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초음속 순항이야기가 자주 나오길래 몇 자 적습니다.

현재 초음속 순항의 정의는 보통 '애프터버너를 켜지 않고 초음속으로 비행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습니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애프터버너를 켜고 있는 동안에는 연료소모량이 감당할 수 없이 커서 몇 분 정도씩만 비행해도 연료를 엄청나게 써버리기 때문이지요(안그러한 드문 예가 SR-71입니다. 이 항공기의 엔진은 일정 속도 이상에서는 애프터버너가 일종의 램제트 엔진으로 작동해서 초음속에서도 계속 애프터버너를 켜고 '순항'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연료를 먹는양이 엄청난덕에 길이 40m짜리 거대 항공기가 탄생하였지만).

흔히 공기저항이라고 부르는 항력이란 것은, 굉장히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속도는 물론 공기밀도, 항공기의 형상, 공기흐름의 상태(난류/층류) 등등..

일반적인 물체라면 속도가 빨라질 수록 항력이 커집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항공기는 약간 다른 경향을 보입니다. 항공기의 항력요소중에는 양력(항공기가 뜨는 힘)을 만들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요소가 있는데 이를 유도항력이라고 합니다. 이 유도항력은 항공기 속도가 빨라질 수록 작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항력요소가 커져도 유도항력 요소가 점차 작아져서 항공기가 일정 속도 이상에서는 되려 항력이 감소하는 구간이 생깁니다. 보통 이렇게 항력이 감소한 구간을 순항속도로 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줄어들던 항력이 갑자기 항력이 '점프'를 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이 구간이 소위 말하는 천음속 영역이지요. 천음속은 마하 0.8~1.2 사이 정도를 일컫는 말로, 아음속에서 초음속으로 넘어가는 구간입니다.

충격파라는 것은 공기흐름이 마하 1.0 이상, 즉 초음속이 되어야만 발생합니다. 그런데 항공기 개발자들 입장에선 골치아픈 것이 항공기는 정작 마하 1.0을 안넘어섰는데도 항공기 주변 일부에서는 초음속 흐름이 발생한다는 점이지요. 충격파란 것은 '공기흐름'에 영향을 받지 '항공기의 속도'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항공기의 날개 위의 공기흐름은 주변보다 더 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항공기는 마하 0.8 밖에 안되었는데 날개 위에서는 공기흐름이 마하 1.0을 돌파해버리고, 그 결과 충격파를 만들어버리지요(흔히 항공기가 고속으로 비행할때 생기는 항공기 주변의 원뿔모양의 구름이 바로 이 초음속 흐름의 흔적입니다. 순간적으로 가속된 공기는 항공기가 마하 0.8~0.9 정도 밖에 안됨에도 공기흐름이 1.4까지 급가속 되는 경우가 생기고, 이 급가속된 부분은 온도가 순간적으로 주변보다 확 떨어져서 본래라면 눈에 안보이는 수증기상태를 유지해야 할 물들이 순간적으로 포화상태를 넘어가 작은 물방울 임자를 형성, 눈에 보이는 구름이 되는 것입니다).

충격파가 생기면 항공기의 항력은 굉장히 커집니다. 이렇게 항력이 순간적으로 커지는 속도를 임계속도, 혹은 임계마하수(Critical Mach Number)라고 부릅니다. 보통의 전투기는 이 임계마하수가 0.85~0.9 전후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대략 마하 0.8 전후로 갑자기 항력이 급점프하는 것이 보입니다.

일반적인 전투기들은 애프터버너의 도움 없이는 이 구간에서 막힙니다. 추력이 항력을 이겨내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제트 엔진의 재미있는 점은 속도가 빨라지면 전체추력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아래는 F100 엔진급을 모델링한 자료입니다.

점은 엔진 데이터, 실선은 프로그램을 이용한 추정입니다. 잘보면 여러 속도, 고도에 따라 엔진의 추력이 엄청나게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엔진데이터에 적혀 있는 '추력 3만 파운드.'라는 것은 사실 '그냥 이정도 급이다.'라는 수준이지, 항공기에 장착되었을 때 항상 3만 파운드의 추력을 낸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항공 교과서에서는 '아음속에선 엔진 추력이 속도가 빨라져도 일정하다고 본다.' 라던지 'MiL 파워에 한하여 엔진은 속도가 빨라져도 일정하다고 본다.'라는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서 넘어가지만, 실제 엔진은 저렇게 속도가 빨라지면 추력도 커집니다. 대신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공기밀도가 희박해짐에 따라 엔진추력이 팍팍 깎여 나가는게 보입니다. 두 번째 MAX 상태의 경우를 예를 들면, 고도 0일 때에 비하여 고도 3만 피트에서 엔진 추력은 거의 1/3 수준으로 깎여 나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전투기들이 최대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 3만~4만 피트정도지요. 이는 고도가 높아지면서 공기밀도가 희박해지면 엔진 추력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항력또한 작아지는 경향이 있어서입니다(단, 그렇다고 모든 항공기가 고도가 높아질 수록 낼 수 있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음속기들은 해면고도에서 속도가 제일 빠르고 고도를 높일 수록 최대속도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이제 이러한 엔진의 추력경향과, 항력을 같은 그래프에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가 나옵니다.

옆에 설명이 나와있듯 초록색은 A/B를 끈 상태, 빨간색은 A/B를 켠 상태입니다. 이 그래프대로라면 이 항공기는 A/B를 끈 상태, 즉 초록색 추력선이 마하 1.0 직전에 파란색 선(항력)과 만납니다. 즉 마하 1.0을 넘어가면 추력보다 항력이 더 커지는 상황이므로 수평상태에서는 더 이상 가속을 할 수 없고 그냥 속도를 유지만 하게됩니다. 반면 애프터버너를 켜면(빨간선) 마하 1.7 정도까지 가서야 항력이 추력을 넘어섭니다. 수평상태로 가속한다면 애프터버너를 켰을 때 마하 1.7 까지는 속도를 올릴 수 있다는 소리가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속도, 고도, 항공기 기동조건, 외부 무장등에 따라 여러모로 항력과 추력은 달라지게 됩니다. 그 결과를 모두 그래프로 그려 보면 다음과 같은 그래프가 나옵니다.

이것은 F-104G의 성능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애프터 버너는 켠 상태). Ps라고 적혀 있는 것은 잉여마력으로 쉽게 말해 Ps=0이라면 더 이상 항공기는 여유분의 힘이 없습니다. 앞서 추력/항력 그래프에서 추력선과 항력선이 만난 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다만 이것'만' Ps=0으로 만드는것은 아니고 속도가 느릴 경우엔 실속한계, 저속일 때는 기체 구조물이나 엔진 구조물의 한계등도 영향을 받습니다).

Ps가 크다는 것은 남아도는 힘이 더 많다는 뜻이고, 그 말은 더 빨리 속도나 고도를 높일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래프 안쪽에 보면 Ps가 100, 200, 300, 400등으로 큰 구간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리고 점선으로 표시된 Hc는 이 항공기가 갖는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란 운동에너지+위치에너지지요. 그러므로 가장 높은 에너지 상태에 도달하려면 가장 바깥쪽 점선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그럼 이제 F-104G가 최대 에너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지요.

Ps가 클 수록 항공기는 더 빨리 가속, 혹은 더 빨리 상승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최대한 키우려면 상승이건 가속이건 빨리하면 할 수록 좋으니 Ps가 큰 쪽을 찾아가는것이 좋습니다. 그렇기에 F-104G는 A에서 B로, B에서 C로, C에서 D로 계속 속도와 고도를 높여나갑니다.

그런데 D에 도달하였을 때, 만약 지금과 같이 계속 고도/속도를 동시에 올리면 Ps=200으로 줄어듭니다. 허나 재미있는 것은 마하 1.5를 넘어가면 다시 Ps=300인 구간이 나온다는 점이지요. 이는 천음속 영역 일부구간에서 항공기의 항력 증가폭을 엔진의 추력 증가폭이 쫓아가지 못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F-104G는 Ps=200으로 가지 않고 Ps=300인 지점으로 빨리 가기 위하여 고도를 낮추고 있습니다. 대신 속도는 올리면서요. 그결과 D에서 D` 지점으로 비행한다음 다시 고도와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위의 경우에는 애프터버너를 켠 경우지만, 애프터버너를 끈 상태일 때는 아래 그림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이 상황을 묘사한 그래프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다른 그래프를 제가 약간 손을 본 겁니다).

즉 애프터버너를 켜지 않으면 Ps=0인 구간이 마하 1.0을 못넘는 구간과, 넘는 구간 두 군데로 끊겨버리는 거지요. 항공기는 Ps=0인 구간을 '고도/속도를 유지한 순항상태'에서는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Ps 값이 0이하인 마이너스 값을 갖는 것도 가능합니다. 흔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태'지요. 즉 고도를 낮춰 속도를 높이거나(쉽게 말해 급강하), 혹은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현재까지 얻은 속도로 계속 상승하는 상황입니다(보통 이를 Zoom Climb이라 합니다).

아니면 더 심플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냥 애프터버너를 켜버리는 거지요. 그럼 위 그래프는 중간의 떨어진 공간이 다시 연결되면서 항공기는 앞서의 F-104G처럼 Ps 값을 마이너스로 갖지 않으면서도 다시 음속을 돌파한 다음, 위 그래프의 오른쪽 구간의 Ps=0인 지점에 도달하였을 때 애프터버너를 꺼버려도 Ps=0이므로 속도/고도를 잃지 않고 순항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초음속 순항'은 중요한 요소가 맞는데 '중간에 애프터버너를 쓰는가'는 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일례로 콩코드 여객기는 초음속 순항시 바로 위에 말씀드린것 처럼 중간에 잠깐 애프터버너를 써서 '고난 행군 시절'을 이겨낸 다음 다시 더 높은 고도/속도에서 애프터버너를 끕니다. 바로 위 그래프에서 애프터버너를 꺼도 Ps=0 이되는 지점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지요.

이때문에 F-22나 유로파이터, 라팔, 그리펜 등등의 홍보시 등장하는 '애프터버너를 켜지 않고 음속을 돌파하여 초음속 순항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문구도 조금은 고민해볼 문제지요.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천음속 영역에서 잠깐 애프터버너를 써서 이 구간을 빨리 넘겨버린다음 다시 애프터버너를 끄고 Ps=0 이상인, 초음속 순항이 가능한 속도/고도로 옮겨가는 편이 연료소모도 덜 들고, 더 빨리 초음속 순항 상태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