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선 영원한 현역

“늙어서 위험하게 왜 비행기 타냐고? 하고싶은 일하다 죽어야 미련없잖아”



- 살맛나는세상


- 김상태

하늘이 좋았다. 끝없이 푸른 창공,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인 노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여명(黎明). 그런 하늘을 볼 때면 자신이 시인(詩人)이 아니라는 것이 늘 아쉬웠다. 30년을 누비던 그 하늘은 70세를 훌쩍 넘긴 노인이 돼서도 그의 가슴에 청년의 꿈처럼 남아 있었다.

전 공군참모총장(1982~1984) 김상태(金相台·75)씨.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星友會)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1984년 예편 후에도 창공을 잊지 못했다. ‘향수병’을 앓아오던 ‘김 장군’은 외국에 나갈 기회만 있으면 경비행기를 조종했고, 1992년엔 항공우주전략연구원을 만들어 공군의 전술전략과 비행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0년엔 아예 여주에 1만2000평의 땅을 사들여 비행장을 짓기 시작했다. 전 재산을 털어서였다. 공군은 떠났지만 하늘은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안금리 승진항공기술 비행장. ‘김상태 장군’이 초경량비행기 ‘스토치HS’에 올랐다. 흐린 날씨 탓에 실제 비행이 아닌 사진촬영을 위한 연출이었지만, 비행기에 오른 노병(老兵)의 모습엔 현역 못지 않은 패기와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이래봬도 이놈이 1000피트(약 300ｍ)까지도 올라가요. 3만피트 상공에서 작전하는 전투기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이놈 타고 있으면 모든 시름이 없어지지요.”


김 장군이 이곳에 비행장 터를 닦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처음엔 나더러 사람들이 미쳤다고 해요. 늙어서 위험하게 왜 비행기를 타느냐고. 하지만 살 만큼 살았으니 하고 싶은 일 하다 죽어야 미련이 없는 것 아니오.” 돈이 풍족하지 않았으니 비행장 공사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터를 닦고 지반을 다지고, 건물을 짓고, 거의 맨손으로 하다시피 한 비행장공사는 꼬박 5년이 걸려 지난해 말 끝이 났다.



▲ 경비행기 모는 75세 老兵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이 초경량 비행기에 올랐다. 김 장군은 요즘도 틈만 나면 경기도 여주에 비행장을 찾아 초경량 비행기 조종간을 잡는 ‘현역’이다. /김용국기자

그는 비행장에 ‘승진항공기술(www.aviationclub.co.kr)’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초경량비행기(225㎏ 이하) 5대를 도입했고 공군에서 퇴역한 제공호와 훈련기 T-37까지 전시용으로 들여놨다. 그러곤 전문교관 2명과 정비사 2명을 채용, 조종학교도 차렸다. 아직 훈련생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 “학생 없는 학교인 셈이네요”라고 농담을 건네자 김씨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즐거움”이라며 소탈한 웃음을 짓는다. 지난해 말 성우회 회장을 맡은 뒤로 바빠지긴 했지만 그는 틈만 나면 이곳에 내려와 비행을 한다.


1953년 공군 소위로 임관해 훈련기 무스탕으로 시작, 공군참모총장 시절 제공호를 직접 조종하고 창공을 누비던 그로서는 아직도 하늘에서만큼은 현역인 셈이다. 비행기 이야기 말미에 사회 원로로서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대답은 역시 ‘비행’이었다.


“비행은 넓게 봐야 하지만 정밀하고 정확하기도 해야 돼요. 세상 사람들 특히 위정자들은 이 점을 알아야죠. 비행하듯 세상을 경영해야지. 넓지도 못하면서 정확하지도 못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어수선한 거 아녜요. 퇴역 장군들이 거리에 나가 데모하는 세상을 보면 참 답답해요. 눈물이 난다니까….”
출처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03/2006031404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