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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Shocker

  작성자: 군사고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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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2-01 18:07:41



안녕하십니까? 군사고문관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은 미국내에서 무려 23년간 소련 KGB를 상대로 음지에서 이루어진 Operation Shocker(충격작전) 에 대한 것입니다. 



1958년부터 1982년까지 이루어진 방첩작전은 미 국방부와 FBI와의 긴밀한 협조와 철저한 비밀유지에 의해서 미국내에서 활동하는 KGB 요원들의 감시와 역정보를 이용하여 조직망을 색출하여 일망타진하려고 하였던 방대한 작전계획이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당시 소련에 의해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치명적인 신경화학 무기인 Novichok이 현재 영국에서 스파이들의 공격 물질로 사용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Donald Grunchel, FBI special agent 




이 작전은 FBI 특수요원인 도널드 그룬첼(Donald Grunchel)이 창안을 하고 조셉 케시디 (Joseph Edward Cassidy, (master sergeant)) 상사를 포섭하여 이중 스파이로 만들어 소련을 기만하기 위한 기반을 확립하고 소련인들과 접촉하여 미국에 침투한 GRU( the Glavnoye Razvedyvatelnoye Upravlenie, 구 소련 군정보조직) 장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 미국인을 어떻게 스파이로 포섭하고 운영하는 지 알아내는 것, 미군에 관한 구 소련의 정보에 어떤 공백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임무를 주어 파악하게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미국내에서는 학생들이 핵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공습훈련을 벌여 책상밑으로 숨는 연습을 하였었고, 약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방사성 낙진을 피하기 위해 대피소를 지어 물, 통조림식품, 전등을 쌓아놓는 훈련을 했을 때였습니다.



또한 1953년도에 줄리어스 로젠버그(Julius Rosenberg)와 에덜 로젠버그(Ethel Greenglass Rosenberg) 라는 미국 출신의 유대인 부부가 1940년대부터 소련 KGB에 포섭되어 미국의 핵무기 기술을 소련에 빼돌린 혐의로 FBI에 체포되어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시기였습니다. 





John Edgar Hoover, 1895.1.1.~1972.5.2.




당시 냉전 환경 속에서 FBI는 에드거 후버가 국장(37년간 FBI국장으로 재임)으로 소련의 스파이를 잡는 상황에만 그치지 않고 소련의 스파이에 대항해서 FBI요원을 운영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1958년에 미 육군 the United States Evaluation Board(평가위원회)와 FBI가 나중에 명명된 충격작전(Operation Shocker)으로 명명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FBI에는 자체적으로 접선스파이 선발 및 양성을 위한 DESECO라는 비밀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KGB와 GRU 그리고 다른 동구권 정보기관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스파이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작전도 DESECO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FBI가 의도했었던 것은 미국 내에서 접선에 나서는 소련 스파이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만일 소련 스파이들이 FBI와 미국을 위해서 일하도록 전향시킬 수 있다면 더없이 유리한 일이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소련인들과의 접선을 위해 선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중간첩으로 선발된 사람들에 의해 소련에게 건네진 정보들은 진짜 비밀 정보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비록 그 정보들이 그런 목적으로 허가된 것이기는 해도 FBI 담당자들은 그 대가로 돌아오는 그 이상의 이득을 원했던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진짜 비밀 정보들을 선별해서 소련 스파이들에게 주는 이유는 상대에게 그 이중 스파이가 믿을 만하다고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신 그러한 확신을 소련 스파이들이 가지게 함으로써 나중에 적대정부를 혼동시키고 오도하기 위한 가짜 서류나 틀린 정보를 섞어 넣음으로서 중요한 기만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함이 더 컸습니다. 


충격작전 또한 근본적인 목적은 소련을 중대하게 기만하기 위한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작전들 중에 속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FBI는 이 작전이 소련의 불법스파이, 즉 외교관 신분의 보호막 없이 활동하는 스파이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기를 희망했었습니다. 워싱턴의 소련 대사관에서 활동하는 정보장교나 뉴욕 유엔본부의 소련대표부에 있는 요원들을 감시할 수 있고 그들이 접선하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셉 케시디에게 FBI가 부여한 암호명은 Wallflower 였습니다. 윌플라워를 통해서 접선하는 소련의 불법스파이들을 발견하면 신원확인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스파이 작전은 위험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진짜 비밀들을 적에게 넘겨지게 함으로써 미국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작전 운영은 위험과 이로운 점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FBI Headquarters,  935 Pennsylvania Ave NW, Washington, DC 20535


 

충격작전은 FBI가 모든 측면을 책임졌다고 합니다. 미 육군과 함께 FBI는 소련 스파이들에게 미끼로 던져질 군인을 가려내서 선발했었고, 작전과정에서 FBI는 운영 요원을 담당했습니다. 미 육군은 소련 스파이에게 넘겨줄 비밀 문서뿐만 아니라 군인 한 명을 요원으로 FBI에게 제공했습니다. 


펜타곤에서는 비밀위원회의 정교한 심사체계에 의해서 소련 스파이에게 넘겨줄 문서를 심사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합참의장이 소련인들에게 넘겨줄 문서를 승인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모든 사항은 매우 민감하게 다루어졌었고, Top Secret (일급비밀)였습니다. 






Joseph Edward Cassidy (1920.6.25.~2011)


펜실베니아 주 이리에 (Commonwealth of Pennsylvania, Erie) 5남배 중 세 번째로 태어난 캐시디는 아버지가 전기회사 직원이었습니다. 펜실베니아에서 세번째로 큰 이리시는 다른 곳으로부터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리시는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이 반년이상 계속되는 공업도시입니다.  어미니는 캐시디가 3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캐시디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자 캐시디의 형과 누나 그리고 캐시디를 고아원에 맡겼다고 합니다. 여덟살 때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대공황이었던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캐시디는 열여덟살 때 이리시 철강회사에서 침목을 까는 일을 하였었고 열심히 일을 하는 사이에 2차세계대전과 진주만 기습이 일어나자 캐시디가 일했었던 철강공장일은 나날이 사세가 확장되어 바쁘게 일하는 사이 캐시디의 친구들은 전쟁에 나가게 되었고 캐시디의 일은 미국이 전쟁을 하는데 뒷받침되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징병될 가능성은 없었는데도 캐시디는 군에 자진해서 입대를 하였습니다. 


1947년 일본에 있는 제1기갑사단에 배치되어 제302정찰 중대에 특별파견되어 근무하였었고, 1952년 극동사령부에 배치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 중에 일본 고쿠라(小倉駅)에 배치되어 근무를 하였습니다. 1960년 한국에서 근무를 하였었고 1962년 2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미국 볼티모어 근교 에지우드 무기공장에 있는 메릴랜드 항공방위군에서 근무를 하게되었습니다. 


도널드 그룬첼 FBI 요원은 캐시디 상사에게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한뒤 내부적으로 GRU 장교라고 밝혀진 미하일 대닐린을 접선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1963년 9월 19일, 소련 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던 보리스 콜로드야즈니를 캐시디 상사가 접선하게 됩니다. 캐시디 상사의 주 방위군 임무에 흥미를 가질 줄 알았던 콜로드야즈니는 사실 GRU 장교였었고 당시 미 육군의 화학전 본부인 에지우드의 활동 상황에 대해 캐이시 상사에게 문의를 하였지만 처음에는 모른다고 하여 만남이 끝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FBI는 캐시디 상사가 GRU 장교의 미 육군 에지우드 화학무기 본부에 대해 궁금해 했다는 사실을 듣고 이 문제 상황의 전개에 대해서 조사를 착수하고 FBI는 캐시디 상사를 신경가스 실험실로 전속시키는데 몇 달의 시간이 걸려서 미 육군에 협조요청을 하여 발령을 내게 합니다. 1964년 6월 10일 볼티모어 에지우드(Baltimore edgewood) 내 무기개발 및 공학실험실의 빈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하일 대닐린 (Michael Dannielynn), GRU Officer




그후 GRU 장교를 캐시디 상사가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미하일 대닐린이라는 소련 대사관 3등 서기관이었습니다. 미 국무부 외교관 명단에 올라있던 대닐린은 캐시디 상사에게 신경가스(VX)에 대해 알아 낼 수 있는 정보를 가져오라고 재촉했었다고 합니다. 


1964년 10월 대닐린은 캐시디 상사를 만났으며 캐시디 상사가 무기실험실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날듯 기뻐했다고 합니다. 소련인들이 원하는 부서에 캐시디 상사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대닐린은 캐시디 상사가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지, 어떤 문서를 보았는지 궁금해 했으며 캐시디 상사에 대해 신경가스에 관한 모든 질문을 내쏟았다고 합니다. 


당시 소련에서는 신경가스의 성분과 투발 수단(신경가스가 든 폭탄을 목표로 보내서 가스를 방출시키는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었다고 합니다. 캐시디 상사는 과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기실험실에서 캐시디 상사의 임무들 중 일부는 과학자들에게 의해서 만들어진 서류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캐시디 상사가 속한 부서는 일반인들에게는 존재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상태였었고 극비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윗쪽 사진은 볼티모어 동쪽에 위치한 Edgewood weapon factory, 1960 year, 이 곳에서 과학자들은 삼엄한 경비속에서 기지 내 비밀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VX가스를 개발하였습니다. 오른쪽 원 표시의 건물은 신경가스를 생산하는 test factory


아래쪽 사진은 캐시디 상사가 근무했었던 무기 개발 및 공학실험실 모습



보통의 살충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경가스는 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신경가스는 나치가 처음 개발을 하였습니다. 


                 


Gerhard Schrader (1903.2.25 ~ 1990.4.10)                  슈레이더 박사가 발견한 신경가스 분자구조식

German scientist




1936년 독일 화학자인 게르하르트 슈레이더 박사가 살충제 화합물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신경가스를 최초로 발견하였는데 슈레이더 박사는 타분(Tabun) 또는 GA로 알려인 유기인이 함유된 에스테르를 합성하였습니다. 



이어서 슈레이더 박사와 나치의 과학자들은 훨씬 더 강력한 신경가스를 개발하였는데 GB라고 알려진 사린은 슈레이더 박사가 1938년 발견을 하였습니다. 또한 GD라고 알려진 소만도 개발하였습니다. 


나치는 브레슬라우에 신경가스 생산 공장을 지었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가스 무기를 당시 인기를 끈 비누 이름인 트릴론이라는 암호명을 붙여 위장하였습니다. 




Nazi nerve gas lap & factory, Breslau




전쟁이 끝난 후 소련은 독일의 신경가스 비축량을 수중에 넣고 브레슬라우(Breslau) 공장을 해체해 소련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미 육군 정보부는 슈레이더 박사를 생포하여 신경가스 구성성분을 알아내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과학자들도 타분, 사린(Sarin GB), 소만(Soman)을 복제할 수 있었습니다. (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화학무기는 VX와 사린, GD라고 합니다.)


1950년대 영국과 미국 과학자들은 또 다른 강력한 신경가스인 VX를 개발하였습니다.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 모두 생화학 무기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정보작전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에지우드는 세균전 연구 본부인 메릴랜드의 포트 데트릭(Fort Detrick)과 솔트레이크 시 남서쪽 60마일에 있는 덕웨이(Dugway) 화학생물 무기 시험소와 함께 소련의 주요 목표였다고 합니다. 





Dugway VX nerve gas test base

덕웨이의 신경가스로 추정되는 실험으로 그 지역의 6,000마리의 양들이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린, 소만, VX는 오늘날에도 세계 3대 주요 신경가스로 꼽힙니다. 세 가지 모두 콜리네스테라스(cholinesterase)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서 효력을 발생합니다. 

콜리네스테라스는 호흡, 뇌기능, 근육운동을 포함하는 신체의 신경체계를 통제하는 중요 효소입니다.





콜리네스테라스는 신체 내의 신경자극 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 축적되는 것을 중화시킵니다. 신경자극이나 메시지가 한 신경세포의 끝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세틸콜린이 있어야 합니다. 신경세포 사이의 전달을 통해 인간은 생각하고 숨쉬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경가스가 콜리네스테라스의 생산을 억제하면 아세틸콜린을 중화시킬 수 없게 되고 신경체계는 빠른 속도로 전달되다가 통제를 잃고 마구 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숨쉬는 것을 잊도록 함으로써 호흡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다가 질식으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Edgewood "G" Laborarory (신경가스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미국 과학자) , 출처: Chemical Warfare Service



에지우드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더욱 강력한 신경가스를 개발하고자 많은 시간과 상당한 비용을 들이며 노력하였으나 결국에는 극복이 불가능한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러한 실패는 '충격작전'의 핵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GRU 장교들이 캐시디 상사에게 물었던 질문들을 FBI가 분석해 보았을 때 나온 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o. 소련은 미국이 어떤 신경가스를 생산해 무기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 확실하였음.

o. 미국은 세 가지(사린, 소만, VX) 신경가스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기로 결정하였는지 여부.

o. 아니면 두 종류 이상을 개발하고 있는지 여부.

o. 미국이 신경가스를 방출하기 위한 이원화탄을 개발 중인지 여부.

o. 기존의 신경가스 말고도 새롭고 더욱 강력한 신경가스를 개발 중에 있는지 여부.


   

M687, 155mm Binary chemical projectile (155mm 이원화 화학탄 구조), 1982년 1월 11일 생산.

(https://picryl.com/media/a-view-of-the-m687-155-mm-nerve-agent-projectile-developed-by-chemical-systems-f2ba2c

source : The U.S. National Archives


1957년 에지우드의 유기체 연구 책임자였던 벤 위튼(Van Witten)이 이원화탄을 고안해 내었고, 에지우드의 실험실과 덕웨이의 VX 야전실험에서도 이원화탄 개발과 시험발사는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원화 화학탄은 신경작용제를 제조하는 전구물질인 원료를 격벽(판)을 이용하여 포탄내부에 2곳으로 나눈 것으로 포탄이나 항공탄, 유도탄등을 이용해 발사했을 시 포탄에 걸린 회전으로 격벽의 내용물이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 밀려나는 힘이 두 개의 화학제를 분리하고 있던 칸막이를 깨뜨리고 회전압력으로 열 에너지와 회전하는 운동에너지로 목표한 지점으로 날아가는 동안 원료가 뒤섞여서 화학무기의 성능을 온전하게 구현, 화학탄이 탄착하게 되는 지점에 위치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한 무기입니다. (2017년 2월에 북한은 전방부대에 신형 이원화탄 VX-2를 실전배치 했다고 기사화되었습니다.)



이원화탄은 가스를 보관하기에 훨씬 안전하고 화학탄을 다루는 병사나 조종사들의 심적 위험 부담도를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1965년 5월 GRU 요원이었던 대닐린은 캐시디 상사에게 에지우드에서 생산되는 VX 성분을 알아내라고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대닐린은 캐시디 상사에게 눈에 보이지 않게 글씨를 쓰는데 사용되는 특수 처리된 카본종이 뿐만 아니라 이것을 숨기는 용도로 속이 비어있는 건전지도 주었습니다. 카본종이는 캐시디 상사가 소련인들에게 백지처럼 보이는 종이에다가 메시지를 적어 전달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사용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1931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화학공학 학위를 받고 37년간 에지우드에서 개발부서 책임자로 일을 했었던 Saul Hormats는 미국 화학전의 아버지라고 칭해지는 미 화학무기 개발에 큰 업적을 남겼던 인물입니다. 




Saul Hormats은 1960년 대에 이원화탄의 개발을 중지시켰었습니다. 

첫째는 다른 나라들이 그것을 얻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제3세계 국가들이 오지의 창고에서 이원화탄을 만드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


둘째는 이원화탄은 군사적 가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 보통 포탄에 더 많은 사린을 넣을 수가 있어서 이원화탄보다 더 효과적이었다고 보았기 때문.





대닐린 같은 적국의 고급 장교들을 속이려면 그럴듯해 보이는 정보들과 진짜 정보들을 혼재해서 주어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럴듯한 정보는 반(反) 정보라고 합니다. 당시 미 국방부에서는 이러한 반정보를 만들어 내고 승인하는 정교한 체계가 존재했었습니다. 반정보인 가짜정보는 합참의장 작전조직인 J-3 산하의 일련의 비밀위원회에 의해 통제되었다고 합니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은 FBI, CIA의 대표자들과 군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캐시디 상사를 그룬첼요원에 이어 두 번째로 담당한 FBI special agent, James Morrissey)


'충격작전' 기만 단계 동안에 제임스 모리세이가 케이시 상사의 담당 현장요원이었습니다. 이 충격작전의 가장 민감한 단계에서 캐시디 상사를 조정하는 역활을 모리세이 요원에게 맡겨졌습니다. 


기만 계획은 3중 기만이었다고 합니다. 신경가스는 GA에서부터 GH까지 있었습니다. 캐시디 상사가 GRU 장교에게 미국이 강력한 GJ까지 개발했다는 정보를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허위정보(반정보)였다고 합니다. 

새롭고 강력한 GJ를 개발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암시적으로 미국이 GI라는 신경가스도 개발했다고 소련이 믿도록 하는 것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GJ가스는 이원화탄을 사용한다고 밝히는 가짜 문서를 소련에게 넘겨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에지우드 과학자들은 이것을 개발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었다고 합니다. 개발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GRU에게 넘겨준 개발결과는 거짓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이 이러한 개발에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하고 지원을 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소련도 이에 투자하도록 만들고 이러한 작전의 취지는 소련으로 하여금 이원화탄으로 된 똑같은 신경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게끔 하는 것이 충격작전의 전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FBI 관리는 이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가스는 불안정했었고, 저장을 할 수 없어서 무기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독성이 지속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련에게 정보를 넘겨주어 그들도 애써서 만들도록 하고 그 가스가 불안정하고 해독제도 없어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도록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해독제가 없어 자기 병사들을 보호할 수 없으니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충격작전은 기만의 핵심을 미국이 화학무기 경쟁에 있어서 앞서 있다고 소련이 믿도록 오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캐시디 상사가 대닐린 GRU 장교에게 넘겨준 문서들은 소련이 그 전부를 믿게 하기 위해 가짜와 섞인 충분한 양의 진짜 정보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련 과학자들이 그 진짜 정보들의 가치를 활용해 미국의 과학자들이 찾지 못한 새로운 발견을 할지도 모를 위험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의 관리들은 소련이 값비싼 투자를 하면서 잘못된 길을 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고 합니다. 

1966년 초부터 1969년 6월까지 3년 반 동안 충격작전의 기만단계는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 1974년 2월 2일 펜타곤에서 조셉 캐시디 특무상사는 훈장을 비밀리에 수여를 받았습니다. 왼쪽은 캐시디 부인, 훈장 수여자는 미육군 참모총장 에이브람스 대장이 캐시디 특무상사에게 수훈훈장을 수여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이 훈장은 다시 되돌려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충격작전'의 보안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








소련의 신경가스 개발 계획은 모스크바에 있는 비밀실험실과 볼가 강을 따라서 500마일에 걸쳐 퍼져 있는 경비가 삼엄한 실험기지와 생산공장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크레믈린 동쪽으로 4마일 떨어진 떨어진 곳에 있는 국가유기화학 기술연구소에서 연구와 개발이 진행중이었다고 합니다.


소련 과학자들은 그곳에서 사린, 소만, VX 신경가스를 실험했고 새롭고 더욱 치명적인 신경가스를 개발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구 소련당시 체복사리 內 화학무기 공장 시설(현재는 폐쇄)



동쪽으로 약 350마일 떨어진 곳에는 실험기지와 공장이 볼가 강을 따라 퍼져 있었습니다. Chuvash(추바시) 공화국의 수도인 체복사리(Cheboksary)와 노보체보크사르스크(Novouralsk) 에 있는 공장에서는 모스크바 실험실에서 개발된 신경가스 성분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Volsk 위성지도, 인터넷에서 검색이 안되는 현재에도 러시아의 비밀도시( 노동수용소 비슷한 시설이 지금도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약 42개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남쪽으로 250마일 떨어진 볼스크(Volsk)시 부근에 있는 두 개의 쉬카니(Shikhany)군사기지(비밀도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됨)에서도 신경가스가 실험되었다고 합니다. 

볼고그라드, Volgograd (구 스탈린그라드) 남쪽 250마일 떨어진 곳에 키로프 화학공장은 주요 생산기지였었으며, 공장시설의 일부는 2차 대전 후 나치 신경가스 공장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이 어떤 종류의 신경가스를 연구하고 생산하는지를 소련 과학자들이 예측하려고 했을 때 립만과 볼고그라드의 과학자들이 입수한 정보의 일부는 미 국방부와 FBI가 벌인 충격작전에 의해 캐시디 상사를 통해 GRU 장교들이 정보를 얻어 입수하여 수집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의학통계연구소라는 위장된 이름의 소련 정보조직이 모스크바 연구소에 정보를 전달했었고 모스크바 연구소는 다시 볼고그라드 공장에 넘겼던 것입니다.  


또한 추가적인 GRU의 첩보정보는 화학정보부서에 의해 볼고그라드로 직접 전달되었습니다. 그 부서는 에지우드에서 개발된 최루가스 BZ와 이원화탄 신경무기에 관한 미국의 연구결과를 전달했습니다. 


1972년도에 소련 정보조직이 영국인이 개발해 미국 에지우드의 과학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던 VX의 실제 성분을 알아냈었고 소련의 VX 대량생산은 노보체보크사르스크에서 1972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레닌 훈장을 받고 소련 신경가스 계획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은 보리스 립만(Boris Lippmann)은 당시 잘나가고 있던 소련 화학무기 연구원이었습니다. 

 

1965년 2월 초, 눈이 녹으면서 볼가 강의 둑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립만과 과학자들은 둑 안쪽 웅덩이가 오염되었을지 모른다고 우려했었습니다. 볼고그라드 공장은 거의 공황에 직면하였었는데 만약 오염이 되었다면 볼가강 하류의 수만 명의 주민들이 중독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험이었다고 합니다.  소련 과학자들은 하류 쪽 12마일까지 강을 검사하였으나 다행히 신경가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하루 반나절 후 둑은 복구되었습니다. 4개월 후 립만은 강을 보고 전율 했으며 볼가강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고 합니다. 





The Volga River




물고기 수만 마리가 폐사를 하였기 때문에 배가 드러나서 하얗게 변한 것이었는데 강 하류 50마일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신경가스 공장은 즉각 주범으로 의심받았고 립만은 볼고그라드의 거대한 수력발전소의 수문을 닫아 강의 수심이 정상보다 4m 낮아졌었고 태양열로 인해 수온이 높아져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온도에 민감한 철갑상어가 폐사된 것이 원인임을 알게 되었지만 신경가스 공장의 책임자였던 립만은 유태인이었다는 이유로 직무태만 죄로 2년 형을 선고 받고 볼스키 근처의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2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1년 후에 풀려났다고 합니다. 립만외에 누구도 볼고그라드 공장에서 소만 가스의 생산을 책임지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1968년 립만이 볼고그라드 공장에 복귀한 후 소만생산공장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Shikhany laboratory, research complex in Russia




1972년 립만은 VX의 대량생산을 감독하라고 노보체보크사르스크(Novouralsk)로 보내졌었고, 당시 쉬카니(Shikhany) 제1공장에서는 새로운 신경가스를 연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충격작전'에서 소련에게 건네진 GJ 성분이 소련을 자극했는지 GRU의 굳게 닫힌 문서보관소에 접근하지 못하는 한 결코 밝혀지지는 않겠지만 1973년에 키르피체프(Kirpichev)와 오글레프(Oglethorpe)는 그 당시 존재했던 그 어떤 신경가스보다 8배 내지 10배나 강력한 신경가스를 완성하게 되게 됩니다. 





노비촉 분자구조식




새 신경가스의 이름은 Novichok(노비촉 ; 새로운 자)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신경가스 명칭은 Novichok A230 이라고 합니다. 


결국 충격작전은 캐시디 상사가 GRU 정보 장교들에게 전해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소련으로 하여금 돈과 시간을 낭비하게 하려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더욱 치명적인 신경가스인 노비촉을 개발하게 된 동기를 부여하게 된 셈이 된 것입니다. 








시리아 창고에서 발견된 155mm mustard gas 탄, (러시아제 포탄)



충격작전(Operation Shocker)은 소련을 상대로 정보적인 면에서 많은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합니다. 3명의 불법을 저지른 스파이를 색출하고 10명의 소련 스파이가 확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파이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불법 스파이를 수면 밖으로 드러나게 한 것만으로도 충격작전은 작전을 운영했었던 FBI 요원들의 견해는 정당성과 성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소련이 어떻게 스파이들을 포섭하고 운영하는지...

소련의 스파이 기술(진짜처럼 생긴 돌덩어리 안에 마이크로 필름이나 중요한 메모를 숨기는 기구, 투명글씨를 쓸수 있는 화학약품, 롤오버 카메라, 암호, 통신수단)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작전을 지탱했었던 중심 인물은 미 육군 상사 캐시디였습니다.  




책 크기의 패키지를 들고 입에 파이프를 문 채 캐시디 상사가 브루클린의 한 거리에서 소련인과 접선을 하려는 모습.



소련 GRU 장교에게 미국의 신경가스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는 불안한 결정에도 캐시디 상사는 계속해서 헌신적인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23년동안 캐시디 상사는 성공적으로 조국인 미국에 대한 배반자인 척 했던 것입니다. 


작전 기간 동안 약 4,500여 page 이상의 모두 합참의장의 승인을 받은 비밀문서들이 수십만 달러와 교환되어 소련으로 넘어갔습니다. 

성공적인 충격작전의 성과와는 별도로 소련의 화학무기 개발 프로그램(Foliant Pro.)에 넘어간 反 정보들이 의도치 않은 노비촉(Novichok)이란 강력한 신경가스를 개발하게 만든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Novichok 의 신체적 영향을 소개한 figure

노비촉에 노출되면 30초에서 2분 사이에 동공수축, 호흡곤란, 구토, 발작,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할 수 있습니다.















댓글 2

  • hejaz 2019-12-04 추천 0

    신경가스 효과를 간단히 설명하면
    신경세포들은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고 시냅스에서는 아세틸콜린 이란 물질을 분비해서 다음 신경세포로 정보를 전달 합니다.
    분비된 아세틸콜린은 다음 신경세포 리셉터를 통해 정보를 전달한 후 콜린에스테라아제 란 효소에 의해 분해됩니다.
    신경가스는 이 콜린에스테라아제 효소에 들러붙어 아세틸콜린을 분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분해되지 않은 아세틸 콜린은 신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포에 신호를 가해서 신경망이 계속 흥분하도록 만들고 제기능을 못하게 만듭니다.
    신경망이 마비된 동물은 결국 사망 하게 됩니다.

    댓글 (1)

    군사고문관 2019-12-04 추천 0

    긴 글을 읽어주심과 함께 신경가스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hejaz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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