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고정익기도 엔진 꺼진다고 바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활공비행 가능하듯이, 헬기도 엔진 정지시 조종사의 조치와 확보된 속도, 고도만 있으면 바로 땅으로 추락하지는 않습니다.

엔진이 꺼진 헬기 로터는 갑자기 멈춰서는 것이 아니라 계속 회전합니다. 애당초 헬기 로터는 엄청 무거운 구조물이고, 그것이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멈출리가 없습니다. 관성에 의해 계속 돌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헬기가 낙하를 하면서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면 로터가 오히려 계속 회전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를 오토 로테이션이라 부릅니다. 이 기법은 원래 자이로콥터 등으로 부르는 항공기에서 먼저 사용하던 기술입니다(여담이지만 헬기 조종과 관련된 여러 기법 및 기기장치는 다 자이로콥터 개발하면서 나온 부산물인 것이 많습니다).

오토로테이션 중인 로터를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왼쪽이 로터 회전 중심축 방향입니다. 오토로테이션을 하며 강하하는 로터 주변을 흐르는 공기는 로터 자체가 회전(전진)하면서 생기는 맞바람 +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합쳐진 바람입니다. 그런데 회전속도(RPM)으로 회전한다면 로터는 뿌리쪽일 수록 전진속도가 느립니다. 이 전진속도와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합이 전체 딱 그 부분에서 로터가 받는 바람의 방향입니다.

잘 보면 제일 뿌리 가까운 쪽은 바람이 너무 아래에서 깊은 각도로 불어 들어오므로 실속(STALLED) 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중심부는 적당한 각도를 이루어 양력(dL)과 항력(dD)을 만들면서도 그 전체 합이 오히려 로터가 전진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터를 계속 전진시킵니다(ACCELERATING). 그러나 로터 바깥쪽은 전진속도가 너무 빠르므로 양력은 만드나 뒤로 후진시키는 힘을 만듭니다(DECELERATING).

그렇기에 헬기가 바로 추락하지 않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물론 천천히 내려온다고 해도 일반적인 착륙속도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착지 직전, 로터의 RPM이 줄어들 각오를 하고 양력을 더 크게 만들어 강하속도를 낮춘 다음 착지를 하면 거의 일반 착륙과 비슷하게, 헬기에 별다른 손상 없이 착륙 가능합니다.

물론 오토로테이션이 아무때나 다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헬기 전진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혹은 헬기 고도가 너무 낮으면 오토로테이션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은 헬리콥터가 오토로테이션을 할 수 없는 구간(회색부분)을 표시한 도표입니다. 물론 기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저속 상태면 고고도에서, 고속 상태면 저고도 한정으로 오토로테이션이 불가능합니다. 저속에서는 차라리 고도가 낮으면 낙하속도 역시 낮으므로 안전하게 착륙이 가능한데 어설프게 높은 고도가 되면 속도는 느린데 오토로테이션으로 다시 충분히 감속할 여유고도는 없어서 안전한 오토로테이션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고속에서는 지면 충돌 속도가 너무 빨라지므로 낮은 고도에서는 오토로테이션을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위 그림을 '망자의 곡선(Deadman`s Curve)'라고도 부르니다. 저러한 이유 때문에 헬리콥터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하지만 가급적 활주이착륙하거나 최소한 경사지게 이착륙는게 저 오토로테이션 불가능 지역을 피할 수 있습니다(연료 효율 면에서도 수직이착륙보다 활주이착륙이 훨씬 유리하고)...

물론 위의 곡선은 어찌보면 이론상 곡선이고, 저 곡선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조종사가 엔진 정지시 얼마나 빠르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오토로테이션을 통한 안전한 착륙 성공여부가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