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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가 천민?” 김해 김씨들 뿔났다

  작성자: Remember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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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8-06 11:34:32

“허황옥도 상인 딸? 700만 후손들 정체성 훼손”
가락종친회, MBC 드라마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http://www.newdaily.co.kr/html/article/2010/08/06/ART53573.html

 

사진은  금관가야 병사

 

 

 

댓글 29

  • best STG44 2010-08-06 추천 5

    오래전부터 MBC는 역사 드라마 고증을 X같이 하기로 유명한 방송사죠.

    제작비 드립치며 핑계를 대는데.....그져 시청자에게 흥미를 끌어 시청률 올리기에만 급급한

    한심하고 어이없는 방송사입니다.

  • panzer 2010-08-08 추천 0

    참고로 저 김수로 ..... 제가 요즘 알바로 엑스트라 한번 나가봤는데 ..... 할말이 없어지더라능 .....

    언젠가는 이 드라마 사고칠것 같더라 생각했었다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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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군홍산문명 2010-08-07 추천 0

    문헌적으로 믿을 수 있는 최초의족보는 1476년(성종 7) 간행된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족보 《성화보(成化譜)》로서 《문화유보》보다 80년 앞서고 있습니다 또한 고려사을보면 가첩이라해서 집안 내력을 담은 게있습니다 지금의 족보와 같으며 이를 근거로 그이전에도 집안 가계도가 있었을꺼라 예상하는 역사학자도 있는것으로알고있습니다
    중국역사를보면 왕의계보를 적는것에서 유래했으며 개인이 보첩(족보)을사용한건 한나라때 관직등을적은 예가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를 근거로 고조선 이후부터 집안내력등을 적은 가계보는 귀족가문에서 존재했을가능성은 있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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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군홍산문명 2010-08-07 추천 1

    신라 가야 를 포함한 김씨는 흉노의 후손입니다
    흉노가 두나라로 분열됐을때 한나라가 그 한쪽을 쳐서 왕자를 잡아오는데..그게 김씨의 조상입니다
    나중에 탈출했는지? 어떤이유에서 한반도 남부에서 후손들이 번성하게됩니다

    마치 은나라 기자가 무리를 이끌고 지금의 요동,요서있었던 고조선에들어가 기자조선(한씨조선)을세웠던것처럼 말이죠.(선우,기,한 씨성은 같은 성씨 이며 기자조선,마한 의 왕성)

    대부분 지금의 한반도 성씨는 중국에서 이동해온 성씨들입니다 토착성씨는 없다고보시면됩니다 이유는 밀려서 일본으로 건너갔기때문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진시황때이전에는 한반도 민족과 중국대륙북쪽의 민족이 같은 동이족이였으나 그당시 동남아계열의 민족이 이미 수천년전부터 서서히 이동해와 중국 남부에 대거 살고있었는습니다 야만인정도?... 하지만 진시황 통일후 다수를차지하는 지나족이 한족으로 흡수됩니다
    이 이후부터 같은 동이족 계열이였던 한족이 지나족의 혈통이 섞이면서 한민족과 다른성향을 보이게되며 지금의 한족이 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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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총탄 2010-08-06 추천 0

    허허허 저두 종친인데 거참 씁쓸하군요
    지금까지 보고듣고 배운것을 드라마에서 '천민, 상인딸'이라고 해버리니 약간 빈정은 상하는 군요

    초대조부들 나온다고 즐거워했는데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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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dford1 2010-08-06 추천 0

    신라와 가야의 왕실은 흉노족 계통입니다. 한반도의 토착민족은 흉노족에게 정복당했다는 이야기죠. 개인적으로은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한반도 토착민족을 의미하고..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환웅은 사실상 북방에서 침공한 정복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군신화는 한반도 토착민족이 북방민족에게 정복된후 나라를 세운 스토리를 표현한것 일겁니다..김수로왕이 천민이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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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익인간 2010-08-06 추천 0

    김해김가의 직손은 신체적 특징이 유전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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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yn1214 2010-08-06 추천 0

    어느방송의 실수는 귀엽게 봐주고 실수로 넘어가고, 어느 방송은 때려 죽여도 쉬언 찮을 한심한 곳이고... ㅋㅋㅋ 쌩 지.랄 쑈는 님들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이젠 개나 소나 쥐쇅히나 툭하면 이슈화 시키고 끼리 모여 발광 하는게 생활이 되었구만..! 그래봐야 개구리 목청 터지는 소리들이 겠지만..! 주저리 주저리 말들도 잘하는 똑똑이들 같기는 한데.. 어디 나사하나 빠진 헛똑똑이들만 모여있는것도 아니고..! 별 시덥잖은 일 가지고 발광들 이라니..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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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진 워커 2010-08-06 추천 0

    아...그런 말씀이시군요... 난 또 나 죽일려고 ...ㅎㅎ

    근데 그게 말이 됩니다. 그 당시엔 똑똑한 사위들에게 재산도 떼어주고 햇으니깐요...
    장가간다는 말이 거기서 나온거 아닙니까. ^^
    율곡 이이도 아부지집에서 자란게 아니라 엄마 신사임당 집에서 자랐죠..
    그당시엔 재력이 있는 양반집에선 딸이 크면 똑똑한 사위 얻어 한 재산 떼어 주기도 했습니다.

    낙향해서 본가가 아닌 처가로 내려가 말년을 보낸 학자들이 많은 이유도 거기서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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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프리카 2010-08-06 추천 0

    워커님 그게 아니라 혹시라도
    "안동김씨의 족보도 안동김씨 후손이 만든게 아니라 외척들이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때문에 울컥 하시는 분이 있으실거 같아서 드린말씀입니다^^
    워낙 이부분은 이야기 나올때마다 뭐가 진실이네 아니네 싸움이 나더라구요.
    제가 볼때는 쓸대없는 소모성 싸움일 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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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진 워커 2010-08-06 추천 0

    파프리카님
    안동김씨를 비하하는 내용이 아닌데요...

    이 내용은 이름이 기억 안나지만 역사학자에게서 들은 내용인데요....
    난 족보가 고려시대 정도 부터 만들어져 내려온 줄 알았는데, 족보라는 책으로 만들어진 건 그리 오해 일이 아니라 하더군요.

    경주 왕릉 공부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
    족보만들기 열풍은 1600년대부터 크게 일어납니다. 장자 상속제가 확립이 되자 당근 조상찾기 작업으로 가문에서 족보 만들기 시작했고 족보를 만들고 나니 거기에 걸맞는 조상묘도 있어야 하고... 근데 무덤에 묘비를 세우기 시작한 건 조선 중기 인가 부터거든요.. 그래서 1700년대엔 산송이라고 해서 주인 없는 무덤을 두고 문중끼리 싸움이 납니다.. 서로 자기 조상무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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