은 전 세계 상선의 4분의 1이 이 해역을 통과할 정도로 혼잡한 지역이다. 이렇게 혼잡한 해역을 항해할 때는 평상시보다 늘어난 항해 요원을 운용한다. 레이더 감시병, 견시병 외에 다른 선박의 접근을 알아챌 수 있는 승조원들이 평소보다 많았을 텐데도 사고가 났다는 얘기다.
  
   이런 해역을 항해할 때는 보통 적 탄도미사일 및 항공기 탐지용인 이지스 SPY-1D 레이더는 끈 채로 항해 레이더를 가동한다. 해군 관계자는 “항해 레이더는 작은 어선까지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레이더가 고장나지 않은 이상 3만t짜리 대형 선박을 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미 태평양사령부 연합정보국 작전국장이었던 칼 슈스터 하와이퍼시픽대학 교수는 미 CNN에 “이런 곳에서 항해할 때는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유조선의 경우 항로를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매케인함 쪽에 충돌의 책임이 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CNN의 군사분석가인 릭 프랭코나는 “최첨단 장치를 갖춘 미 구축함이 어떻게 10노트(시속 18.5㎞)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3만t급 상선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피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직 고참 장교의 말을 인용해 “매케인함 같은 함정의 야간 당직 책임은 종종 22∼24세인 젊은 장교가 지게 되는데 이들은 선교 내의 레이더 감시 장교나 선교 밑에 위치한 지휘센터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며 “이런 일련의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견시병 등이 민간 선박의 접근을 알아챘지만 대처하기에는 너무 늦어 충돌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 해군의 과도한 업무수행이 불러온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998∼2015년 미 해군의 군함 수가 20% 줄어든 반면 해외 파병이 줄어들지 않으면서 승조원들의 업무부담이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7함대 소속 함정들은 한반도와 남중국해에서의 작전 횟수가 늘어 과중한 업무부담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케인함은 지난 8월 10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중국 인공섬 미스치프 암초 근해에서 ‘항해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출동해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을 하고 항구에 기항하기도 했다. 피츠제럴드함도 7함대 소속으로 한반도 출동 경험이 많다. 이들 함정은 지난 2~3년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출동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잇단 7함대 함정들의 사고가 미군 전력 손실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데 있다.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미 7함대는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출동하는 핵심 전략부대다. 핵추진 항모 1척과 이지스 구축함 7~8척, 이지스 순양함 2척 등이 배치돼 있다. 최근 사고로 2척의 이지스 구축함이 작전 불능 상태에 빠짐에 따라 7함대 이지스 구축함 전력의 30%가량 손실이 생긴 셈이다.
  
   군 소식통은 “미 이지스함들의 잇단 사고는 아무리 첨단 함정이라도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며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며 “7함대 함정들 손상에 따른 유사시 전력 공백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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