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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없는 아시아, 아시아 없는 미국

  작성자: 젊은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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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2-04 19:30:24

꽤 괜찮은 칼럼이어서  옮겨보았습니다

 

[박두식 칼럼]

'미국 없는 아시아', '아시아 없는 미국'

박두식·논설위원 dspark@chosun.com 
 
         입력 : 2010.01.19 22:56 / 수정 : 2010.01.21 12:39


과거 역사를 보면 東아시아 외교·안보 틀이 흔들릴 때마다 한반도가 화(禍)를 입었다


최근 미·일·중 힘의 균형에 심상치 않은 변화 시작됐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올해도 여행 스케줄의 맨 앞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올려놓았었다. 작년 2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일본·중국을 찾은 데 이어 2년 연속 아태 순방을 계획했던 것이다. 유럽부터 찾아가던 역대 국무장관들과 달리 아시아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클린턴은 "외교의 절반은 존재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 도착 직후 터진 아이티 대지진 때문에 호주·뉴질랜드 등 아태 순방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그는 하와이 이스트웨스트(East-West) 센터 연설에서 아시아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앞으로 계속 머물기 위해 돌아왔다"고 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최근 "미국은 아시아에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상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이후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미국 외교·국방장관이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그 답을 찾으려면 일본 열도 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 섬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65년 전 오키나와는 비극의 땅이었다. 1945년 4월 1일부터 시작된 83일간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2000여명, 일본군 11만여명이 전사했고, 15만명가량의 오키나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의 섬 오키나와는 그 후 55년간 미·일 동맹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미군은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줄 때까지 직접 관할했고, 지금도 주일미군 기지의 74%가량이 이 섬에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이전 문제를 놓고 충돌하고 있는 미 해병대 비행장이 위치한 후텐마 기지도 그중 하나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신속기동군 역할도 맡고 있어 한반도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

미군 기지가 있는 곳에선 현지 주민들과의 마찰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미군 비행과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은 10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06년 후텐마 기지를 같은 오키나와의 슈워브 기지 부근으로 옮기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집권한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은 이 합의의 전면 재검토를 내걸었고 미군 기지들을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들고 나왔다.

'설마'했던 워싱턴은 격분했다. 작년 말 워싱턴에선 미·일 동맹의 먼 앞날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었다. 백악관 아주국장을 지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하토야마 내각을 한국의 노무현 정권에 비유하면서 "뚜렷한 전략과 대안도 없이 미·일 동맹을 흔드는 것은 일본 안보는 물론 경제에까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지일파들이 "기지 이전 문제 하나 때문에 미·일 동맹을 잃을 순 없다"고 맞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창한 '소프트파워'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후텐마보다 미국을 더 자극한 게 하토야마가 제안한 '동아시아 공동체'와 '동아시아 정상회의' 구상이다.

미국을 이런 모임에서 아예 빼 버리는 데 일본이 앞장섰기 때문이다. 클린턴과 게이츠가 "미국은 아시아로 돌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없는 아시아, 아시아 없는 미국'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후텐마에서 터져나온 미·일 동맹의 파열음이 한순간 스쳐가는 바람으로 끝날지, 아니면 55년간 유지돼온 동아시아 외교·안보의 틀 전체를 흔드는 태풍으로 변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에서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미·일 동맹이 흔들리는가 하면, 20세기 전반기 내내 전쟁을 치렀던 중국과 일본이 합동 군사 훈련에 합의했다. 동아시아에서 이는 모든 변화의 진앙을 찾아가면 세계 패권까지 넘볼 만큼 성장한 중국이란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거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틀이 흔들릴 때마다 크고 작은 변란을 겪었다.

중국 왕조가 바뀌거나, 일본이 새 질서를 찾겠다고 나서면 한반도가 제일 앞줄에서 그 격랑에 부딪혀야 했던 것이다. 격변의 시기마다 이 땅의 위정자들은 국제 정세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우물 안 정치'로 허송하면서 화(禍)를 키웠다. 세종시 논란 등에서 드러난 우리 정치의 수준을 보면 그런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댓글 10

  • best 코스모스 2010-02-04 추천 2

    전 아직 산날만큼 앞으로도 살아야 될거 같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을때에도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가 울러 퍼지길 바랍니다. 인공기나 오성홍기, 일장기가 펄럭이는 꼴은 못 보겠습니다. 성조기야 두번이나 휘날릴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러지 않았죠. 하지만 나머지 세개는 호시탐탐 그런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누구를 친구로 두어야 할까요? 전 성조기를 친구로 두면 관에 누울때 태극기를 볼수 있을거 같습니다.

  • changeling 2010-02-04 추천 0

    참가하고 말고 할것도 없습니다. 아시아 공동체란건 구체적으로 진행될리도 없고 그럴수도 없고 그냥 일본내부의 정치적 이유로 (우애개념) 나온것이지 현실성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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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모스 2010-02-04 추천 2

    전 아직 산날만큼 앞으로도 살아야 될거 같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을때에도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가 울러 퍼지길 바랍니다. 인공기나 오성홍기, 일장기가 펄럭이는 꼴은 못 보겠습니다. 성조기야 두번이나 휘날릴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러지 않았죠. 하지만 나머지 세개는 호시탐탐 그런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누구를 친구로 두어야 할까요? 전 성조기를 친구로 두면 관에 누울때 태극기를 볼수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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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홀더 2010-02-04 추천 0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마닐라나 다바오.브루나이를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그건 항상 그런것이고 어느정도는 적극적으로 참가도 해야지요.

    너무 적극적으로 참가해도 강대국의 요구에 무너질것이고 참여 않해도 반영이 않될것이고...
    그게 중용일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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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조갑제 2010-02-04 추천 1

    중국이나 일본이나 그들의 시각에 한국은 없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 몇 안될겁니다.

    그런데도 우린 안에서 지지고 볶고 있으니

    19세기의 재림인가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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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홀더 2010-02-04 추천 0

    만약 합종연횡을 걱정해야 하는 전국시대가 다시 반복된다면....

    합종과 연횡의 차이는 종적인가 횡적인가 일뿐입니다. 모두가 모두를 걱정하는 시대라면 공동체가 없을수는 없는데,시간을 끌고 구조를 변경하는것뿐이겠지요. 둘다 공동체임에도 결과는 전혀 다를껍니다. 그 약간의 차이가 모든것이죠.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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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조갑제 2010-02-04 추천 0

    오끼나와까지 포함해서 볼때

    일본으로서는 어차피 자신의 영토가 아니었던 오키나와와 조선을 희생으로 2차대전 종전의 댓가를 치룬 셈이 되니 참으로 얄밉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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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조갑제 2010-02-04 추천 0

    여기서 잠깐 오끼나와에 대해서 언급한다면 오끼나와는 처음부터 일본영토가 된 것은 아니고
    원래 류큐國으로 독립국으로 존재하다가 1609년 오늘날 일본 가고시마가 있는 사츠마번의 시마츠가 류큐를 침략해서 조공국으로 삼게 되면서 일본의 영향력아래로 들거갑니다.

    그렇게 사츠마번의 조공국의 반식민상태에 있다가 1879년에 일본은 류큐왕국을 완전히 병합하는데 이것을 류큐처분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사츠마번의 시마즈는 임진왜란때도 조선에 출병하고 세키가하라전투때도 끝까지 히데요리측에서 전투를 한 일본내에선 용맹성이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정도의 "번"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쿠가와가 집권을 한상태에서도 사츠마번의 그 용맹성을 인정해서 가문을 그대로 이어간 몇 안되는 일본의 번이었습니다.

    그후 메이지시대에 마지막 사무라이의 모델이 되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이 바로 사츠마번입니다. 이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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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ling 2010-02-04 추천 0

    아시아의 공동체라는게 EU같은걸 말하는건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같은 중, 일의 리더쉽으로 보았을때는 별로 설득력도 없고, 섬하나를 두고도 으르렁대는데 공동체가 다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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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ling 2010-02-04 추천 0

    중국이 어리석어서 주변국에 위협을 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을 이기기 어려울듯 합니다. 중국이 주변국에 강성이미지를 거두고 세련된 매너로 접근하면 오히려 미국없이도 아시아 평화가 올것으로 생각들 하겠지만...아니 오히려 중국의 구매력과 경제력 때문에 오히려 미국을 배척할수도 있겠지만...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므로 주변국들이 위협을 느껴 미국을 아시아에 잡아두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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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조갑제 2010-02-04 추천 0

    보면 볼수록 하토야마수상은 일본의 노무현같지 않습니까?

    하토야마의 "동아시아 공동체"와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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