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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전쟁 초기 소련군은 왜 처절하게 무너졌을까?!

  작성자: 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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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2-10 09:50:54

  

내가 만났던 소련처녀 안나니꼴라예브나와의 두번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보다 진지하게 대화하고 싶지만 나의 러시아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길 가면서도 화장실에 앉아서도 로어단어를 외우며 공부했지만  

폐쇄사회의 교육환경에서 벗어나 보니 러시아파견 벌목공출신보다도 회화가 안되었습니다.  

하여 모스크바 문화성에 있던 엘자라는 고려인을 통역으로 대동한 적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그 여의 부모는  

소독전쟁참전군인이어서 생생한 전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련사람들은 전쟁전부터 항상 승리하는 선동선전물에 세뇌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전쟁소설 <봉쇄>(장시간 포위된 레닌그라드 전투배경)에서도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나 전쟁현실에서는 너무도 달랐다는 것입니다.  

핀란드같은 작은 나라와의 전쟁에서부터,  

그 후 독일군과의 대전에서는 일방적인 괴멸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전쟁얘기가 나오면 눈물을 철철 흘린다고 합니다.  

방금 피어난 사과 꽃같은 동료들이  

그 화사함을 뽐내기도 전에 우수수 떨어져 버리는 것에 대한 눈물입니다.  

20살 전후의 여군들이 총에 맞아 죽은 후에 더 이뻐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피가 빠져나가서인지 백옥같으며  

그것을 땅에 묻기가 너무도 아깝고 아쉬워 눈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감정과 달리 딸은 종종 싸움할 줄 모르는 소련군이라고 놀리군하였다고 합니다.  

그 무능력의 원인을 결정적으로 깨달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날 업무로 피곤하고 배고푼 몸으로 집에 오니 부모님이 전투영화를 보시는데 -
 

마침 대사에서 왜 그렇게 싸울 줄 모르는 가고  

소련군인들을 질책하는 마을어머니의 말에 맞아! 맞아! 맞장구치면서 -  

한숨 자고 일어나겠으니 맛있는 것이나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정말 꿀같은 잠결에도 맛 있는 냄새가 코앞에서 나서 일어나려고 하니 이게 웬걸?!  

눈과 입은 수건으로 가려지고 손발은 꽁꽁 묶여 있어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그럽니다.  

그래 어서 일어나 맛있는 것을 실컷 먹어라!?  

요동치다못해 겨우 입을 막은 수건을 침대에 비벼 벗기고 -  

왜 그러시냐며 항상 딸편인 아빠에게 풀어달라고 간청하였지만  

그날 만은 아빠도 자기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철닥사니없는 딸에게 부모님은 말합니다.  

소련군에게는 독일 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게 바로 전쟁전야에 벌어진 쓰딸린 대숙청의 여파라는 것입니다.  

적보다 더 무서운 위에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했다는 것입니다.  

얼빠진 바보들같은 소련군은 정말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댓글 13

  • best 새벽별과 2019-02-11 추천 2

    당시 소련군을 보면 하드웨어적으로 보면 절대 독일군 이상 이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적으로 딸려서 초기에 패전 하였다고 하는데,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봅니다.
    종심이론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투하체프스키 이론이 소련에서 나왔다는 점등에서 소프트웨어적 으로도
    발달 곳 이였습니다.

    문제는 밑에 댓글에도 많이 나와 있듯이,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능한 고급지휘관들이 싸그리 갈려 나갔고,
    그 자리는 오직 공산당에 충성하는 인원들로 채워지고, 그걸 또 감시 하기 위해 정치장교가 위세를 떨치다 보니
    물리적으로는 독일군과 대등 이상의 소련군을 제대로 운영을 할수 없었던거죠.

    거기다가 스탈린의 현지사수 명령, 그리고 대숙청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대처를 못하고 무문별한 인적자원
    소모, 그나마 쓸모 있는 인원도 정치장교로 인해 무모한 작전 실행 등등으로
    초반에 말 그대로 독일군에게 싹싹 갈아먹힙니다.

    그나마 다행인데 계속 되는 패전 과 과도한 병력 손실로 스탈린은 후군에 대한 간섭을 줄이지만, 히틀러는 그 반대가 되어 버리죠.

  • 소리마을 2019-02-12 추천 0

    이 분 또 무기방에 이런걸 올리시네..
    재미 들리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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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lky 2019-02-11 추천 0

    군대나 경제나 정치나 모든 것은 생각의 유연성이 있어야하며 그럴려면 생각을 넓힐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합니다
    그게 자유입니다
    그럼으로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것이죠
    이게 없으면 결국은 모든 것에 딱딱함이나 존재하는겁니다
    그런 점에서 공산주의는 모든게 단기적으로는 일부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망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로만 알아서는 않되고 배워야하고 우리는 그러하지 말아야하지요
    그래야 정치든,경제든 발전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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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별과 2019-02-11 추천 2

    당시 소련군을 보면 하드웨어적으로 보면 절대 독일군 이상 이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적으로 딸려서 초기에 패전 하였다고 하는데,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봅니다.
    종심이론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투하체프스키 이론이 소련에서 나왔다는 점등에서 소프트웨어적 으로도
    발달 곳 이였습니다.

    문제는 밑에 댓글에도 많이 나와 있듯이,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능한 고급지휘관들이 싸그리 갈려 나갔고,
    그 자리는 오직 공산당에 충성하는 인원들로 채워지고, 그걸 또 감시 하기 위해 정치장교가 위세를 떨치다 보니
    물리적으로는 독일군과 대등 이상의 소련군을 제대로 운영을 할수 없었던거죠.

    거기다가 스탈린의 현지사수 명령, 그리고 대숙청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대처를 못하고 무문별한 인적자원
    소모, 그나마 쓸모 있는 인원도 정치장교로 인해 무모한 작전 실행 등등으로
    초반에 말 그대로 독일군에게 싹싹 갈아먹힙니다.

    그나마 다행인데 계속 되는 패전 과 과도한 병력 손실로 스탈린은 후군에 대한 간섭을 줄이지만, 히틀러는 그 반대가 되어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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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상편곤 2019-02-11 추천 0

    세계적인 육종학자의 과학이론을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비판하고 그 학자를 숙청해서 굴라그에서 굶어죽게 만든 소련입니다. 어디까지나 과학적 고찰로서 이루어진 과학 이론에 정치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서 사이비 학자의 이론이 사회주의 이념에 맞다고 지지하고 이를 논박하는 진짜 과학자를 반동으로 몰아 죽였던겁니다. 이런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가 과학계 뿐만 아니라 군부에서도 벌어진겁니다. 스탈린 눈치보고 아부하는 놈들만 살아남고 나름의 군사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던 진짜 장군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지경이니 무능한 지휘관만 남은 군대가 독일군의 기습에 제대로 대응 못하고 지리멸렬한건 당연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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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이런 2019-02-11 추천 0

    스탈린이 (공산주의자) 병신이라 그러합니다. 독과점을 떠나서 핀란드 침공했다 얼마나 처발렸는지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앞당길 정도 였다는 것을 봐도 공산주의자들 특징이 잘 보이지요. 주둥이로는 좋은 말 거창하게 하면서 병신짓을 하다 아차싶으면 언제 그랬냐며 은근슬적 바꾸고. 기억이 안나는데 사형선고 받고 싸운 장군도 있었으니 소련 치하의 사람들이 불쌍하죠. 미국이 무지막지하게 지원해줬음에도 헛발질 많이 했죠. 히틀러가 뻘짓을 안했다면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핀란드에서 병신짓 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주장하려나? 그 덕분에 충분한 준비 없이 1차 대전처럼 양쪽에서 싸우는 실수를 하게 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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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로시안불루 2019-02-10 추천 1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판매하려고 책 내용에 있는 질문을 합니다..
    로마는 패전한 장수를 어떤 처벌을 했던가...라며..

    어떻게 했을까요?
    읽어 보면 답은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았다입니다.
    처벌을 별도로 하지 않았지만
    장수는 패전했다는 불명예스런 그 전적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 가혹한 처벌이라는 겁니다.

    펠로폰네수스 전쟁때의 아테네와는 정반대의 대응을 했던 겁니다..
    반면에 아테네는 패전할 때마다 지휘관의 책임을 물어서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능력있는 장재가 모두 소진 되어 버린 겁니다.

    장수가 언제나 승리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패전에서도 배우고 승리에서도 배우는 것인데.

    그러고 장재는 쉽게 구할수 있는 인재도 아니고,,,

    지휘관이 몸을 사리게 만들면 재대로 된 지휘업무가 될수 없으니
    오히려 더 패전할 수 밖에 없는게 이치가 아닐지요..

    개전 초기의 쏘련군 지휘부는
    적보다 더 무서운 스탈린의 숙청위협에
    몸사릴수 밖에 없고 판단을 그르칠 수 밖에 없었을테지요...

    댓글 (2)

    페로시안불루 2019-02-12 추천 0

    그렇지요...실패라든지 패전도 귀중한 경험인 것이지요..
    미국의 I.B.M사의 오래전 이야기입니다..어느 신입사원이 실수를 저질러서 회사에
    천만$가 넘는 손실을 끼쳤는데...그 신입사원이 회장님에게
    나 이제 해고시킬거지요?하니까...
    이사람아 자넬 왜 해고시켜? 천만불짜리 경험을 그냥 내다 버리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로마의 어느 장수가 스키피오랑 협력하지 않고 독불장군으로 나대다가
    패전해서 많은 수의 장병들을 희생시켰지요..
    그러나 패전 후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는 진정 협력할줄도 알게 되고..
    그 후에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이 인솔해서 다시 또 알프스를 넘어온
    카르타고군의 후속병력들 7만이었나?를 격멸시키는 공을 세웠지요..
    그 장수를 처형했더라면 또 다른 장수는 그런 지휘를 해 내었을지 의문이었지요..

    미국의 대기업들이 최고경영진을 영입하는데 이력에서 실패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고 하더군요..
    그냥 성공의 길만을 걸어 온 사람은 그게 오히려 더 염려를 산다는 겁니다.
    이사람이 위기에 마주했을때 실패해본 적이 없기에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어떨지를 모르니 그게 더 염려된다는 평을 한다고 합니다...

    새벽별과 2019-02-12 추천 0

    로마 패전 장군이야기 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로마는 패전한 장군에게 오히려 연회를 베풀어 위로해 주었다는 내용이였죠.
    장군들이 모두 승리만 할수 있는게 아니고, 패전도 경험 이라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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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당 2019-02-10 추천 0

    전쟁준비(병력수, 병력질, 훈련, 장비, 전략전술)는 덜 되었고,
    전쟁준비가 덜 되었음에도 전쟁지도부는 그걸 인식못하고,
    게다가 기습받았으니 속절없이 밀린 거지요.
    그런 게 어디 한둘인가요?
    거란침략시의 발해군, 몽골침략시 고려군, 임진왜란의 조선군, 병자호란의 조선군, 6.25때의 국군, 중일전쟁때의 중국군, 2차대전의 초기의 프랑스군, 소련군, 2차대전 만주전선의 일본군 등이 있지요. 속절없이 무너지는 사례는 많아도 너무나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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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력터널 2019-02-10 추천 0

    스탈린이 기습을 허용했기 때문입죠 네네. 소련군에서 상신한 독일군의 침공 징후를 애써 무시한데다 경계령을 내려달라는 일선 지휘관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평시 태세를 유지했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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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개79 2019-02-10 추천 1

    맞습니다. 소련은 원래 전쟁 준비를 엄청 많이 해 놨었습니다. T34라는 전차도 이미 1934 년에 나왔다는 뜻이죠. 그런데 스탈린은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엄청난 숙청을 했는데, 군부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장군서부터 장교까지 능력있는 간부들을 거의 숙청을 해 버렸죠. 그래서 소련군에 남은 간부들이 거의 무지랑이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죠.
    (스탈린은 사회 각부분에서 좀 똘똘하거나 나서거나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전부 처형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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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방 2019-02-11 추천 0

    소련 해군도 수병들만 남기고 장교들은 다 숙청되서 배를 제대로 운용할 수가 없었죠. .

    DBoys 2019-02-10 추천 0

    34는 1934년의 34가 아닙니다.

    독소전 직전에 간신히 개발이 완료되어 개전시점에서는 양산이 시작되었지만 야전에 배치된 수량이 매우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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