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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나 피를 먹고 자라지 민주주의는 피와 관계 없다.

  작성자: 황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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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9-27 15:05:45

한국에 공산주의자가 잘못퍼트린 대표적인 이야기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이야기 즉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를 유럽의 역사인물들을 살펴보며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역사내에서도 민주주의와 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고 말입니다.

공산주의와 피는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애초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을 유명한 유럽 민주주의 국가의 유명한 역사학자나 철학자가 이야기 했어야 최소한의 신빙성이라도 존재하는데.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마시며 자란다." 
- 월간 《사상계》1960년 5월호

어처구니 없게도 이 말은 1960년 민주주의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대한민국 월간 사상계 1960년 5월호에 나온 말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나온 말이니 민주주의와 하등 관계가 없죠.

심지어 위의 말은 토머스 재퍼슨의 말인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폭군의 피로 매순간 새로워진다.라는 말을 변형시킨 것이라는데.

여기서 토머스 재퍼슨이 말한 것은 자유지,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당연하지만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애국자가 자유를 억압하려는 폭군과 대립하면서 쟁취되는 것이니 유혈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토머스 재퍼슨이 영국 왕실과의 충돌과 독립을 자신들과 대비시키며 영국에 대한 프로파간다와 공격을 동시에 수행하며 한 말이라고 봐야겠죠.

애초에 독립전쟁의 역할에 자유까지 합쳐진거죠.

공산주의는 분명하게 피를 먹고 자랍니다. 유교isis의 변형인 공산주의가 대량학살을 자주 일으키는 이유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다시 유교적 절대지배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한 유교isis인 공산주의는 엄청난 살육을 통해서 절대지배체제를 확립해야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유럽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는 피와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애초에 피를 가장 덜보고 전환되는게 많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이 무슨 엄청난 살육전이나 살육을 통해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프랑스 혁명자체는 고작 루이 16세와 그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해서 왕조 붕괴는 2명죽고 끝인데다가 애초에 죽이지 않아도 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혁명세력에 있는 이들이 무능력해서 괜히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했다가 신성로마제국의 간섭을 스스로 자초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상황이 자동으로 전이된 것 입니다.

 다만 한가지 과거 로마제국 시대에 공화정의 붕괴와 제정의 등장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공화정 즉 민주주의로 거대한 국가 통치가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거대한 나라를 하나로 규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왕이라는 상징이 필요하니까요.

 단수히 작지만 강력한 나라라면 충분히 왕이 없이 공화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중세와 근세 유럽의 기준화폐라고 할 수 있는 베네치아 두카트를 발행한 베네치아는 그 1년국고가 프랑스 + 영국 + 독일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국고를 가진 유럽최대의 경제대국이었지만 영토자체는 굉장히 이들 국가들에 비해서 작았습니다.

 그외에 제노바, 시에라, 토스카나 같은 국가들,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하나의 공화정 도시연합체인 한자동맹.
 스위스등 공화정 국가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물론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아마 소수의 엘리트 계층에 의한 투표가 중심이기에 다르지만 어찌되었던 공화정 전통은 계속 유럽내에서 존재하고 베네치아 제노바 같은 경제강대국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무슨 피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들도 아니고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자체가 바로 한국의 무식한 민주주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입니다.
 유럽 민주주의 국가는 말한적도 없는 것을 한국이 무리하게 공산주의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자유를 빼버리고 오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등과 연계해서 말한 것이라고 봐야하고요.

 유럽 민주주의 발전에서 미국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베네치아 같이 경제적 초강대국은 가능하지만 영토적 의미에서 강대국은 민주주의가 안된다고 심지어 로마공화정 조차도 그렇게 생각한 것을.

 미국은 영토적으로 넓은 나라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지속적인 유지가 결국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자동으로 연계되었다고 봐도 됩니다.

 이미 공화정을 통해서 경제적 초강대국은 베네치아부터 등장했었고 영역적 강대국은 미국이 가능하고.

 공화정과 민주주의 자체가 경제발전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상업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절대왕정은 위에 나온 토마스 제퍼슨의 말마따라 폭군은 정확히 말하자면 절대 왕권은 절대왕권을 위협하는 상업세력을 용납하지 못하고 충돌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경제발전이 유럽보다 낙후되고 뒤쳐진 여러가지 요인 중 큰 것 하나는 유럽은 동양의 전제군주들보다 왕권이 훨씬 약했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세력이 거대화 되는 것을 억누르는 것이 불가능 했고 이들 상업 + 부유층들이 국가내에서 권력을 쟁취하며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간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그 중심은 부유한 상업계층과 변호사 의사등의 고소득 계층이 중심이되어 지배계층으로 떠오른 젠트리 계층인거죠.
 프랑스일 경우는 좀 다르게 민주주의와 왕정이 교차되어 가면서 나중에 야 더이상 무능한 왕정은 용서 못한다 그냥 공화정 해버려! 이런 나라입니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 야 그런데 역시 공화정으로는 프랑스 같은 거대국가 통치가 안되는거 같아. -> 나폴레옹 제정 -> 나폴레옹 몰락후 프랑스 왕정복고 -> 프랑스왕 너무 무능하다 공화정 합시다 -> 제2 공화국 -> 그래도 프랑스 같은 큰 나라는 역시 왕정이 맞겠지?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 -> 나폴레옹 3세 너무 무능해! 우리 그냥 공화정 합시다! -> 제3공화정.
그리고 지금까지 150년넘게 계속 민주주의하고 있습니다.

독일도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독일 & 오스트리아 세계 1차대전 패배 -> 공화정 전환 -> 야 그래도 독일같이 거대한 나라가 민주주의로 돌려가면서 대통령해대니 무능하기만 한거 같아. 히틀러로 모입시다! -> 히틀러의 종신독제 ->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통합 -> 히틀러 망해버림 -> 야 괜히 히틀러로 모인거 같다. 그냥 민주주의 계속하자. ->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실 일본과 대한민국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정답이 나왔는데 지금 바로 위의 내용을 반복하는거죠.

 대한민국 & 일본 -> 야 민주주의 좋기는 한데 우리 좀 전체주의 다시할까? 말까?

 딱 솔직히 말해서 왕정이 복고되던 독재를 복고하던 그 체제 망하고 그냥 민주주의 좋다고 돌아옵니다.

 딱 일본 아베가 하는 행보가 민주주의 이상한거 같아 전체주의 하자 수준이고.

 대한민국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위의 민주주의 진행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민주정 -> 왕정 복고자체다 유혈사태가 아닙니다. 
 왕정 복고 -> 민주정 이전은 유혈사태기는 하지만 이게 민주주의 만들려고 일어난 유혈사태가 아니라 복고된 왕정의 무능력함으로 히틀러처럼 전 국민이 죽어나가는 전쟁을 하던가, 나폴레옹 3세처럼 프로이센에게 전쟁에서 깨져서 나라가 쪽박찬다거나 같은 치명적인 실책으로 야 왕정 안되겠어 그냥 민주정이 최고야! 우리가 바보였어! 하면서 평화적으로 정권이 민주정으로 이전한 것 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지 않습니다.
 애초에 프랑스 혁명의 성공자체가 대규모 유혈사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두명 목짜르고 성공했고 이 둘의 목을 안짤라도 성공했었으니까요.
 프랑스 혁명정부의 무능력함이 필요 없는 유혈사태를 일으켜서 문제를 일으켰던 것 뿐이죠.

 영국의 민주주의가 평화롭게 정착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물론 영국의 크롬웰처럼 무력적 행위를 한 이들도 있지만 애초에 크롬웰은 종신 독재자에다가 자기 아들에게 종신 독재관 자리를 물려준 즉 이름만 공화정이지 내용은 토마스 제퍼슨이 말한 폭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크롬웰에 의해서 자유가 억압받던 이들이 그나마 자유가 보장된 왜냐하면 왕권이 약해서 제약이 많은 왕정이 더 낳겠다고 그리고 프랑스의 개입으로 왕정 복고가 되었지만.
 이마저도 결국 얼마 못가서 무능해서 못살겠다. 네덜란드 종신 총독 우리 왕으로 모시자!
 해서 네덜란드 종신총독 오리네공이 영국와서 왕되죠......

 추가로 오리네공의 존재는 영국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혁명적 사건인데.
 오리네공의 취임 후 영국은 유럽의 중규모 국가 혹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는 2중대 국가에서 졸업하고 독자적인 힘을 가진 강력한 유럽 강대국으로 발전해갑니다.

 오리네공 -> 앤여왕을 통해서 영국은 유럽 강국으로의 면모를 보이고 특히 네덜란드가 오리네공 다음 총독이 전쟁에서 급사하고 거의 40년동안 총독취임 없는 단일 정부 상태가 없었기에 네덜란드가 가졌던 꿀같은 무역로를 영국이 차지해버린 후 신대륙에서 오는 부는 무론 유럽의 부가 주로 통용되던

 런던(영국) - 엔트워프(벨기에 혹은 스페인 혹은 신성로마제국) - 로테르담 혹은 암스테르담(로테르담은 네덜란드 최대의 항구이자 현존 유럽최대의 항구,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제1이 도시이자 네덜란드의 수도) 삼각무역의 주도권을 잡고 유럽최강국으로 우뚝선 것이죠.
 이 삼각무역이 동쪽으로 더 영향을 주어서 발트해 무역권과 러시아까지 영향을 미치고.
 이것 때문에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하자 러시아가 미쳐 날뛰며 나폴레옹에게 침략받아도 영국하고 교역을 한 것 입니다.

 영국과 저지대의 삼각무역이 발트해무역에도 영향을주고 이 발트해 무역권에 있는 러시아가 식량을 발트해 무역에 팔고 발트해 무역에 있던 식량이 런던으로 이동되는 식으로 러시아의 수출루트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어찌되었던 사실 공화정이 경제력은 최고기는 최고죠.
 영국이 점점 왕권이 약해지며 입헌군주정화된 것도 이러한 무역업의 흥행과 그 무역업을 통한 세계최강국이 된 과정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고요.
 
 아 추가로 그래서 스페인이 사실은 유럽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던 실질적으로 로마제국보다도 유럽내에서 더 강했던 최강 패권국이었던 겁니다.

 위에 말한 삼각무역중 엔트워프와 로테르담 둘다 스페인 영토였습니다.

 정확히는 저지역에서 합스부르크 왕가 최대의 왕인 카를 5세가 나왔고 카를 5세가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강력한 상업세력의 지원하에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구하고 튀니지를 정복한적도 있는등 강력한 패권체제를 만들어냈죠.
 그걸 아들인 펠리페 2세가 가톨릭 무조건 가톨릭 하라고 네덜란드 갈구다가 네덜란드가 독립한 후 나라가 몰락을 향해서 가게되죠...... 특히 이때 네덜란드의 부를 볼 수 있는게 스페인과 80년동안 전쟁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에게 독립하자마자 유럽의 패권국가중 하나가 되고 말입니다.

 이게 무역로를 영국에게 잠식당 한 후 패권국가를 못하고 몰락했었으니 그 당시 무역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죠.(프랑스와 신롬의 압박으로 인구수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국에게 교역로를 잠식당한거죠.)
 강력한 상업세력이 발호하면 결국 그들에 의해서 국가권력이 약화됩니다.

 상업세력은 애초에 돈에만 관심이 있기에 그것이 정치권력화 되는 일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특별한 예 즉 네덜란드 독립전쟁 같은 일같은게 아니라면 말이죠.
 상업활동하기도 바쁘니까요.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겁니다.

 민주주의는 돈을 먹고 자란다.
 왜냐하면 강력한 상업세력의 발흥속에서만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석시시대 수준의 기술력인 아메리카 인디언들만 있던 땅에 정착되면서 엄청난 광물자원을 마음것 향유하며 엄청난 상업적 발전 수준을 이룩합니다.
 영국? 강력한 무역으로 인해서 젠트리 계급이 급상승하며 왕권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입헌군주정이 이룩됩니다.
 프랑스? 독일? 둘다 토지계급의 힘이 강했기에 왕정 복고와 민주정이 교대로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왕의 무능함이 심하다고 그냥 민주정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었기에 이 둘을 교대로 해보며 무엇이 좋은지 가늠했다고 봐야죠.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는 돈에 의해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애초에 돈있는 지역이 민주주의 하는 것 입니다.
 오직 무역력이 탁월한 나라들만이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며.

 사실 대토지 소유의 농업국가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이게 민주정인지 왕정인지 구분을 못하는 수준의 통치밖에 못합니다.

 그 이유는 농업국가의 특성상 대규모 치수등에 목을 매게되고 그러한 대규모 치수사업등은 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무역업이 중심인 국가에서는 당연히 해야되는 국가체제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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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st 가이바G 2014-09-27 추천 4

    일반 민초들이 못먹고 못사는건 유럽이 훨신 심했습니다.
    그래서 경제 발전으로 먹고 살만해지고 힘있어진 평민들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터져나와 왕정이 무너진거구요.

    조선은 의식주는 어느정도 해결되었지만 정작 윗대가리들이 지네 욕심 채우면서 나라 망쳐 놓고 시대의 흐름을 못따라간게 망쪼든 이유입니다.

  • 황경필 2014-09-28 추천 0

    최소한 민주주의라 할려면 투표나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가 중요해서 다음 정치지도자가 결정되야지 크롬웰이 원해서 무작정 다음대에 아들이 정권을 이어받은 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도 투표에 의해서 외형적으로는 김정일, 김정은이 정권을 이었지만 그 투표가 반대한다고 씨알이라도 먹힐 내용들도 아니죠? 그래서 북한이 왕조라고 부르는거고요.
    그외에 조선이 미개한 것은 사실이니 제가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미개한건 그냥 미개한겁니다. 민족이 열심히 일해서 역략을 늘린 것은 행정부가 미개해서 발전못시킨거니 말입니다. 지금의 북한과 다를바가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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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경필 2014-09-28 추천 0

    올리버 크롬웰이 일평생 독재하고, 죽고나서 아들에게 프로텍터 즉 최고 독재자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그게 민주주의라고요?
    ????????
    어떠한 투표절차도 뭐도 없이 크롬웰이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준 것은 또 다른 왕조인거지 당연히 왕조교체로 인한 엄청난 피가 났다고봐야지 민주주의가 피를 부른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데요?
    크롬웰이 한게 민주주의면 북한도 민주주의고 전세계 절대왕정도 모두 민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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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ndlord 2014-09-28 추천 0

    진심으로 유교를 비판하시고자 한다면 막스 베버의 <유교와 도교>를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전반기 서양 인문사회과학의 절반-나머지 절반은 칼 마르크스-을 만들었다고까지 일컬어지는 학자의 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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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ndlord 2014-09-28 추천 0

    민주주의는 피와 관계가 없다구요? 크롬웰의 독재를 부른 청교도 혁명-최근에는 영국내전으로 부릅니다만-은 찰스 1세가 아버지 제임스 1세만도 못한 정치력을 보이면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의회와 찰스 국왕과의 갈등에서 의회 민주주의 원칙들이 하나 둘 제안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고, 이걸 국왕이 무시하다가 내전으로 결판난 겁니다. 아버지와 비슷한 정치적 상황에서 일어난 제임스 2세의 망명 사건을 영국인들이 명예 혁명이라고 부른 것은피를 부르는 내전을 치르지 않고서도 중대한 정치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기쁨의 표현이고 말입니다.

    자신의 이론을 평화적으로 타인에게 알려서 공유한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확립된 사실과 이론과 원칙들을 마음대로 왜곡하면서 주장을 펴는 것은 결국에는 주장의 신뢰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기도 합니다.

    전부터 유교탈레반입네, 유교 이슬람 국가입네 하시면서 유교를 매우 비난하시던데, 그런 행태는 이미 1920년대의 중국 지식인들에게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중국 근대화의 방향은 공산주의였습니다. 또, 1960년대 이후 일본을 필두로 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상할 정도로 팽창적인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정신적 원인을 유교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19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과 중국에서 일어난 모든 악의 원인이 유교!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재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설프기만 하면서도 뭔가 교양있어 보이려고 움직이는 분들에게는 황경필님의 발상이 먹혀들지도 모릅니다만, 중국학 나아가서 동양학 연구자들에게는 황경필님의 발상은 죄송합니다만 아주 먼 예전의 고리타분한 유교 두들기기를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의 고려없이 재연하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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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이바G 2014-09-27 추천 0

    예전에 자원외교 이야기 나올때 시간 많이 걸린다고 김대중때인지 노무현때 추진한게 이네 당시쯤에 결과물 나오기 시작한걸 예로 들었었죠.
    당시에 버린돈이네 뭐네 하던 자원 외교 결과물 요즘 쏠쏠하게 결과가 나오고 있죠...

    세빛 둥둥섬도 까대고 난리쳐 대더니 멋지게 부활...
    동대문 공원도 대박...
    그러고 나니 박원숭이 자기가 한거 같이 떵떵...
    망하라고 굿하던 놈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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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7 추천 0

    글라제님 자원외교요 ㅎㅎ~~~
    어디서 그런 말을 혹시 옛날자료보고하는소리인가요 ㅎㅎㅎㅎㅎ
    2013년부터2014년지금까 그문제많은 이명박 자원외교가 지금은 어떻게 돌아가는지좀보세요 ㅎㅎㅎㅎ그다음엔 다시올려주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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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7 추천 0

    ㅋㅋ그래도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분다 절대못한 ?
    공공기관.공무원.공무원연금 개혁 해서 그나마 ㅋ 물론 김대중때 공공기관10개은해서 나머진좀 다하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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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이바G 2014-09-27 추천 4

    일반 민초들이 못먹고 못사는건 유럽이 훨신 심했습니다.
    그래서 경제 발전으로 먹고 살만해지고 힘있어진 평민들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터져나와 왕정이 무너진거구요.

    조선은 의식주는 어느정도 해결되었지만 정작 윗대가리들이 지네 욕심 채우면서 나라 망쳐 놓고 시대의 흐름을 못따라간게 망쪼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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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이바G 2014-09-27 추천 2

    조선이 못먹고 못살았다???
    극 후반 민씨 일가가 난리칠때와 6.25이후 개판되어서 60년대 경제 성장 사이에 정도 뿐입니다.
    조선시대 일반인들 식량 생산량과 소모량 보면 그런 멍청한 소린 못할텐데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먹고 사는건 조선 말기 보다 일제시대때가 더 나았다 소리가 나올까요?
    물론 일제 시대도 막판에 전쟁한다고 싹싹 긁어가서 난장판 나긴 했지만.
    오죽했으면 임진왜란때 일본애들 먹는거 보고 조선 사람들이 왜놈들은 굶어가며 전쟁한다고 할 정도로 먹는량 차이가 심하게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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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검심 2014-09-27 추천 0

    지금 조제중 이십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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