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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승리와 아름다운 패배

  작성자: angelove4u
조회: 654 추천: 4 글자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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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2-11 23:25:33

최근 LA 에서 한 한국인 아파트 렌드 로드가 세입자들이 제기한 몇 천불의 손해배상 청구를 거절했다가 결국은 민사소송으로 발전하여 여러 차례의 분쟁 조정 제안을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다가 7 만 여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배상 판결을 받게되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된 사례가 보도되었다.

분쟁 조정을 거부하고 흑(黑) 아니면 백(白)이라는 고집으로 끝까지 소송을 끌고 가다가 이런 낭패를 보는 한인들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분쟁으로 법원에 오게된 한인들을 만나보면 유독 한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던 양 당사자의 주장이 자기 측이 모두 100 % 정당하고 상대방이 100 %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인의 의식이 이렇다보니 어떤 분쟁에서나 서로가 일부를 양보하고 합의하여 사건을 합의하도록 법원이 조정을 시도하지만 이를 받아드려 사건을 마무리하는 한인들의 사건은 아주 드물다.

미국에서는 민사사건의 90 %가 이런 조정을 통해 합의로 해결되고 있는데 반해서 한국에서는 겨우 4 % 만이 조정으로 끝이 난다니 이것은 분명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의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뉴욕 주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 없이 법원의 재판까지 가지 않고도 적절한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미미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처리해주는 편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흔한 예로서 방을 빌려서 세를 들었던 사람이 집 주인과의 불화 때문에 분쟁이 생겨서 지불한 보증금이나 집세의 반환 요구 등으로 법원에 있는 CDRC (Court Dispute Referral Center) 라는 기관에 해결을 구하는 경우이다.


이 기관에서는 양 당사자를 불러서 서로의 입장을 듣고 합의점을 끌어내어 분쟁을 끝내도록 알선 조정 (arbitration) 하는 중재재판 (Mediation Center) 에 보내서 조정인 (Arbitrator) 이 상담을 하게 되어 있고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관을 통해서 간단한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고 또 사건의 규모가 커서 정식으로 민사법원에 소송을 한 사건이라도 그 절차 중에 법원은 거의 대부분 법원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당사자들끼리 서로 합의해서 끝을 내도록 유도 조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건이 이렇게 합의로 끝을 맺는 것이 미국의 풍토이다.

특이한 일은 한국사람들이 이 중재재판을 대부분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10 여 년 동안 법원에 일하는 동안 위에서 말한 중재재판에 보내진 한인들의 사건이 합의로 분쟁을 끝맺는 경우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살펴보면 한국인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중재재판은 이름 그대로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 본 다음 서로의 주장을 조정 유도하고 양보를 이끌어 내어 분쟁을 해결하도록 합의시키는 중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 중재재판은 양보 또는 타협한다(compromise)는 자세에 친숙하지 못한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양보한다는 것은 곧 지는 것(defeat)이나 잃는 것(loss)으로만 생각한다.


말하자면 재판에 가서 내가 옳으면 이기는 것이고 아니면 지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소위 흑백 논리 때문이다. 즉 두 당사자 중에 어느 한쪽이 정당하면 상대방은 당연히 부당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그 중간 개념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타협 (compromise) 한다는 것을 잃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인들의 사고 때문에 법원의 분쟁뿐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주변의 모든 일이 풀리지 않고 어려운 고비마다 싸움질만 이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시끄러운 정치문제로 있는 세종시 문제나 사대강 계획에서도 그 실질적 대안으로 타협안을 제시할 줄 모르고 흑백 논리로 싸움만 벌리고 있는 것도 역시 한국인의 특성인 비타협 정치풍토 때문인 것으로 보여 가슴 아프다.

댓글 2

  • best viceversa 2011-02-12 추천 1

    유교 원리주의인 성리학에 의하면 '타협'은 곧 '도덕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과거 조선 500년간의 당쟁도 이러한 원리에 의해 격해졌지요. 다른 나라들은 당쟁을 하더라도 국가나 사회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양자간에 타협을 이루고 공동대처를 하지요. 타협은 전혀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지요. 오히려 격려할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리학적인 관점에서는 타협은 곧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되며, 따라서 타협은 도덕적, 윤리적인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될 행위가 됩니다.
    정치판에서 꾸준히 회자된 '사꾸라 논쟁'이 이를 증명하지요.
    시오노 나나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지요. - 이익을 다투는 신사는 양보를 하여 타협이 가능하지만, 명분을 다투는 사람들은 양보를 할 수가 없다. 명분은 양보하는 순간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국가통치 이데올로기로 500년간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타협이 곧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협을 하지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지요.

  • 광야의 늑대 2011-02-12 추천 0

    Negotiation에 약한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분쟁이 생겼을 경우 세상에 100% 내가 옳은 경우는 드뭅니다.
    하다 못해 사기를 당했어도 내게 일부분의 책임은 있는 겁니다.

    한국사람들은 타협하면 자기 체면이 손상된 걸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타협할 줄 모르고 협상에 약한 것이 정치적 경직성으로 이어지고 외국과의 협상에서도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 집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부터 토론과 협상에 관한 것을 가르칠 팔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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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ceversa 2011-02-12 추천 1

    유교 원리주의인 성리학에 의하면 '타협'은 곧 '도덕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과거 조선 500년간의 당쟁도 이러한 원리에 의해 격해졌지요. 다른 나라들은 당쟁을 하더라도 국가나 사회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양자간에 타협을 이루고 공동대처를 하지요. 타협은 전혀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지요. 오히려 격려할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리학적인 관점에서는 타협은 곧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되며, 따라서 타협은 도덕적, 윤리적인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될 행위가 됩니다.
    정치판에서 꾸준히 회자된 '사꾸라 논쟁'이 이를 증명하지요.
    시오노 나나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지요. - 이익을 다투는 신사는 양보를 하여 타협이 가능하지만, 명분을 다투는 사람들은 양보를 할 수가 없다. 명분은 양보하는 순간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국가통치 이데올로기로 500년간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타협이 곧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협을 하지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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