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사블린(Валерий Михайлович Саблин; Valery Mikhailovich Sablin ; 1939 ~ 1976)



톰 클렌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붉은 10월(숀 코넬리 주연)>의 경우 두 가지 실화를 기본으로 하여 적당히 살을 붙이어 소설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첫번재는 소련 잠수함 보조함(submarine tender; 잠수함에 물자와 연료를 공급해 주는 수상선박으로 일종의 움직이는 잠수함 기지 역할을 함.)의 선장인 요나스 피에스키스(Jonas Ple?kys)가 1961년 스웨덴의 고틀란트 섬으로 함정을 몰고 와서 망명을 한 사건(원래 목적지는 에스토니아의 탈린 항구이었음.)이며,
(참고; 이 사건으로 요나스 피에스키스는 소련 당국에 의하여 궐석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그는 미국 CIA 등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서구로의 망명에 성공하여 미국, 과테말라 등지에서 안전하게 거주 - 한 때에는 실리콘 밸리에서 근무하기도 함. - 하였고 구소련 붕괴 후에는 그의 조국인 리투아니아를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함.)


두번째는 1975년에 소련 발틱 함대 소속의 프리깃트함(크리바크 I 급, 3,300톤)인 스토로제보이(Сторожевой; Storozhevoy) 호에서 당시 부함장이자 소비에트의 정치 장교인 '발레리 사블린(Valery Sablin)'이 일으킨 선상반란 사건입니다.
물론 이 반란 사건은 이 과정에서 이로 인한 사상자도 없었고, 또한 이후에 이 사건의 주동자인 발레리 사블린(1976년 사형 집행)과 반란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알렉산더 세인(Alexander Sasha Shein, 10년형 선고) 말고는 처벌받은 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해프닝적 사건으로 묻혀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사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발레리 사블린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한 볼쉐베키 원칙주의자(레닌주의자)로서, 이 사건처럼 소비에트 체제의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도 없다는 점에서 이 발레리 사블린의 선상반란 사건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는 서구에 그 자세한 실상이 제대로 파악되지를 못하여, 단지 서구사회로 망명을 하려다가 실패를 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다 정도 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읍니다.
오히려 이 발레리 사블린은 이 스트로제보이 호를 장악한 다음 기수를 동쪽의 레닌그라드(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로 돌려 제2의 10월 혁명을 시도하려고 하였읍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두번재 사건인 '발레리 사블린 사건'이 굉장히 관심을 끕니다.


이 발레리 사블린 사건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겠읍니다.


1. 발레리 사블린은 누구인가?

발레리 사블린은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고위 해군 장교를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집안의 전통대로 해군 장교가 되기로 하고 이를 위하여 정해진 엘리트 코스를 밟습니다.
16세에는 프룬제 해군 사관학교(Frunze Naval Academy)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정의감이 남달리 투철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소비에트 체제를 성립시킨 레닌의 1917년 10월 혁명에 크게 감동을 받아 그 누구보다도 철처한 볼쉐비키 원칙주의자가 되기로 일찍부터 결심합니다.
특히 원칙주의자로서 그는 모든 형태의 위선과 거짓말, 그리고 소비에트 사회 도처에 만연한 부폐상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고, 이것은 곧 모든 형태의 썩어빠진 관료주의 체제(곧 당시의 현 소비에트 체제)를 타도하겠다는 그의 신념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그의 신념을 (단순히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데,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모범을 소비에트 혁명을 성공시킨 불라디미르 레닌에게 찾습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이 훗날 1975년의 프리깃트함 스트로제보이 호에서의 선상반란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동력이 됨.)


그런데 그가 자라면서 점차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소비에트 체제야말로 모순덩어리의 체제로서 온갖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는,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않되는 체제라는 생각이었읍니다.
즉 소비에트 연방의 경우 겉으로는(말로는)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평등사회로서 이 소비에트 에서는 모든 형태의 차별이 없는 지상 낙원, 인류 사회의 최고 발전 단계라는 것이지요.
그러자 실제 상황을 보면 이런 선전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 새로운 지배층으로 떠오르는 공산당 관료집단의 경우 하는 일은 거의 아무 것도 없으면서 인민 위에 완전히 군림하여 새로운 지배자 계급으로 확고히 뿌리를 내리지요.
바로 이들이야말로 레닌의 1917년 10월 혁명을 배신한 자들로 제거되어야 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발레리 사블린의 생각에는 이들 관료집단은 바로 다름아닌 새로운 '계급', 즉 소위 특권 계급으로, 이들이야말로 사회의 '기생충'으로서 하루빨리 타파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것이었읍니다.
지금 군림하고 있는 이 관료집단(주로 군과 공산당 고위관료 집단)은 스스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위한 '변명'으로 레닌의 붉은 혁명을 내세우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공산당 관료 집단(곧 관료주의)을 타파하여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레닌이 추구하던 볼쉐비키 혁명이고 이것이 진정으로 10월 혁명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되지요.


그는 약관 20세 때에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인 니키타 후루쉬쵸프에게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 현상과 새로운 기생충 계급으로 등장한 관료집단을 하루빨리 타파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긴 장문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여기에서도 이 발레리 사블린의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엿볼수 있음.)
다만, 다행인 것인 이때에는 니키타 후루쉬쵸프에 의하여 상당부분 사회 분위기가 부드러워져서 어느 정도 이러한 행동이 용인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스탈린 시대였다면, 이런 식의 시도(지배계급인 공산당 관료층을 고발하는)는 곧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는 행동에 다름 아닐 수가 있었지만, 1956년의 후루쉬쵸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 운동 덕분에 이런 식의 용감한? 시도가 어느 정도 용인될 수는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러한 편지 사건으로 상당한 불이익이 없지는 않았는데 즉, 그는 이로 인한 여러 징계 등을 받았고 결국 동료들보다 1년 정도 늦게 프룬제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발레리 사블린은 이 해군 사관학교를 무난히 졸업하게 되는데, 이 때 그에게는 통상적으로 해군 장교로서 구축함 등에 근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현역(구축함 등 선상근무)에서 복무하는 것 대신 스스로 자원해서 레닌 공산주의 정치학교(Lenin Political Academy; 쉽게 말해 정치 장교를 양성하는 곳)에 등록을 하여 레닌과 칼 마르크스에 대한 보다 깊은 공부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참고로 이러한 그의 행동은 대대로 해군 장교집안이었던 그의 집안에 상당한 충격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집안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는 이 레닌 공산주의 정치학교에서 그 누구보다도 레닌과 마르크스를 열심히 연구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 레닌과 마르크스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지금 현재의 소비에트 체제는 결코 레닌과 마르크스가 주창한 바로 그 사회와는 전혀 거리가 먼, 하나의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말로는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공산당 관료와 일반 국민들 사이의 괴리감은 그 어느 사회보다도 심각한 상태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체제가 이를 가리기 위하여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거짓 현실을 보면 볼수록 그는 굉장히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고, 분명히 스스로 기회가 된다면 이 엉터리 거짓 체제를 완전히 뒤집는 혁명을 스스로 이루어내겠다고 결심을 굳게 하게 됩니다.


특히 그는 이 레닌 공산주의 정치학교 시절에 그동안 금기시된 레온 트로츠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그러니까 당시 니키타 후루쉬쵸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에도 불구하고 이 레온 트로츠키는 여전히 금기 인물로 소위 '인민의 적' 으로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이 정치학교 시절에 레온 트로츠키에 대한 여러 원본 자료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그는 그동안 소비에트 체제가 얼마나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도저히 상종못할 체체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즉, 적-백 내전의 어려운 상황하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오늘날의 붉은 군대(소비에트 군)를 조직해낸 사람이 바로 이 레온 트로츠키이며, 이 레온 트로츠크는 소위 영구적 혁명을 주창하여 점차 관료화되는 소련 공산당 고위관료 집단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수없이 하였다는 점,...
그러나 이러한 식의 내부 비판이 당시 기득권 세력이 된 공산당 관료 집단에게는 상당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스탈린에 의하여 온갖 혐의가 씌워져 결국 물리적으로 제거되게 된 것 등을 알게 됩니다.
(참고; 아시다시피 소비에트 군의 경우, '정치장교'라는 공산당 세포조직이 집단이 정식으로 조직화, 이들이 전군의 각 부문에서 통제권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유명한데, 소비에트 군에서의 정치장교단의 본격적인 육성도 바로 이 레온 트로츠키의 작품이었읍니다. 적-백 내전이 한창일 때, 볼쉐비키 정권의 전쟁성 장관인 트로츠키는 긴급한 필요에 의하여 제정 러시아 시대의 장교단을 대거 받아들이지만 이들의 충성심을 의심하여 공산당 핵심 세포를 이들 곁에 파견하여 이들 전문 장교단을 감시하도록 한 것이 소비에트 정치 장교단의 시작입니다.
이들 정치 장교단원들은 막강한 권한 만큼 그 책임도 무거웠는데, 예를 들어 어떤 부대가 상부 명령 없이 퇴각할 시에는 그 부대에 파견된 정치 장교부터 1순위 총살 대상자가 되지요.
다만 소비에트 체제에서의 정치장교단의 경우 그 부작용이 너무 심각하였기 때문에 2차대전 이후에는 이 정치장교의 역할이 점차로 줄어드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따라서 1970년대에 접어들면 이 정치장교의 '통상'적인 역할은 사실상 군 내의 사기 유지와 정기적인 공산주의 강연을 하는 것 등으로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다만, 이 정치장교는 일종의 군을 '감시'하는 또 하나의 눈의 역할이기에 예를 들어, 해군 함정의 경우 이 정치장교가 함장 다음가는 중요 포스트를 차지하게 되고 주요 작전 과정에 늘 참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등 '결정적인 경우'에는 상당한 권한이 있었읍니다.)


어찌되었던 발레리 사블린은 이 레닌 정치학교 시절에, 자신이 정치 장교가 되어 이 정치 장교로서의 권한과 기회를 이용하여 그 자신이 다시 혁명을 일으켜 이 썩어빠진 엉터리 위선 덩어리의 소비에트 체제를 뒤집어업겠다는 결심을 완전히 굳힙니다.
다만, 그 관료사회를 이루는 기득권 층의 벽이 너무 두꺼워서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러한 체제는 그 '내부'로부터 붕괴를 시켜야 하는데 그 선봉 역할을 자신이 맡겠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1917년의 10월 혁명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전통적으로 소련 해군이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그룹(다른 병과에 비해)으로 1917년 10월 혁명 때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예: 1905년의 전함 포템킨Potemkin 호에서의 반란이라던지, 1917년 10월 혁명 당시 수병들은 거의 전적으로 레닌과 볼쉐비키를 지지하였으며 특히 크론슈타트 수병들이 결사적으로 볼쉐비키 정권을 수호한 것 등등.) 따라서 해군 장교로서 자신이 중심이 되어 '제2의 10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업적에 또 하나를 덧붙이는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를 위하여 그는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우선 그는 정해진 코스대로 해군 선박의 '정치장교'가 되는데, 그는 1970년대에 와서는 당시 소련의 최신 해군 군함인 스토로제보이 호(크리바크 I급)에서 근무(계급은 소령)를 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는 이 프리깃트 내에서 정치장교로서 함장 다음가는 통제권을 갖게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장교로서의 역할을 100% 이상 열심히 수행하였는데, 예를 들어 보통 다른 정치 장교들이 하는 공산주의 강의는 정형화되고 굉장히 따분하여 하품 밖에는 나오지 않는 그런 것이었지만, 이 발레리 사블린의 강의는 완전히 달랐읍니다.
그는 특히 세르게이 에이젠쉬테인의 전함 포템긴(흑백 무성영화)를 종종 상영하면서 그의 수병들에게 '우리 해군은 소비에트 10월 혁명의 중추 중에서의 중추인 자랑스러운 집단으로 우리 소비에트 공화국의 미래는 바로 여러분의 어깨에 달렸다' 라고 끊임없이 열성적으로 주지를 시키고, 아울러 그는 특히 레닌의 10월 혁명의 '정신'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계급없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지,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등의 문제를 계속해서 던짐으로써 점차로 수병들에게 무엇인가 신선한 감동을 주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처음에는 수병들이 늘 정치장교들이 하던 식의 재미없는 따분한 강의려니 하였다가 그가 진정으로 열심히 10월 혁명의 정신을 강조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거리는 모습을 보고 점차 이에 동화되어 갑니다.
뭐라고 할까요, 이 발레리 사블린은 다른 정치 장교들과 달리 무엇인가 진지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넘치는 열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게 되지요
어느덧 수병들에게 이 발레리 사블린의 강의는 지루한 것이 아닌 무엇인가 새로운 혁명 정신을 불어넣는 없어서는 않되는 신선한 강의로 바뀌게 됩니다.


물론 이 발레리 사블린의 경우, 그의 강의 시간에 모인 수병들과 장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일으킬 '제2의 10월 혁명'에 적극적으로, 확고하게 자신을 도와줄 동지를 찾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찾아낸 혁명동지는, 바로 그의 조수이자 그의 공산주의 강의 준비를 도와주던 알렉산더 세인(Alexander Sasha Shein) 이라는 수병이었읍니다.
이 알렉산더 세인 이라는 사람은 출신이 프로렐타리아 출신의 정직하고 심지가 굳은 자로서 이 발레리 사블린이 생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혁명 동지이었읍니다. 발레리 사블린이 몇 차레에 걸쳐서 알렉산더 세인과 이야기를 해 보니 그 역시 온갖 모순덩어리의 소비에트 체제에 대해서 굉장히 참기 힘든 불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하루빨리 어떻게 해서든 이 지긋지긋한 위선덩어리 체제를 끝장내어야 한다는 데에 둘의 의견이 일치하였읍니다.



2. 1975년 11월8일 스토로제보이 호에서의 반란
1975년 11월8일 발틱 함대 소속의 이 스토로제보이 호는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 항에 정박중이었읍니다. 이는 곧 있을 10월 혁명 기념식에 발틱함대가 참여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때 발레리 사블린은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발레리 사블린이 생각하기에 이 위대한 10월 혁명 기념식 도중에 자신이 구상하는 제2의 10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보다고 그 상징적 의미가 컸었기 때문이었읍니다.


이에 따라 11월8일 밤에 그는 행동에 옮기기로 하기 은밀히 그의 혁명 동지인 알렉산더 세인을 선실 내 강의실로 부르는데 이 때 발레리 사블린은 알렉산더 세인에게 예상 외의 질물을 퍼붓습니다.
즉 그 내용은 '내가 그 동안 혁명 운운하며 너를 동지처럼 대한 것은 다 그 이유가 있음인데 이제부터 묻는 말에 답하라' 하면서 알렉산더 세인이 왜 소비에트 체제에 불만을 가지는지 또 그의 배후에 무슨 세력이 있는지, 지금이라도 소비에트 KGB를 위하여 일할 생각은 없는지 등을 마치 수사관이 범인 심문하듯이 엄하게 추궁을 합니다.
마치 너는 내가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듯이요...

이 때 알렉산더 세인의 반응은 시종일관 똑같았는데 즉, 같이 혁명을 하기로 하였으면 같이 행동하여 같이 죽음을 맞던지 하는 것이 옳지 왜 그렇게 나를 의심하느냐, 그리고 소비에트 체제를 무너뜨리고 진정으로 계급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 싶다는 내(알렉산더 세인) 결심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으니 나를 죽이던 살리던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더욱 더 의연하게 나옵니다.
결국 이런 질문은 발레리 사블린이 혁명의 거사를 앞두고 혁명동지인 알렉산더 세인의 마음이 흔들리는지를 떠보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이러한 확인을 통하여 이 둘은 같이 혁명(선상 반란)에 목숨을 바치기로 굳게 결의합니다.


여기에서 발레리 사블린의 거사 계획은, 일단 전 수병을 선실 내 강의실에 모이게 한 후 자신의 혁명관(제2의 10월 혁명을 일으켜 모순덩덩어리의 썩어빠진 소비에트 체제를 엎어버리자는)을 수병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이들의 동의를 전적으로 구한 후에 혁명의 도시인 레닌그라드로 향해하는 것이었읍니다. 물론 자신들에 반대하는 수병 혹은 장교 등은 선실 내에 가두기로 하고요....
그리하여 현재의 리가 항구를 떠나 동쪽의 레닌그라드(현 상트 페데르스부르그)로 향하여 방송국 등을 신속하게 점거한 후에 일반 시민들을 향하여 자신들이 현 소비에트 체체를 무너뜨림으로써 부폐와 타락이 없는 진정 평등한 계급없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혁명의 이념'을 공중파를 통해 방송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혁명적 이념을 호소하여,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혁명의 적인 관료주의를 무너뜨리는 제2의 10월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읍니다.


이러한 계획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무모한 계획으로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다수적인 평가),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얼마던지 다른 해석(소수의 견해)도 가능합니다.
즉, 이에 따르면 발레리 사블린이라는 사람이 정치장교로서 결코 무모한 이상주의자가 아닌 그 누구보다도 현실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진 자 라는 점을 듭니다. 즉, 이 말은 진정으로 발레리 사블린의 계획은 상당히 현실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왜냐하면 당시 소비에트의 일반 시민들은 이렇게 모순덩어리이며 위선적인 소비에트 체체에 대해 정말로 염증을 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말하였던, 정말로 계급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이러한 호소가 상당히 먹힐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발레리 사블린의 혁명의 동기가 다른 것도 아닌, 그 위선적인 모순덩어리의 소비에트 체제에서 그토록 입이 닳도록 외쳤었던 '계급 없는 진정 평등한 사회' 를 실현하자는 것이었으므로 그 명분 또한 확실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이는 곧 이어 벌어지는 선상 반란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입증되는데, 즉 발레리 사블린이 수병들에게 자신과 함께 제2의 10월혁명에 동참할 것인지를 자유투표로 결정하게 하였는데 이 때 수병들은 거의 다 만장일치로 발레리 사블린과 함게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 반면, 장교들(장교 집단은 소비에트 체제하 에서 소위 '가진 자'들임.)은 반반으로 나뉘어 발레리 사블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나온다는 점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일찌기 레온 트로츠키가 말하였듯이 소비에트 체제에서의 사회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일반 병사들(해군의 경우는 일반 수병)의 반응을 보면 된다라고 할 수도 있는데,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일반 수병 병사들이 발레리 사블린의 혁명적 거사에 동참을 하였다는 것을 본다면 이는 곧 소비에트의 일반 시민들의 정서와도 맥이 닿는 것으로 발레리 사블린의 혁명적 거사가 전혀 무모한 것 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도 있읍니다.


특히 아이러니 한 것은 발레리 사블린은 공산당 정치장교로서 그 출신 배경이 그 누구보다도 좋은 자로서 소비에트 정권의 핵심 기둥이 될 자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소비에트 체체를 무너뜨릴 거사를 진행중이었다는 사실인데요...
특히 그가 나름대로 주도면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선상반란을 일으킬 수 있엇던 것은 그나마 '핵심 공산당원으로서의 정치장교' 라는 그의 지위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바로 그렇습니다.
어떻게보면 이것은 그가 이전에 결심하였던 것, 즉 소비에트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아닌 '내부로부터의 균열' 만이 유일한 해답이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을 수도 있읍니다.


어찌되었던 운명의 11월8일 밤에 발레리 사블린은 선실 내 강의실에서 전 수병들과 장교들을 집합시켜 놓았는데, 이 때 세르게이 에이젠쉬태인의 전함 포템킨(무성영화)를 틀어놓고 1917년 10월 소비에트 혁명에서의 해군의 혁명적 전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드디어 자신의 혁명적 거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해주기를 호소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혁명 발표에 많은 수병들은 깜짝 놀라게 되는데 이어서 발레리 사블린은 수병들에게 자유토론을 갖게 하여 자신을 따라 혁명 투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안락하게 위선덩어리의 소비에트 체제에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게 합니다.
이에 따라 선실 내 강의실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게 되는데, 결국 자유 투표를 실시한 결과 수병들 대부분은(거의 만장 일치) 발레리 사블린을 따라 새로운 혁명 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결의를 하게 되지만, 반면 장교단(즉, 가진 자들)의 경우에는 발레리 사블린에 동참하는 숫자가 상당히 적어서 그 절반도 되지 않게 됩니다.


이 때 발레리 사블린과 또 다른 해군 장교인 올레그 사디코프(Oleg Sadikov)라는 자 사이에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이 때 올레그 사디코프는 발레리 사블린의 거사 계획을 듣고서 시종일관 콧방귀를 뀌다시피 하였는데, 즉 레닌이 말한 '계급없는 평등한 사회' 라는 개념을 당신(발레리 사블린)은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믿느냐는 것이었읍니다. 레닌의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 라는 것은 1917년 볼쉐비키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한 혁명 초기의 명분이었을 뿐, 지금 발달 사회주의 단계(참고; 흔히 브레즈네프 시대의 1970년대 소비에트 체제를 가리키는 용어임.)의 현 시대에는 그런 것은 가당치도 않다는 그런 내용이었읍니다. 관료주의의 병폐를 없애겠다는 당신(발레리 사블린)의 계획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으냐, 도대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에 왜 목숨을 거느냐는 것이었지요...


어찌되었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거의 전체 수병과 절반 가까운 장교단이 결국은 발레리 사블린의 호소에 설득되어 제2의 10월 혁명을 일으키는데 동참하게 됩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일부 장교단과 함장은 발레리 사블린의 지시 아래 일정한 장소에 감금되게 됩니다.(예를 들어, 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함장의 경우, 원래 이 선실 내 강의실에는 없었던 바, 발레리 사블린의 지시에 따라 수병들 중 일부가 음주상태라고 보고를 하게 하여-이 함장은 특히 수병들의 음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음.- 사실 여부를 확인하러 선실 내 강의실 쪽으로 오도록 유인, 이 때 실력으로 제압하여 일정 장소에 가두어놓게 된 것임.)


결국 이렇게 하여 일종의 무혈 쿠데타가 발생하게 되어 발레리 사블린이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완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 발레리 사블린은 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기수를 레닌그라드 로 돌리게 하여 출항을 명령, 본격적인 제2의 10월 혁명을 준비하게 됩니다.
(참고로 발레리 사블린의 경우, 이 11월 8일의 거사를 수행하기에 앞서서 그의 아내에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인 즉,
' 왜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느냐라고 사랑하는 당신이 묻는다면..... 그것은 나는 정말로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라오.... 내가 말하는 삶 이라는 것은 안락하고 쾌적한 부르조아적인 삶이 아닌,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정말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삶이라오..... 그것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1917년의 10월 혁명을 이어받아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으로서...... 정말로 혁명정신으로 충만한 용감한 사람들이라면 내가 지금 행하는 행동들을 이해를 할 것이고..... 비록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한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 양심으로 나를 평가를 해 주시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3. 소비에트 정부의 대응
그런데 이 때 장교단 중 1명이 선실 내 강의실을 몰래 탈출하여 군함의 출항을 알리는 비상 벨을 울리게 하였읍니다.
이러한 비상 벨을 울리게 되면 리가 항에 정박중인 다른 선박이 이 스토로제보이 호가 명령 없이 출항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리가 항에 정박중인 소비에트 발틱 함대의 경우, 그 반응이 상당히 늦었던 것 같습니다.(이는 아마 10월 혁명 기념식 준비 때문에 전 발틱 함대가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이었던 때문인 것 같음.) 즉, 이러한 비상 벨(출항을 알리는)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처음 몇 시간 동안에는 스토로제 보이 호가 출항을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던 예상하지 못한 (출항을 알리는)비상 벨이 시끄럽게 울리게 되자 발레리 사블린과 그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 수병들 사이에서는 순간적으로 공포와 긴장감이 찾아 와서 전 선실 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도 하지요.
즉, 그 이전까지는 발레리 사블린의 열정어린 호소에 따라 (얼떨결에) 혁명에 동참하기로 하였는데 이 비상 벨이 시끄럽게 울림으로서 비로소 현실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읍니다.
즉 혁명에 동참하기로 한 수병들 입장에서는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지?, 혁명을 한다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것 완전히 미친 짓 아닌가? 지금이라도 혁명 대열에서 이탈하여야 하나?' 등등 온갖 생각이 교차하였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때 발레리 사블린 자신은 이내 평정을 되찾고 자칫 흔들릴 수도 있는 수병들을 향해 계속 다독거리어 이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계속 혁명에 동참토록, 소위 '혁명적 낙관주의(처음에는 어려운 일들이 닥칠지라도 우리의 혁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식으로...)'를 불러 일으켜 이들 수병들을 겨우 안정시킵니다.


한편 뒤늦게 이 스토로제보이 호에서 무슨 심각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챈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최고의 비상이 걸립니다.
특히 이 스토로제보이 호에서의 선상 반란 사건의 경우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에게 새벽에 즉시 보고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 소비에트 당국의 제일의 관심사는 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목적지가 어디이냐는 것이었읍니다.
즉, 이 배가 서구 세계로 망명을 하기 위해 출항한 것인지 아니면 소비에트 내의 다른 항구로 진입을 하는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함이었읍니다.


이에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이 스토로제보이 호에 대해 왜 명령 없이 출항을 하느냐, 목적지가 어디냐 라는 등의 질문을 던지고 즉시 정지할 것을 명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발틱 함대 소속의 다른 군함들을 출동시켜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포위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비에트 당국은 발레리 사블린의 목적지가 서구 세계(예: 스웨덴)이 아니고 동북쪽의 레닌그라드이고 이들이 제2의 10월 혁명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경악에 빠집니다.
그것도 공산당의 핵심 중의 핵심인 정치장교에 의하여 준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 소비에트의 지도부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런데 소비에트 당국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2가지를 결심하게 됩니다.

첫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포위하여 더 이상의 전진을 못하게 한다는 것(경우에 따라서는 폭격까지도 적극 검토)이었고,

둘째는 이왕 이렇게 벌어진 사건처리에 대한 것으로, 이를 발레리 사블린이 서구세계로 망명을 하다가 실패한 것으로 서구세계에 알려지도록 처리를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왜냐하면 리가 항구가 위치한 발틱해는 서구(NATO)가 가장 주의깊게 주시하는 지역이라서 이런 사건 자체를 완전히 은폐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이 사건을 실패한 서구로의 망명으로 처리하는 것이 손쉬운 해결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당시의 해양 지형이 이러한 소비에트 측의 계획(서구세계로 망명을 하다가 실패한 것으로 서구세계에 알려지도록 처리를 한다는 것)에 유리하게 작용을 하였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읍니다.
왜냐하면 당시 리가 항이 위치한 곳은 리가 만으로 얼핏 보면 이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전진을 하면 레닌그라드 쪽으로 곧바로 닿을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리가 만 북쪽, 북동쪽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널려 있어서 리가 만에서 북쪽이나 북동쪽으로 향해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만약 어떤 배가 라트비아의 리가 항으로부터 레닌그라드를 향하여 향해를 하는 경우, 실제의 바닷길은 (북동쪽의, 항해가 사실상 불가능한 암초를 피하여) 서쪽으로 향하여 스웨덴의 고틀란트 섬 앞까지 전진한 다음 여기에서 비로소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레닌그라드가 있는 북동쪽으로 항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어떤 배가 과연 서구(스웨덴)를 향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동쪽의 레닌그라드를 향하여 가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 스웨덴의 고틀란트 섬의 앞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트느냐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가능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되었던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정지시키기 위하여(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위하여 폭격을 하는 것도 포함) 1차적으로 발틱함대에 총출동명령을 내리는데 문제는 이 발틱함대의 승무원들이 이 명령을 따르기를 굉장히 꺼려한다는 사실이었읍니다.
즉, 어제까지 같은 밥을 먹던 한 식구인데 왜 내 손으로 포격까지 해야 하느냐, 그리고 발레리 사블린이 말은 정말로 옳바른 말을 한 것 아니냐, 사실 발레리 사블린이 뭐 하나 틀리게 행동한 것 있느냐 등과 같은 반응이었읍니다.


이에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자칫 이 문제를 크게 만들 경우 군 전체가 동요할 것을 우려하여 발틱 함대에는 단지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추격하여 위치파악을 하라는 정도로만 명령을 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11월 9일 동틀 무렵이 되자 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위치가 해안경비정에 의하여 파악이 되게 되고 따라서 발틱 함대의 여러 군함들이 계속해서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뒤에서 쫒는 형국이 됩니다. 약 13척 이상의 발틱 함대 소속의 군함들이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추격하는 장면이 벌어지게 되지요.


문제는 소비에트 당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레리 사블린이 계속해서 레닌그라드를 향하여 전진(실제 위치상으로는 북동쪽의 암초들 때문에 서쪽의 고틀란트 섬 방향으로 전진)하자 마침내 소비에트 당국은 공군의 힘을 빌려 물리적으로 이 배를 정지(또는 폭격)시키고자 합니다.
(물론, 이 때 발레리 사블린은 계속해서 자신들은 서구로 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레닌의 10월 혁명 정신을 이어받아 제2의 혁명을 일으키려는 숭고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서 동쪽의 레닌그라드를 향해 가는 것이니만큼 오히려 당신들 고위 군 장교단들이야말로 혁명의 자식들로서 적극적으로 우리 혁명에 동참하여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소비에트 군부에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이에 소비에트 고위 관료가 출동준비중인 공군 조종사에게 직접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추격하고 필요시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 공군 조종사는 처음에는 이 격침 명령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행할 것 처럼 대답을 하였으나(즉, 비행 전에 미사일 격침명령의 경우에 그대로 망설임 없이 명령을 수행하겠다고 대답), 막상 이 소련군 비행기가 향해중인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상부로부터 미사일 격침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즉, 공군에서도 명령불복종이 발생하기 시작산 것입니다.


이에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더욱 긴장읅 하게 되는데 다시 두번째 공군 조종사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고 필요시 격침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번째 공군 조종사는 (첫번째 공군 조종사와는 달리) 상당히 명령에 순종적이고 또한 명령 불복종시의 처벌 등에 상당히 겁을 먹은 자로 보이는데 결국 이 두번째 공군 조종사는 상부로부터의 격침명령이 하달되자 이 명령을 수행합니다.
다만, (양심상) 미사일로 직접 이 스토로제보이 호를 쏘지는 못하고 이 프리깃트 함의 앞쪽과 뒤쪽의 바다에 '위협용 경고 폭격'을 하여 이 배가 상당히 흔들리도록 하여 간접적으로 충격을 주는 것이었읍니다.


한편 이러는 동안에 KGB에서는 계속해서 스토로제보이 호에 경고 방송을 하였는데, 특히 이 KGB는 내부 분열을 유도하기 위하여 '너희들의 행동(명령 없이 무단 출항)에 대해서는 과거지사는 묻지 않을테니 지금이라도 정지를 하면 다 용서하겠다'는 선무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냅니다.
그런데 이 KGB의 선무방송이 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승무원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동요를 심어주게 되는데, 즉 수병들이 처음에는 발레리 사블린의 정열적 호소에 동참을 하였지만, 이제 점차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즉, 위에서는 공군 비행기가 계속해서 위협 사격을 하여 이 프리깃트 함이 계속 흔들리게 되었고(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한편으로는 KGB측에서 지금이라도 정지를 하면 과거를 묻지 않고 용서를 하겠다는 방송이 계속 들리므로 수병들의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즉, 만약 더 이상 전진을 하였다가는 정말로 공군 비행기로부터 폭격을 당하여 다 죽겠구나 하고요.)


이에 수병 중 일부가 마음을 바꾸어 배를 정지시키고자 하게 됩니다.
이들은 좁은 장소에 유폐되었던 함장 이하 일부 장교들을 풀어주게 되는데, 결국 이 배의 함장이 발레리 사블린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발레리 사블린에게 권총을 발사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발레리 사블린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넘어지게 됩니다.
이후 발레리 사블린은 함장에게 제압당하게 되고 이에 따라 사태를 장악한 함장이 배를 정지시키고 이어서 통신을 통해 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내부 상황이 종결되었음을 알리게 됩니다.


11월 9일 새벽 6시경 드디어 상황이 종료되어 이 스토로제보이 호에 KGB 소속 무장병력이 도착하여 이들이 스토로제보이 호의 전 수병과 장교단을 체포합니다.(발레리 사블린의 계획에 반대한 장교들까지)


그런데 이 때 KGB 소속의 무장병력을 이끄는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발레리 사블린에게 너는 도대체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였느냐 라고 물었고, 이에 발레리 사블린은 왜 자신이 이렇게 얼핏 무모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않되었는지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차근차근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이에 대해 이 KGB의 책임자는 묵묵히 듣고 있을 뿐 더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때때로 고개를 끄떡이기까지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문제는 소비에트 당국의 이후의 처벌수위의 결정이었읍니다.
아시디시피 소비에트 체제의 경우 1930년대의 극단적인 스탈린 대숙청이라는 공포를 맛보았고, 이어서 스탈린이 죽은 후에는 니키타 후루쉬쵸프에 의하여 본격적인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져(이는 1930년대의 무시무시한 대숙청을 반성한다는 의미)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이었읍니다.


이런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부드러워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발레리 사블린과 알렉산더 세인 및 이에 동조한 많은 수병에 대한 소비에트 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때 소비에트 당국이 제일로 우려한 것은 발레리 사블린의 배후에 무슨 커다란 조직 같은 것은 없는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번 스토로제보이 호 사건의 경우, 발레리 사블린의 단독 범행? 인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소비에트 당국은 큰 안심을 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크게 내려가게 됩니다.
우선 발레리 사블린과 알렉산더 세인을 제외한 전 수병들(장교단 포함)은 몇 달 뒤 훈방조치가 됩니다.


그러나 사건의 주모자인 발레리 사블린과 그의 혁명 동지인 알렉산더 세인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는데, 이 둘은 결국 군사재판에 회부되게 됩니다.
발레리 사블린은 심문 기간 동안에 줄곧 자신의 혁명은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결코 조국을 배산하는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무슨 서구세계로의 망명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계속해서 줄기차게 주장을 하였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은 KGB의 심문관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자신이 무슨 서구 세계로 망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사람처럼 취급을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해 발레리 사블린은 굉장히 화를 내고 계속해서 자신의 '혁명관'을 줄기차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읍니다.


어찌되었던 알렉산더 세인과 발레리 사블린에 대한 군사재판이 열리는데, 우선 알렉산더 세인의 경우, 군사재판에서 반역죄가 인정되어 징역 10년 형이 선고되게 되고 이후 알렉산더 세인은 만기 복역을 하고 1980년대 중반에 출소합니다.


문제는 발레리 사블린의 경우인데, 그에게는 역시 국가 반역죄가 인정되었는데, 당시 보통 국가 반역죄 라는 죄목이 붙는 경우 징역 15년 정도가 선고되었지만 이러한 예상을 깨고 그에게는 사형이 선고(발레리 사블린에 대한 사형선고에는 당시 공산당 서기장인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되었고 얼마 뒤 1976년의 어느 날 처형을 당합니다.


그는 사형집행을 당하기 전에 그의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 나는 절대로 무모한 사람이 아니고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였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랑하는 내 아들이 알아주기 바란다.... 남들이 무어라고 말할지라도 너는 결코 흔들지지 말고 진실을 꿰뚫어 보거라. 이 아버지가 행한 일들은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정말로 용감한 사람은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고, 이 아버지는 정말로 소비에트 인민들을 위한 행동을 하려고 하였다는 사실 만큼은 꼭 알아다오....'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아마 마지막 구절은 ' 삶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구나!' 던가 그랬을 것입니다.



이상이 대략적인 발레리 사블린 사건인데,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소비에트 체제가 얼마나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인위적인 체제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웬지 모르게 (그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이 발레리 사블린 이라는 사람에게 상당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참고***
위키피디어(영문)
http://www.marxist.com/History/realredoctober900.html (A Leninist Hero of our Times - In Memory of Valery Sablin: The true story of Red October)
http://archives.econ.utah.edu/archives/marxism/2003w23/msg00196.htm (발레리 사블린 사건에 대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