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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공지전(Airland Battle)이란 무엇인가? : 여단과 분권화 4부

  작성자: 8th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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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3-04 03:47:43

미군의 공지전(Airland Battle)이란 무엇인가? : 여단과 분권화 4부


2-4 1982년 공지전의 탄생

 1977년 Depuy장군의 뒤를 이어, 미육군 교육사령부 지휘관이 된 Donn A. Starry장군이 981년까지 교육사령부를 이끌면서 적극방어 교리를 대체할 공지전 교리를 구성하게 됩니다. 공지전교리는 적극방어 교리와 극단적으로 상반된 특성들로 혁명적 개편이 이루어집니다.
 Starry장군이 기존의 Active Defence 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은 그 교리가 가지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군비팽창, 미육군 내/외적 파워게임, 국가전략의 변화, 나토에서의 독일연방군과의 교류등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공지전 자체가 무엇인지 소개하는 것을 우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내용들은 대부분 1991년 작성된 Jeffrey W. Long 소령의  THE EVOLUTION OF U.S. ARMY DOCTRINE: FROM ACTIVE DEFENSE TO AIRLAND BATTLE AND BEYOND에서의 공지전 설명을 번역하여 소개하되, 1982년 당시 작전교범과 1986년 작전교범, 그리고 관련 저널들을 교차검토해서 정리하였습니다.


 1982년 미육군 작전교범의 공지전 교리는 먼저, 그 시야를 역사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1976년 적극방어교리의 작전교범이 도표와 기술에 대한 정리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한다면, 공지전교리는 역사, 전훈과, 클라우제비츠나 손자와 같은 군사이론가들, 그리고 조미니가 제시했던 전쟁의 원칙을 인용하여 공지전이 제시하는 변화의 정당성을 설파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례에 대한 관점은 군사교리에 있어서 도표, 기술적 변화에 집중했던 적극방어 교리와 달리, 전쟁사의 맥락과 이론적 토대를 공지전 교리의 기반으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1982년 공지전은 미육군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기동에의 강조

 1982년 공지전 교리의 가장 거대한 변화는, "기동"의 강조입니다.
 1976년 작전교범이 화력에 초점을 두었다면 1976년 교범이 화력에 초점을 두었다면 1982년 교범은 기동의 가치를 제시합니다. 단순히 적을 파괴하는게 아니라 적의 전투의지를 타겟으로 하여, 리델하트가 주장한 간접접근이 반복적으로 인용됩니다. 적과 직접적으로 교전하지 않더라도, 기동을 통해 적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강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군사연구자 리델하트 https://padresteve.com 

 기동은 화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기동 자체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1982년 작전교범은 제시합니다. 또한 기동없이 화력만으로는 적을 효과적으로 파괴시킬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982년 교범은 독일이나 소련보다는 영미 군사이론가의 영향을 많이 보여주는데, 적의 병력이 아닌 적의 전투의지를 타겟으로 삼기를 지휘관에게 요구하며, 공격과정에서 적의 강점을 회피하고, 방어지휘관의 전투의지를 흩뜨리고, 적군의 전투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 가장 신속하고 저렴한 승리 방법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1982년 작전교범의 우회기동 개념도

 공격과정에서 간접접근은 가장 선호되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때문에 기동과정에서 적의 강한 방어지점을 우회하거나, 약점으로 침투해 적을 포위하거나 우회하는 기동이 강조되었습니다. 때문에 공격과정에서 적에게 정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적이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거나 취약할 때에 적합하다고 교범은 이야기합니다. 
 

주도권을 장악하라

 공지전은 주도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1976년 작전교범이 방어는 수많은 강점을 주며, 단 하나의 약점으로 주도권을 잃는다는 점 뿐이다라고 지적한 반면, 1982년 교범은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방어를 통한 이점을 누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도권 자체는 기동을 강조하는 1982년의 특징이 아니라 미군에 있어 1941년 이래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온 결정적 승리의 원칙이었습니다. 이는 방어를 강조한 1976년 버전 이전까지 중시되어왔던 항목을 회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멘텀(가속도) = 질량, 속도, 거리, 전투력

 공지전은 가속도, 모멘텀을 전투력의 새롭게 중요한 요소로 정의합니다. 모멘텀은 기동이론에 있어서, 질량, 속도, 거리와 전투력의 상관관계를 형성합니다. 여기서 영미군사학의 영향, 예를 들어 심프킨이 제시한 보다 작은 부대가 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고, 대규모 적을 상대로 우월한 모멘텀을 활용해 승리할 수 있다는 관점과 유사한 지적이 나타납니다. 
 1982년 작전교범은 "질량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속도는 공격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충분한 모멘텀을 제공한다."고 언급함으로서, 왜 기동이 결정적인가를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적요소 : 용기, 사기, 대담성, 모티브 

 1976년 교범이 무기에 초점을 두었다면, 공지전은 병사라는 인간 자체에 초점을 둡니다. 무기의 운용능력보다도 사기, 동기, 용기, 대담성을 강조합니다. 적을 파괴하기 위해서도 적의 병력이 아닌 전투의지를 목표로 하듯이, 아군의 승리의 원천 역시 인적요소에 기반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대의 응집을 파괴하면, 병사들을 살상하지 않더라도, 적은 전투의지를 상실하여 승리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병사들을 살상하더라도, 전투의지를 상실하지 않으면 부대는 지속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1976년 교범이 어떻게 살상할 것이냐에 초점을 둔다면, 1982년 교범은 아군의 인적요소를 강화하고, 적의 인적요소를 마비시키고자 합니다.



공격 : 기동, 주도권, 모멘텀

 앞에서 설명한 공지전의 주요 특징들을 결합해보면, "공격"이라는 답안으로 연결됩니다. 기동은 기본적으로 공세적인 행동이고,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적에게서 빼앗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동적이어선 안됩니다. 모멘텀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것은 공세적입니다.
 1982년 교범은 방어보다 철저히 공격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방어조차도 공격적입니다. 방어에 대한 기술은 공격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며 방어에 대한 내용 자체에서조차 공격정신과 공세적 운용에 대해 많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탄넨베르크 전투도 -

 방어작전에서 참조할 역사적 사례가 탄넨베르크 전투라는걸 보면 방어 역시 철저히 기동에 의존하는 개념을 볼 수 있습니다. 압도적인 적의 병력우위를 효과적인 기동과 공세적인 운용을 통해 타파한 역사적 사례를 방어에서 참조해야할 사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1982년 교범의 방어시 반격 개념도-
 1976년 교범은 주방어지대의 화력집중을 위해 예비대를 거부하지만, 1982년 교범은 방어중 1/3의 병력을 예비대에 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주방어지대에서의 병력감소로 인한 병력비를 약화시키고, 1976년 교범이 금기시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예비대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반격을 위한 것입니다.
  1976년 교범은 병력열세를 방어를 통해 극복하라고 하지만, 1982년 교범은 병력열세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공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형효과나 방어의 이점들은, 병력열세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충분치 못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1982년 공지전의 공격성과 기동에의 강조는 미육군이 생각하는 전장양상을 결정합니다. "비선형전"입니다.



비선형전 : 기동의 결과

 공지전은 소모전 모델의 선형전을 거부합니다. 대규모 적과의 전면 교전과 선형전은 일시적인 현상이어야지 지향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기술발전으로 화기의 치명도가 올라간 결과를 1976년 버전은 지형의 활용과 엄폐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 반면, 공지전은 병력집중이 가져오는 화력에 대한 취약성이 지형의 활용과 엄폐로 극복불가능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지전은 기동, 분산, 기만이야말로 현대전에서 강화된 화력에 대응하는 수단이라고 봅니다.

  또한 공지전은 1976년 버전이 후방지역에 대한 위협을 무시하거나 경무장 공수병력이나 공격헬기로 평가절하한 반면, 공지전은 대규모 기계화부대의 돌파가 이루어질 때 후방지역의 자기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후방 지역의 방어에 전투부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예비대의 보유는 더더욱 중요해집니다. 



--1982년 교범의 종심공격-



종심전투에의 강조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종심전투입니다. 공지전은 지휘관에게 적과 종심 전체에서 교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적과 접촉하는 전선(FLOT)상에서만이 아니라, 종심 전체에서 적을 약화하고 이동하지 못하게 하고, 고립시켜야하며, 방어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동과 공세가 공지전의 정신이라면 종심전투는 공지전에서 기술혁신을 상징합니다. 공군의 항공차단, 미사일(ATACMS는 1986년 개발시작되고, 당시는 랜스 지대지미사일이 있었습니다.), 포병, 육군항공, 공중강습 및 공수보병과 기계화된 지상군이 종심전투를 가능하게 한다고 봤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후자에 초점을 두고 공지전을 바라보지만 이 2가지는 공지전을 이루는 두 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76년 버전에서도 2,3제대에 대한 공격개념의 조짐이 나타나긴 했지만, 공군작전에 한해있었다면, 1982년 버전에서 종심전투는 지휘관의 기동계획과 통합되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종심전투가 이후 버전과 차이나는 점은 공군에 의존하기보다 육군 주도적인 종심공격에 더욱 관심을 많이 가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국군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나쁜 의미에서)



임무형 지휘 : 임무형 명령의 분권화된 수행 

 기동, 주도권, 모멘텀, 그리고 공격과 비선형전, 공지전의 정신을 구성하는 이 모든 요소들은 기동부대가 이전에 비해 좀 더 불확실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의사결정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를 요구합니다.
 이런 여건하에서 위로부터의 명령은 언제나 가능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지휘관은 상위제대의 지휘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할 것을 기대받습니다. 이는 공지전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군의 임무형 지휘의 전통을 만드는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무형 명령은 1972년 교범에서 소개되었지만, 1982년 작전교범은 공세와 기동작전간 지휘관이 보다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전쟁의 작전적 수준 : 작전술의 도입의 시초

 1982년 교범은 전쟁의 3가지 단계로서, 국가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을 투사하는 전략적 단계,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전역에서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 자원을 배치하는 작전적 단계, 그리고 작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전과 전투를 수행하는 전술적 단계를 정의합니다.
 이는 두가지 목적에 의해 언급되는데, 전략적 단계는 교범을 넘어서는 시각이며, 전략은 작전을 위한 핵심여건을 형성하며, 육군의 교리(공지전투)는 이 핵심여건을 논하는게 아니다고 선언하는게 첫째이고, 둘째로는 미육군 교리의 작전적 단계를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1982년 교범은 작전의 영역은 보다 거대한 부대 작전으로서 적군을 연속적으로 지속되는 전투를 통해서 패배시키기 위해, 부대를 배치하고 임무를 설정하며 적을 약화시키는 모든 행동으로, 전술의 영역은 보다 작은 제대가 전투에서 작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과 전투를 벌이는 방법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982년은 군단 역시도 작전/전술 양 영역에 걸쳐져 있는 제대로 정의한다.
 이러한 작전적 수준에 대한 정의는 1976년 교범이 "최초전투의 승리"로 전장을 바라본 반면, 1982년 교범은 연속적인 전투가 보다 거대한 규모에서 벌어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기동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대규모 제대의 작전적 운용이 필요하다는 이해가 쌓여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82년 공지전의 종합적 특징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지전에 대해서, 대규모 전면전 하에서 적의 종심을 공군과 장사정무기를 활용해 수적으로 우세한 바르샤바 조약군을 타격하는 것으로 대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2년 최초로 공지전 교리가 도입되었을때, 미육군이 지향한 것은 단순히 바르샤바 조약군의 2선제대를 타격하는 공군과 장거리 지상화력의 조합이 아니었습니다.

 1982년 공지전은 미육군을 보다 공세적이며, 소모전보다는 역동적인 기동전을 통해 적의 전투의지를 마비시킬 수 있는 지상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는 강력한 신기술에 의해 발전한 화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게 아니라, 기동전에 대한 이해와 강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임무형 지휘의 도입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종심전투는 적을 전선 너머에서 강력한 화력으로 타격하는데 끝나는게 아니라, 지휘관의 공격적인 기동계획과 통합되어 적 후방으로 진출하는 지상군을 지원하며, 적을 포위하고, 마비시키고, 승리하여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1982년 공지전은 2차세계대전 전후 영미 기동전 이론가들이 지향했던 고전적 기동전과 공산권에 비해 우월한 군사기술과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보여집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1982년 버전은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는데는 이르렀지만, 굉장히 고전적인 기동전 이론에 기반해 있었고, 2차세계대전 이래로 빠르게 변화해온 군사기술의 변화를 충분히 체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지나치게 지상군 중심으로 전장을 이해하고 있었고, 2차세계대전의 한계에 머물러 있다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미육군은 1986년 새로운, 그리고 공지전의 마지막 버전을 발표하게 됩니다.




2-5 1986년 공지전 개정판

 1986년 미육군 교육사령부 지휘관 William R. Richardson은 1986년 작전교범 개정판으로 공지전 교리를 수정, 보완하게 됩니다. 1986년 버전은 1982년 버전이 기동에 강하게 초점을 둔 반면, 반대로 일부에서 좀더 중도화된 주장으로 교범의 균형을 맞추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은 소모전, 종심작전, 합동작전이라는 항목들을 통해 그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모전에 대한 양보

 기동에 대한 중시 자체는 1986년에도 유지되지만 제한적인 소모전에의 양보가 이루어졌습니다. 1976년 교범이 화력 자체에 초점을 두고, 1982년 교범이 화력을 기동에 부속되는 것으로 정의한 반면, 1986년 교범은 이 2개의 균형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화력과 기동은 1986년 교범에서 각각 독립적인 전투력을 제공하는 요소로 재정의되었습니다. "기동은 화력과 보호 없이는 드물게 가능하며", "화력은 기동에서 독립되어 투입되지 않은 적부대를 방해하고, 지연시키고, 파괴할 수 있다." 1982년에서는 용인되지 않던 표현입니다. 

 1986년 교범은 "무기"와 "인간" 2개 모두를 중시하며 지휘관은 병사들의 "숙련도(무기)와 개성" 모두에 가치를 둬야한다고 정의합니다. 화력과 기동간에 가지는 이 균형관계의 재정립은 공지전 이후 이어지는 미군의 교리방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976년 교범이 공격시 요구되는 6:1의 병력비를 강조한데 반해, 1982년 교범은 확실한 수적우위가 결여된 공격자가 순간적으로 집결함으로서 제한된 구역에서의 수적 우위를 달성할 수 있으며, 즉 수적우위의 극복은 기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본 반면, 1986년 교범은 공격자가 "압도적인 제한된 구역에서의 우위"가 요구된다고 언급하여 좀 더 절충안을 찾고 있습니다.



-1986년 교범의 지역방어--


-1986년 교범의 기동방어--
1982년 교범이 방어작전 자체도 공세적으로 구성한 반면, 1986년 교범은 1968년 교범에 존재했던 지역방어 / 기동방어 개념을 부활시켰습니다. 또한 1982년 교범이 비선형전을 강조했던 데 반해, 1986년 교범은 이 단어를 쓰는데 좀 더 신중하게 "유동적"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전장상황이 유동적이라고 보지 않으며, 선형교착상태의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1982년 교범이 기동에 지나치게 초점을 둔 나머지 공격적으로 정의했던 개념들을 1986년 교범은 그 기본 뼈대는 받아들이면서, 놓칠 수 있거나, 지나치게 단정적인 항목들을 보완해나갔습니다. 



종심작전 : 좀 더 조심스러운 종심"작전"

 1982년 교범이 종심작전을 보다 효과적이고 호의적으로 보는 반면, 1986년 교범은 좀 더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사단 지휘하의 여단이나 좀 더 작은 제대는 일반적으로 종심작전에 독립적으로 투입되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기존의 종심타격, 종심전투라는 용어는 종심작전으로 대체되며, 이는 전술적 수준의 지휘관이 아닌 작전적 수준의 지휘관이 종심상의 적을 공격하는 것을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82년의 교범이 종심전투를 결정적 행동으로 보고 교범상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제시하고 강조했다면, 종심작전을 독립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전투를 지원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리스크 감수의 정도가 감소한 것이다. 방어에 대한 균형 회복 역시 1982년 교범이 기동에 초점을 두면서 리스크를 감수하여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기동을 여전히 중시하되, 과도한 리스크 감수를 절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합동성 : 합동성의 시작

 1986년 버전은 이전에 비해 공군과 지상군의 역할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육군과 미공군이 1976년 합동작전과 관련된 문제 및 사안을 취급하는 "공지군사력 적용위원회"(ALFA)를 창설한 이래, 1976년 교범에서 시작된 흐름이었습니다. 
 1983년 미육군참모총장 Edward C. Meyer와 공군참모총장 Charles A Gabriel이 공지전투교리가 합동차원에서 보다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각 군의 장교들을 선발, "합동군의 발전을 위한 집단"(JFDG)를 편성해 연구를 진행했던 것(현대전의 알파와 오메가, Richard p Hallion)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군의 지상작전은 크게 보면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근접항공지원, 전장항공차단, 항공차단입니다. 이는 적과 아군 지상군이 접촉하는 전단 및 전선(FEBA/FLOT)과 그 후방의 화력지원협조선(FSCL)을 통해 구분되는데, 이 사이의 간격에서는 공군과 육군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오폭이나 아군공격이 발생하거나, 전투기가 지상군의 포탄이나 대지미사일에 운나쁘게 맞거나, 아군 방공체계의 공격을 당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화력지원협조선을 설정, 이 선 뒤에서는 공군은 육군과 협조 없이 자유롭게 적 지상군이나 지상표적을 공격하는데 이것을 항공차단이라 하고, 이 선 안에서는 지상군의 지원요청에 따라서 지상표적을 공격하는 근접항공지원이 이루어집니다. 전장항공차단은 이 협조선 내외에 걸쳐져서 진행되며, 지상군과 협력이 필요할수도,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1982년 교범이 근접항공지원(CAS)이나 전장항공차단(BAI)을 박격포, 포병, 로켓과 미사일과 같이 화력지원으로 정의한 반면, 1986년 버전은 육군의 화력지원과 공군의 개입을 분리하여 바라봅니다. 1982년 버전이 전장항공차단을 지상작전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지상군 지휘관이 지정한 적대적 표적에 대한 폭격으로 정의한 반면, 1986년 버전은 "전장항공차단은 공군구성군 사령관에 의해 집행되는 총체적인 항공차단활동의 필수적인 일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982년 버전이 지상군 지휘관에게 종심전투를 수행할 것을 강조하면서, 항공차단은 군단 지휘관의 영향구역의 한계 너머로 제한되었습니다. 항공차단작전은 지상군과 공군의 상호 오폭 및 격추위험으로 인해 화력지원협조선 밖에서 이루어지므로, 이를 고려하면 화력지원 협조선 내외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전장항공차단 소티를 포함한 계획을 지상군 지휘관이 수립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1986년 버전은 공중우세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제공작전이 우선순위를 가진다고 강조합니다. 결과적으로 군단지휘관은 종심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항공자산의 운용을 허용받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982년 버전이 공군을 지상작전에 지나치게 얶메어놓는다면, 1986년 버전은 육군과 공군사의의 협조를 통한 합동교리에 기반하여 공지전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지전이 철저히 지상작전 위주의 개념에서 합동작전으로 진행되는 일보를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상작전에 영향을 미치는 공군의 투입이, 단순히 지상군 사령관을 지원하는게 아니라, 육군과 공군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상호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는 합동성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합동성의 시작이야말로, 미육군이 1945년부터 1986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독일이나 소련에 비해서 지상군의 작전에 있어서 아마추어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관점을 타파하고, 미래 전장에서 지상군의 방향성을 이제 미군이 주도한다는 것을 정립하게 되는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6. 공지전의 발전과 그 영향

 공지전은 중앙유럽에서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위협에서 유래되었지만, 공지전의 탄생과 발전방향은 중앙유럽에서의 지역적 여건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공지전은 대규모 지상군의 기동전에 있어서 경험과 이해가 부족했던 미육군에게 기동의 개념, 역할,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이해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공지전의 특성은 미육군의 공세적 운용양상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기동전, 공세적 특성은 NATO가 정치적으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공지전교리의 도입을 거부하고, 대신 공지전에서 적 후방지역에 대한 화력투사에 초점을 둔 후속제대 공격(FOFA) 개념을 도입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NATO는 전선(FLOT)너머에 대한 화력투사를 제외한 종심기동을 핵전쟁 및 전쟁을 유발하는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므로서 후속제대에 대한 공격개념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공지전보다는 적극방어 교리에 가까운 개념을 채택했습니다.

 재건된 독일연방군이 1959년 10월에 수립했던 공세적 기동방어 계획이 독일 북부/남부에서의 공세에 기반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독일군의 신화와 진실, 게하르트 P. 그로스), 미육군의 이러한 변화는 수적열세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기동전을 건의했지만 미국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독일연방군 최초 참모총장 호이징거(1982년 사망)에게는 격세지감이었을 것입니다. 



------Jointstars의 운용 http://archive.defense.gov----
 공지전의 특징은 "기동"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해당 기간에 발전하고, 또한 발전이 가속화된 장사정 정밀유도탄과 공군의 화력을, 전선 너머의 적을 발견할 수 있는 1982년 개발이 시작된 JOINTSTARS와 같은 정찰자산, 그리고 적절한 표적지정을 가능하게 하는 C4I의 발전과 결합함으로서, 고전적인 전훈에서 확보된 "기동"이라는 소프트웨어와 신기술 기반의 "화력"이란 하드웨어가 결합되었다는 점입니다.

 1976년에서 1986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미군은 낯설었던 "기동"과 전통적인 "화력"선호 사이에서 이동하면서, 미육군이 나아가야 할 지점을 찾아 계속 탐구를 지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방의 기술우위를 기반으로, 지상군의 "화력"은 포병에 국한하지 않고 공군으로 까지 확대되기 시작했고, "기동과 화력"의 효과적인 시너지를 달성하게 되는 다음 스텝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모두 보다 우수한 미육군을 만들기 위한 아름다운 의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다. 실제로는 징집병제에서 지원병제로 교환하는 과정, 레이건 시기의 팽창된 군비를 끌어다 쓰기 위한 이기심, 자기 병과에 유리한 군 구조와 작전을 구성하기 위한 내부정치, 다시 감소한 국방예산에 대응하기 위한 과정과 같은 수많은 내적 변수 역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거치며 미 육군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나갔습니다. 

 공지전의 발전은 특히 미육군의 지휘체계에 있어서 큰 변화를 야기한다. "기동"의 재발견과 강조과정에서, 미육군은 반복적으로 임무형 지휘체계와, 하위제대 지휘관 및 하급장교들의 보다 독자적인 판단과 분권화된 임무수행을 강조하고, 요구하게 된다. 이전에 비해서 빠른 템포, 모멘텀, 주도권, 기동을 통한 공세가 강조되면서, 미육군에게 있어 전장상황은 이전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해나갑니다. 하위 부대 지휘관은 이런 여건에서 보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미육군은 1976년부터 1986년까지의 교범에서 반복적으로 임무형 지휘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1982년 시작되어 1986년 교범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작전술에 대한 치열한 연구는 일명 "공지전 제다이"를 탄생시킴과 동시에 미육군이 지휘체계에 공식화한 임무형 지휘와 상충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고, 이러한 모습은 공지전 교리가 최초로 구현된 전면전, 걸프전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공지전과 여단, 그리고 분권화

 공지전은 화력에 강하게 의존하던 과거에 비해 기동을 통해, 미육군에게 이전보다 빠른 템포와 동시다발적 행동을 요구하고 이는 하위제대가 보다 독자적인 행동을 수행할 수 없다면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때문에 1976년 적극방어교리나 그 이전에 비해 하위제대인 여단이나 대대에 요구되는 역할은 이전에 비해서 훨씬 증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위제대가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히 지원부대의 역량이 요구되었습니다. 이전의 연대전투단이나 전투사령부 편제와 같이 하위제대에 일시적으로 필요한 화력, 공병, 군수등 지원부대를 필요에 따라 붙였던 것은 여단이나 대대가 항상 독립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면, 공지전 교리는 하위제대가 좀 더 자주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사단의 지원 없이도 작전할 수 있는 역량으로서의 편제변화수요가 야기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휘체계에 있어서도, 공지전은 상위제대 지휘관이 하위제대 지휘관이 보다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할 것을 조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리의 변화가 미육군에게 역량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 편제와 지휘체계에 있어서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지전이 요구한 변화는 아직 충분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 걸프전 이후, 1993년 공지전 교리가 공식적으로 대체되면서, 미육군은 그 이상의 변화를 요구받게 됩니다.  


댓글 69

  • best 8thDiv 2018-03-04 추천 3

    포병솔님께서 납득 못하시면 정리된 반박글이나 지적글을 정리해서 잘 남겨주세요. 저도 고견 참조해서 오해나 무지를 개선하고 더 좋은 글 작성할 수 있도록 하죠.

  • 포병솔 2018-03-04 추천 1

    제가 말한 선형이라는 뜻이 상당히 다르게 개념이 있군요.
    우리군에서 사용하는 선형이라는 용어는 전선유지라는 의미가 강하거든요.
    결국에 기동전에서도 선형, 즉 전선이 유지되어 적의 역습을 방어하거나
    도리어 벌어진 틈으로 적의 종심공격을 방어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군 작계를 보지 못한 분이 대부분이신데.
    보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받고 작성에 참여하고 훈련을 한 실무자 경험으로서 언급하자면
    군단급 이상의 우리군 교리는 2차대전시 독일군이나 소련군 교리에 더 가깝게 원론이 형성되어 있어요.
    장비와 편제, 하위 제대의 전술에서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지요.
    뭐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군단급 이상 교리는 전술적 개념에서는 사실 무의미할 수도 있어요.
    그냥 원론적인 수준에 가깝거든요.
    이 부분은 추후에 자세히 언급할 사항이기도 하니 간단히 줄이죠.

    8thDiv님은 "대화력전과 종심타격 중심으로 포병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며
    기동전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 이라고 하시는데 작전수행을 잘 모르셔서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종심타격과 기동은 완전 별개 개념으로 상호 상반이나 비례관계가 아니거든요.

    우리군 "대화력전과 종심타격"은 미국에서 완전히 받아온 개념이예요.
    제가 지난번에도 댓글로 잠깐 언급한 표적처리 절차나 대화력전 절차도
    미군에서 받아온 개념이고 실제로 우리군 작전은 걸프전때와 유사하게 진행됩니다.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미군의 다수 포신포병이 해체되면서 이 방식을 사용 못하는 것이지
    미군도 어떤 이유에서든 다시 과거의 대군을 유지한다면 이 방식으로 하리라 예상합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누누히 언급했던 사항이지만
    말단 대대급 작전과장인 레온하트의 불만 사례의 경험은
    우리군 기동작전에서도 흔히 나오는 사항이고 그 대부분이 기동부대 내 상하제대의
    소통과 관점의 문제이지 기동전을 소흘히 해서 나오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제가 우려되는 점은 이렇게 잘 정리한 글이 나중에 용두사미가 되거나 아전인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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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thDiv 2018-03-04 추천 0

    참고로 지상전 중심의 공지전 교리가 구식화된건 맞습니다. 하지만 1993년 전방위적 작전 교리로 네트워크 중심전 개념이 도입된 이후에도, 미육군은 화력위주의 소모전으로 교체된게 아닙니다. 여전히 지상군은 기동전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합동교리로서 공군과 육군의 상호 합동작전 개념이 강화된거죠. 이 다음 챕터가 걸프전-이라크전과 합동교리를 다루며 미군의 화력-기동간의 현재 지향점을 어설프게나마 설명드리게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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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티컬파우치 2018-03-04 추천 0

    좋은글감사합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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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thDiv 2018-03-04 추천 0

    한국군 관련해서 파고들려면, 1976년 OPLAN부터 시작해서 7군단, 대화력전, 전방사단 배치등을 파고 들어야 하는데, 제가 지금까지 구한 자료들은 대부분 비교적 단편적이라서 미군에 비해서 어떻게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꽤 재미있는 주제들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 오래걸리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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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thDiv 2018-03-04 추천 0

    한국군 교리는 제가 섯부르게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보병병과 따로, 포병병과 따로, 기갑병과 따로 각자 주장이 다른 느낌이라고 할까요. 말로는 입체고속기동전을 이야기하지만, 군단 및 사단 편제, 특히 7군단 이외에서는 거의 연관성을 느끼기 어렵고, 상위제대에서는 대화력전과 종심타격 중심으로 포병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며 기동전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 포병출신들에서 많이 나옵니다.(포병솔님 이야기하는거 아닙니다.) 그렇다고 합동교리에서 뛰어나냐 하면, 한국 육군은 합동교리의 활용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라서..
    확실한건 한국군은 미군을 포함해서 현재 군사적 발전을 주도하는 강대국의 지상군 발전방향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군 내의 양상을 알 수 있는 정리된 내용을 찾기가 어려워서 제 지식부족이 문제일지도 모르지만요. 여튼 이 부분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댓글 (3)

    maxi(김민석) 2018-03-05 추천 0

    한국 육군은 합동교리의 활용을 누구나 하고 있지만 아무도 하고 있지 않다는 평가에 동감합니다..

    8thDiv 2018-03-04 추천 0

    미군은 여단전투단에 공병대대, 보급대대와 같이 지원부대를 대규모로 편제표상에 아예 넣어서 해결했습니다..

    VITRUVIUS 2018-03-04 추천 0

    포병솔님은 어찌보실지 몰라도
    저는 이부분 동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울나라 공병대 기보사에서 공병장갑차우선지급이 당연하고
    공병이 제대로 포함된 공지합동훈련이 적은게
    말이않되죠. FTX급이 아닌
    일반적 대대/여단 훈련에서도
    공병과 같이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는 말 들은적 없고
    오히려 제대할때까지 그러한 훈련에서
    단한번도 훈련한적 없다는 공병은 많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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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thDiv 2018-03-04 추천 0

    1. Nonlinear Battle(비선형전)은 1982년 미육군 작전교범에 차세대 전장개념은 Nonlinear Maneuver Battle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고,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1986년 교범에서는 비선형전을 적시하지 않고 Fluid로 정의합니다.
    2. 역습, 기동방어 개념은 1976년 이전의 1968년 미육군 작전교범에도 존재했습니다. 1982-1986년 미육군 공지전 교리가 이전과 달라진 점은 화력에 비해서 기동에 중점을 둔 부분입니다. 그건 위에 본문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1986년 교범은 기동방어와 지역방어를 1968년 이후 없어졌던 항목을 부활시킨 겁니다.
    3. 한국군의 경우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부분은 자료의 한계로 함부로 제가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현재의 한국군 OPLAN-5027의 시작은 1976년 적극방어 교리의 도입과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공지전 교리도 비슷한 시점에 도입되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현재 한국군의 방어계획이나 부대배치, 편제는 공지전 교리를 전면 도입했다고 볼 수는 없고, 적극방어교리의 흔적 + 공지전 도입&독일유학영향&소련종심작전 연구 + 대화력전에 있어서의 제한적인 네트워크 중심전이 여기저기 섞여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한국군 방어계획은 시작시점부터 지금까지 적극방어 교리를 제대로 적용한바가 없습니다. 이 부분도 좀 더 명확히 논지를 펴려면 좀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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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병솔 2018-03-04 추천 0

    한가지 궁금한 것이 기동전을 비선형전투로 기술하셨던데
    단순히 Jeffrey W. Long의 기술인지, 의견인지 아니면
    8thDiv님의 생각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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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병솔 2018-03-04 추천 0

    뭔가 설명이 더 붙는 기술이 있을실지 모르지만 우려에 한마디 남기자면
    여기서 소개되는 역습, 기동방어 등은 전통적인 교리로 이때 생겨난것은 아닙니다.
    이런 방법의 방어전투는 우리군은 물론이고 북한군도 아주 오래전부터 교리화 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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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프독 2018-03-04 추천 0

    공지전투 교리는 걸프전에서 처음 적용되었는데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 작전교리로 전투를
    설명하는' 군사 평론가'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일본은 이점 지적하면서 : 엉터리 전문가들아!
    중이되거라! 하는 비난 기사가 떴었지만 한국은 보니 별 비난도 없이 승승장구로 권력권에
    진입하는 '인재'가 있더군요

    댓글 (2)

    VITRUVIUS 2018-03-04 추천 0

    기동전술이 구식이면 현재는 어떤가요?
    공지라는 개념은 구식이어도
    급속기동에 기반한건 아직도 진행형아닌가요??.

    포병솔 2018-03-04 추천 0

    뭔가 오해가 너무 심하시네요.
    여기서 소개하는 공지전투 교리의 초기버젼은 이미 우리군에서도 구식이예요.
    현재 교리는 많이 발전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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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병솔 2018-03-04 추천 0

    설마 8thDiv님이 생각하시는 우리군의 모습이 미군의 70년대 적극방어하고 가깝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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