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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장군(前 주월 공사) 특별인터뷰

  작성자: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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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12-02 15:10:14

"자꾸 파란 하늘이 파란색이 아니라구 하는 사람이 많아
답답합니다. 북한동포와 김정일과 그 추종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동정심과 동포애를 혼동하는 사람들,
통일과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답답한 마음에 글을 너무 많이 올렸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자유월남 패망의 교훈
이대용 장군(前 주월 공사) 특별인터뷰

written by. 한영숙



유난히 봄비가 세차게 내렸던 27일 오후,
월남패망의 최후 증언자라고 할 수 있는 이대용 자유수호국민운동 상임의장
(전 주월 한국대사관 정무담당 공사, 예비역 장군) 사무실을 찾아가는 기분은 봄비로 인해
더욱 짙푸르게 물든 신록의 아름다움으로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지금으로부터 29년전 4월,
월남에게 있어 그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으리라. 당시 휘몰아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공산당으로의
전향을 끝까지 거부하며 5년동안 인간 이하의 잔혹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형무소 생활을 꿋꿋히
감당하며 굳은 의지를 불태웠던 시대의 진정한 군인.

이제 그에게 더이상 월남전을 증언해달라는 요청도 줄고, 6.25의 참상을 생생하게 들려달라는
요구도 훨씬 줄어들었지만 역사를 기억하지못하는 민족은 반드시 망하고. 지난 날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반성하며 거듭나지않는 민족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장군으로부터 월남 패망의 진실과 교훈을 생생하게 들어보았다.




"며칠 전에 베트남을 다녀오신 걸로 알고있는데
무슨 일로 다녀오셨는지요, 또 최근의 근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회사의 사외 이사로 있는데 그 회사에서 500만불 투자해서 사이공에 공장을 세우려고 한다.
공장 부지도 보고 협조할 일도 있고해서 다녀왔다. 또 요즘 '자유수호'라는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재작년 정래혁, 장경순, 김창규 장군등 7명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한달에 한번씩 소식지
만들자고 해서 자유수호 소식지를 금년 1월부터 발행하고 있다. 회원은 약 2700명 정도 확보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시 주월 한국대사관에서 정무담당공사로 근무하셨는데
주월 대사관에서 근무하신 기간과 직책을 소개해 주십시오."


1963년 9월 주얼 한국대사관 무관으로 파월하여 1966년 10월까지 근무하고 귀국했다. 그후 1968년 1월
준장으로 진급한 후 다시 주월 한국대사관 정무담당 공사로 파월했다. 그리고 주월 한국군이 철수한
후인 1973년 4월 주월 한국대사관의 경제담당 공사로 임명되어 남베트남 패망시까지 계속 근무했다.
남베트남이 패망한 후 북베트남 당국에 억류되어 5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1980년 4월 석방되어
귀국했다.

베트남은 총 3번을 갔었다. 처음엔 고딘디엠 대통령때 가고 다음은 티우대통령때 다녀왔는데 티우
대통령과는 미국에서 같이 공부해서 친한 사이다 보니까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내가 가면 해결되니까
나라에서 자꾸 나를 보냈다...총 3번 가서 대사관 근무 9년6개월 형무소 생활 5년했다.


월남패망 2년 전인 1973년 1월에 파리에서 미국과 남북베트남 3국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월남에
있던 외국군대가 모두 철수하게 됩니다. 당시 남베트남은 수적인 군사력으로는 북베트남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였습니다만 쉽게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월남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파리 평화회담에서 남북이 앞으로 싸움 하지말자고 결의했다. 그래서
남쪽이 베트콩과 협의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자..절대 우리민족끼리 싸우지말자고 했는데 북쪽은
달랐다. 어떻게든 미국을 내쫓고 남북통일, 즉 적화통일 하겠다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패하기도 했다. 군대가 강하고 장비가 좋고 그래도 소용없더라...경제가 암만 우위고 잘살아도
그것이 적을 막아낼 수는 없다. 결국 자기 나라는 자기가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어야하는데 그게
없었다. 나도 놀랐다. 하루 아침에 베트남이 우르르 무너지는데 어쩔 도리가 없더라.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당시의 상황과 남베트남 패망을 현지에서 목격하면서 느낀 소감은? "

4월 30일 미군 합동으로 철수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29일부터 미군헬기를 이용해 철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근데 그게 잘 안됐다. 미군이 공산당하고 미군이 철수하기까지는 절대 사이공에 들어오지
말라고 약속했는데 30일 새벽 3시반쯤 갑자기 이상한 정보가 들어왔다 지금 공산당이 사이공
들어와있다라는 거짓된 정보가 들어온 거다
그래서 마틴 대사가 조기철수를 중단해 버렸다. 미국 사람중에도 철수못한 사람이 많다. 나도 빨리
떠나라고 했다.
불란서 대사관이나 영국대사관이 치외법권지역이니까 거기로라도 가면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차마
갈 수가 없었다. 왜냐면 당시 나는 철수본부장이었다. 베트남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고국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야하고, 또 그걸 교섭해야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당시 상당히 초조하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말로 다 표현못한다, 철수하는 헬기가 떠서 저만치 가는데 나는 바로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내버려지니 마음이 착잡해지더라. 그곳 날씨가 양철같은 데 열받으면 100도 가까이
되는데 더운 줄도 몰랐다. 나중에 보니 물에 빠진 것처럼 옷이 흠뻑 젖었더라.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생각한 게 있다. 나중에 살아 한국에 돌아가면 월남이 어떻게 망했는지 꼭 한국에 가서 증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남 패망이후 상당기간 억류된 생활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체포됐을 때의 상황과 수감됐을 때의
고초, 귀환경위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

치화형무소에서 보낸 5년은 정말 끔찍했다. 5년동안 한번도 면회도 안되고 햇볕은 298일만에 쪼였다.
사형수방에만 2년 1개월 갇혀있다보니 말할수 없이 처절한 생활이었다. 알다시피 치화형무소는 동양에서
가장 악명높은 형무소다.
이번에 월남갔을 때 거길 가봤는데 엣추억은 무조건 아름답다고 하잖냐...근데도 눈물이 핑 돌더라...

거기서 하루 두끼밖에 못먹었다. 국은 멀건 호박국이 전부다..호박 하나에 한 500명 정도 먹게 만들거다.
원래 몸무게가 78킬로그램이었는데 나중엔 40킬로까지 살이 빠지더라. 거기다 오래 갇혀있다보니 허벅지며
팔 다리 모두 구더기같은 게 생기는데 알고보니 피하조직이 파괴되서 그렇다고 하더라. 배가 고파서 바나나
2개 먹어봤으면...이가 아파 죽겠는데 누가 약이라도 보내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지냈다. 아마 이북의
정치수용소가 그럴거다.

내가 투옥돼 있을 때도 제일 불안했던 것이 나를 북한으로 잡아가지않나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
사람들이 나를 데려가려고 애를 많이 썼다. 하지만 북한 체제가 얼마나 악랄한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절대로 못간다고 했다. 만약 가게되면 죽어버린다고 엄포도 놓았다. 내가 간다면 간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이지 않는가 무엇보다 나라에 누가 될까봐 절대로 갈 수 없었다.

약도 없다..한마디로 처참하다..먹이지않는게 제일 고통이다 또 넌 몇 년이다 하는 기약이 없다.
밤에 자꾸 총소리 나서 알고보니 총살시키고..그러면서 항복하라고 강요하는데 항복하면 면회도 시켜준다고
했지만 나혼자만 한번도 면회를 못했다. 그러니 나중에 그들도 감탄하더라.

그 다음엔 물도 조금 주던 걸 나중엔 실컷 주더라
간수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는데 구중위라는 참 친절한 간수가 있었다. 구중위 덕분에 물은 실컷 먹었다.



"감옥에 계실떼 무엇보다 고국의 가족들이 제일 안타까와하셨을텐데요"

4월 6일 가족을 보내면서 막내가 당시 10살이었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아버지 아버지 언제 오세요?"
그러더라 그러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데 내가 "그래 4월 20일쯤 갈것이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게
기약없는 것 아니냐
그래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막내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게 제일 가슴아프더라.
그래서 가족들 보내고 돌아와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반드시 막내가 받도록 해달라는
유언장을 썼다.

사실 집사람은 매번 내게 정신교육시켰다. "당신이 군인정신이니 책임이니 하지만 월남에서 죽으면 개죽음
아니냐 어떻게든 살아돌아오라고...어린 자식 넷을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군인이기때문에 그랬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남아서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출하나 하는 책임감이
나를 못떠나게 했다.



"귀환당시 얘기 좀 해주십시오 "

아이젠버그라는 사람이 유태인인데 브로커다. 공산국가도 왔다갔다하면서 도와주고..박대통령이 처음엔
그 사람을 미워해서 일본으로 내쫓았는데 그사람이 내가 이대용 공사를 데려올 수 있다고 해서 극비리에
추진된 것이다. 근데 영국은 나라 힘이 강하니까 4개월만에 석방되더라 나는 5년 수감돼 있었는데...당시
박대통령이 애를 많이 쓰셨다.

공항에 4월 12일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다 옷을 좋은 걸 입었더라 그래 옆사람한테 오늘 무슨 날인가?
학예회라도 했나 했더니 그 사람 하는 말이 "한국이 경제개발을 해서 요즘 저 정도는 다 입고다닙니다"
고하더라 원래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그말을 들으니 나라가 고마와서 눈물이 나더라.

월남은 망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노력했으니
나라가 망하지않을 게 아니냐며 나라가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



"2002년 9월에 월남에서 당시 장군님을 체포한 '즈엉 징 특' 베트남 대사를 만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얘기 잠깐 들려주시죠.

날 잡아간 사람이 그 사람이다. 내가 체포됐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악독하게 하던지 언젠가는
보복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2년도 에 떡하니 서울에 온거다. 그때가 월남 수교 10주년이라고
해서 특대사를 초빙해서 강연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 사람을 만났디.. 나중에 들으니 그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하더라... 왜냐면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려는 꿋꿋한
정신이 적이지만 머리가 수그려지더라는 거지. 근데 심문할 당시에 내가 특대사에게 " 영원한 적국도
없고 우방도 없다. 외교관은 절대 체포를 못하게 되어있지 않느냐. 다만 추방을 하면 되는데 당신은
날 심문할 자격이 없다"고 항의를 했는데 특대사 말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말이 가장
생각나더라"고 하더라.

그래 내가 그랬지 "난 당신과 사원이 없다..당신은 당신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고
나는 우리나라를 위해 일한 것일 뿐이지 않느냐?"고 했더니 좋아하면서 지금은 친하게 지낸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이 패망 직전의 베트남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십시오. "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있는데 병원에서 데모를 하더라. 계엄해제 독재타도를 외치는데...
월남에 데모가 상당히 많았다. 그걸 보니 내 사랑하는 조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걱정되더라. 얼마
전에 선거가 끝났는데 흔히 말하는 좌익 중에도 정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하라는 거지...절대 북한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아직 북한 노동당규약에 적화통일하겠다는 규약이 있다..그걸 우리나라 진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못하고 따라하려한다. 또 그런 사람들이 진보 정치인인 체 가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을 부정하면 안된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으면 큰일 아닌가?

물론 좌익은 미국이나 영국에도 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헌법을 지키면서 행동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제도권내에 들어와서 마음바꿔서 행동하기를 바란다.

* 약 력
1925년 황해도 금천출생
1948년 육군사관학교 제7기 졸업
1955년 육군대학 졸업
1958년 미 태평양지구 합동참모학교 졸업
1960년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 졸업
육군 제23연대장
주월 한국대사관 무관
육군 제6관구 작전부사령관
주월 한국대사관 정무담당 공사
주월 한국대사관 경제담당 공사
1975년 월남 공산정부에 의해 억류
1980년 석방 귀국
생명보험협회 회장
사단법인 한월 친선협회 회장
예비역 준장
육사총동창회 회장
자유수호 국민운동 상임의장

* 저 서
- 김일성과의 악연 1809일
- 압록강에서 대동강까지
- 압록강 푸른 물
- 통곡하는 승리자
- 사이공 억류기
- 국경선에 밤이 오다



이미지

이대용장군.jpg

댓글 2

  • style! 2004-12-02 추천 0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월남 조종사가 F-5E로 대통령궁을 폭격후 월북했다는 내용입니다...상상이 되나요?..한마디로 F-16조종사가 청와대를 폭격후 월북했다는것이죠...읽고나서 월남 패망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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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 2004-12-02 추천 0

    아~.....기억이 나는군요...." 사이공 억류기 " 를 읽은적이 있습니다...물론 일반인이 쉽게 읽은 종류의 책은 아니지만.....뭐냐면 공군비행단 ALERT 대기실의 궁핍한 도서중에서 고른책이었는데 월남 패망전상황, 수용소에서의 지급된 배급내역, 수용소에서의 고통, 그리고 전두환이 스웨덴을 통해 구명했던내용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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