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국방과 기술

소련의 MiG-25 탄생 비화

  작성자: 남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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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1-21 13:38:35

소련의 MiG-25 탄생 비화



남도현 전사연구가






[그림 1]



고고도에서 마하 3까지 속도를 내도록 설계된 XB-70에 소련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자국을 침공할 XB-70의 비행고도 및 속도와 맞먹는 요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른 모든 것은 필요 없고 단지 고고도로 빨리 치고 올라가 고속으로 비행이 가능한 요격기의 개발에 진력했다. 그만큼 소련이 느꼈던 공포는 대단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MiG-25였던 것이다.




•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비밀


  1967년 7월, 개항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한가했던 모스크바 남쪽 근교의 도모데도포Domo -dedovo 국제공항에서 열린 모스크바 에어쇼에 처음 보는 소련제 전투기가 등장했다. 당시 1급 군사 비밀로 취급하던 전투기가 공개되었다는 것은 소련이 이전투기에 대해 갖는 자부심이 그만큼 컸고 반대로 서방을 위협하는 좋은 재료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외형에서부터 풍기는 강력함이 기존 소련 전투기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 동안 서방 전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투박했던 전작들과 달리 덩치가 상당히 크고 날렵했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Tu-128 같은 특이한 사례를 제외한다면 예전 소련 전투기들은 공대공 전투보다 폭격기 요격에 특화되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다. 항속 거리도 짧고 탑재 장비도 부족해서 지상의 관제를 받아 작전을 펼친다.
  전시된 전투기는 요즘에는 보편적으로 채용되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던 대형의 2중 수직미익을 가졌다. 한마디로 외관에서부터 상대를 압도했을 정도였다. 개발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MiG-25 폭스배트Foxbat의 화려한 데뷔 장면이었다. 물론 무기가 단지 외형이 멋있고 강해 보인다고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항공기는 드러난 기체의 형상만으로도 어느 정도 비행 능력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림 2]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외부에 공개한 MiG-25 폭스배트. 소련도 1급 비밀 무기로 취급했고 서방도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림 3] 애프터버너(After Burner, 후기연소기)를 켜고 힘차게 이륙중인 MiG-25. 현재 공식적으로 러시아 공군에서는 완전히 퇴역했고 일부 국가에서 정찰용으로 사용중이다.



  거기에다가 개발 과정중 서방 레이다에 포착된 MiG-25는 최고 마하 3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며 고도 70,0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된 상태였다. 이제까지 등장한 소련은 물론 서방의 어느 전투기도 근접할 수 없는 엄청난 성능이었다. 이처럼 개발 당시부터 이런저런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물을 처음 확인하게 된 서방은 예상보다 뛰어난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서방의 군사 당국자들은 6·25전쟁 당시 갑자기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만든 MiG-15 전투기나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의 출현으로 엄청난 쇼크를 받았던 것과 비슷한 공포를 느꼈다. MiG-25를 전격 공개한 소련은 처음부터 이런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여전히 감추려 했던 것이 많았던 냉전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 이렇게 연출되었던 것이다.
  살얼음판 같던 첨예한 냉전시기에 등장한 MiG-25에 대해 서방측이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 때문이었다. 비록 미사일과 레이더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전자 장비의 도입이 본격 시작된 제3세대 전투기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속도가 전투기 성능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예전보다 중요도가 줄었지만 속도가 빠르면 유리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 갑자기 찾아온 보물


  소련이 MiG-15, MiG-17, MiG-19, MiG-21 등의 전투기를 차례로 등장시켰을 때 미국은 이에 충분히 맞서거나 혹은 성능이 더욱 우수한 F-86, F-100, F-104, F-105, F-4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서방이 실전에 배치하고 있던 어떤 전투기로도 MiG-25를 맞상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그 만큼 속도 차이가 눈에 뜨일 정도로 컸다.
  MiG-25의 등장은 마침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을 추진중이던 미 공군을 더욱 조급하게 만드는 채찍이 되었고, 그 결과 F-15와 미 해군의 걸작인 F-14의 등장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F-15, F-14의 고주익(高主翼), 2중 수직미익 구조가 MiG-25를 카피한 것이 아닌지 하는 공공연한 수군거림이 있었다. 그만큼 MiG-25의 외형적 구조가 탁월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1970년부터 MiG-25가 소련군에 본격적으로 배치되자 서방이 느낀 공포는 한 마디로 극에 달했다. F-4 같은 당시 NATO 소속 전투기들이 요격을 나갔어도 한참 전에 지나간 후였다. 결국 ‘대공미사일로는 요격도 못할 고고도를 엄청난 속도로 날아 NATO지역을 자기 집 안방처럼 휘젖고 다닌다’는 미확인 정보까지 난무할 정도였다. 이처럼 알려진 것이 너무 없었기에 공포는 더욱 커졌다.





[그림 4] 전투기로는 믿기 힘든 엄청난 속도로 말미암아 서방이 MiG-25에 느꼈던 공포는 실로 대단했다.



  그런데 막연히 공포감으로 두려워만 하던 MiG-25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되는 결정적인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1976년 9월, 일본 홋카이도의 하코다테(函館)공항에 미국으로 망명하기를 원했던 소련 극동 공군 소속의 벨렌코Viktor I. Belenko 중위가 조종하는 MiG-25P가 비상 착륙하는 일이 벌어졌다. 고속으로 남진하는 모습을 포착하고 긴급 출격한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의 F-4EJ의 요격도 따돌렸을 정도였다.





[그림 5] 일본 하코다테 공항에 불시착한 벨렌코의 MiG-25. 지금까지 추측만 해오던 소련군 최신 전투기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는 MiG-15기를 조종해 1953년 9월 21일, 김포 공항으로 탈출한 북한 공군의 노금석 소위의 망명 이후 최대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은 당시 포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안전한 망명지 제공을 약속했고 벨렌코를 호송할 때 암살을 염려해서 여러 명의 가짜를 투입했을 만큼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야말로 첨예하게 맞서던 냉전 시기에 우연히 찾아온 보물이었다.
  그만큼 당대 소련의 1급 기밀이라 할 수 있는 MiG-25를 고스란히 분석하게 된 미국의 흥분은 대단했다. 소련 특수부대가 침투해서 파괴할지 모른다는 정보가 돌자 기체를 도쿄 인근의 이바라키(茨城)공항으로 이송했고 미국에서 파견된 기술진들이 달라붙었다. 그렇게 철저히 조사를 마친 기체는 11월 15일 소련에 반환되었다. 그리고 기술진은 미국 정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알고 보니 별것 아니다”였다.




• 허무한 사실


  굴러들어온 호박을 혓바닥으로 핥듯이 샅샅이 조사한 미국의 기술진들은 예상을 벗어난 놀라운 사실들을 차례차례 알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고속 비행이 가능한 차세대 비행체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기체의 소재 개발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던 중이었다. 때문에 마하 3으로 비행이 가능한 유일한 전투기인 MiG-25는 기존의 티타늄 합금을 능가하는 최신의 비밀 소재로 되어 있을 것이라 막연히 추측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도 마하 3을 넘는 SR-71이 있었지만 전투기로 사용이 불가능한 전략 정찰기였다. 공교롭게도 SR-71의 동체를 만드는데 사용한 티타늄은 소련에서 수입한 것이다. 이처럼 온갖 연구에도 마하 3으로 비행하는 전투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결론을 내려놓았다가 MiG-25의 등장으로 미국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좌절한 상태였다. 때문에 MiG-25의 재질에 대해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MiG-25의 동체는 허무하게도 자석이 짝짝 달라붙는 강철이었다. 정확히 스테인리스스틸 80퍼센트, 알루미늄 11퍼센트, 티타늄 9퍼센트로 이루어진 합금이었는데 당연히 내구성은 좋았지만 동급의 서방 전투기와 비교하여 터무니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방어력 향상을 위해 복합 소재 장갑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장갑의 두께만 늘린 전차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빠른 속도를 내려면 당연히 엔진이 강력해야 했다. 문제는 MiG-25에 탑재된 투만스키Tumansky R-15 엔진은 충분히 힘을 낼 수는 있었지만, 수명이 미국제 엔진의 1/10 정도로 짧아서 야전에서 사용하기에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 엄청난 크기의 노즐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엔진을 컴팩트하게 제작하지 못했을 만큼 기술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짧고 굵게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이었다.
  최근 들어 러시아제 엔진의 내구성이 많이 향상된 상태지만 금속 제작 및 가공 기술의 차이로 인해 여전히 미국이나 서방제 엔진과 비교하면 수명이 짧다. 때문에 러시아 전투기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유지보수 비용이 상당히 많이 나가고 또한 부품 조달에 애를 먹는 단점이 있다. 냉전 종식 후 러시아의 민간 항공사들이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서방제 항공기를 도입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많다.
  거기에다가 장착된 각종 전자 장비는 최신예 전투기라는 환상을 깨도록 만들었다. 당시 서방의 전투기 들은 트랜지스터를 사용한데 반해 MiG-25는 일부 장비에 구시대의 유물인 진공관이 장착되어 있었다. 후에 고고도의 극저온에서 작동할 때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보다 오히려 안정성이 좋기 때문에 일부러 장착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이런 점들은 그 동안 MiG-25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을 허무하게 깨버렸다.





[그림 6] MiG-25에 장착된 6C33C-B 진공관. 일부러 사용한 것이지만 처음 이를 접한 미국의 기술진들은 상당히 당황해 했다.




• 달랐던 탄생 목적


  더구나 기체 구조상 배면 비행은 꿈에도 꿀 수 없고 선회력도 극악무도한 수준이어서 과연 MiG-25가 전투기로 적합한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들었다. 최신 제5세대 전투기들은 스텔스를 기반으로 하고 가시권 밖에서 교전을 벌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전반적인 비행 능력은 오히려 이전 전투기보다 좋아졌다. 이처럼 전투기의 등장 이후 꾸준히 이어진 추세와 비교 한다면 당시 MiG-25는 시대를 역행한 셈이었다.
  굳이 장점이라면 마치 미사일처럼 고고도까지 빨리 치고 올라가 엄청난 속도로 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다가 마하 3의 속도로 지속 비행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전투기로 상당히 부족한 성능임이 확인되자 화려한 겉모습과 막연히 알려진 공포와는 달리 단지 ‘몰랐기 때문에 무서웠을 뿐이었다’라는 자신만만한 결과물을 얻었던 것이었다.
  1980년 F-4 팬텀의 요격을 유유히 따돌렸던 MiG-25가 매복하고 있던 F-15에 격추당했을 만큼 실전에서의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물론 이스라엘이 격추에 성공한 시리아의 MiG-25R은 정찰 기종이고 사전에 작전 계획을 잘 세워 놓은 덕분이기는 했지만 만일 공대공 전투가 벌어진다하더라도 MiG-25로 F-15를 상대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애초 탄생 목적부터가 공중전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F-X 사업에 의해 명품 F-15가 탄생할 수 있었지만, 먼저 등장한 MiG-25의 존재는 F-15의 개발에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자극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련이 MiG-25를 만든 목적은 F-4와 같은 미국의 전투기를 제압하는 공중우세기를 보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뒤에 출현한 F-15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림 7] 킬 마크가 새겨진 이스라엘 공군의 F-15C. F-14, F-15는 속도가 MiG-25보다 느리지만 실전에서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전과를 냈다.



  이것은 시간이 흘러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소련이 MiG-25라는 결론적으로 과대평가를 받은 희대의 괴물을 만든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의 삽질 때문이었다. 막상 소련이 MiG-25를 보유하자 미국은 지금까지 우세를 보였던 공대공 전투 능력이 역전당할 것을 우려해서 공포를 느꼈으나 정작 서둘러 MiG-25를 만들어야 했을 만큼 소련은 미국이 추진중인 하나의 프로젝트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공군의 코드는 ‘폭격기 만능론’이었다. 전투기들이 아무리 휘젓고 다녀도 생생히 경험한 바와 같이 폭격기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특히 핵폭탄의 등장은 이러한 미 공군의 만용에 기름을 부어 주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폭격기는 핵폭탄의 유일한 투발수단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고만장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었다. 한 마디로 핵폭탄과 전략폭격기는 초강대국 미국의 상징이었다.




• 오로지 하나만을 상대하기 위해


  그런데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 폭격기 만능론에 의구심을 들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MiG-15의 등장이었다. 미 공군은 6·25전쟁에 참가하자마자 제공권을 완전히 확보 했고 당시 최고의 전략폭격기인 B-29는 한반도 상공을 유유자적하게 날아다니며 원하는 곳에 폭탄을 갔다버리기만 하는 수월한 임무를 펼치던 중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B-29가 날아다니는 고고도까지 올라와 요격할 수단이 없기에 미국은 유유자적하게 폭탄을 버리기만 하던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5년 후에 한반도 상공에 등장한 B-29들도 당연히 그러한 기억을 잊지 않았고 계속 그렇게 전쟁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해 겨울 등장한 은색 날개의 제트기에 이런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었다.





[그림 8] 6·25전쟁 당시 B-29를 공격하기 위해 선회하는 MiG-15. 이처럼 소련의 전투기는 미국의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용도로 특화되었는데 MiG-25도 마찬가지였다.



  MiG-15의 등장은 모든 것을 악몽으로 바꾸어 버렸다. 비호 같이 달려들어 강력한 기관포를 난사하는 MiG-15의 공격에 둔중한 중폭격기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호위에 나섰던 미국의 전투기들도 새로운 적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손쉬운 작전을 펼치던 폭격기 승무원들은 적의 공격이 빗나가기를 기도하는 방법 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에게 이것은 처음 겪는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독일 본토에 대한 폭격이 연일 이어지던 1944년에 등장한 Me 262에 곤혹을 치렀던 적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B-17을 호위하던 P-51들이 감히 상대할 수 없었던 속도로 접근해 공격을 가하던 Me 262에게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마디로 미국은 이런 기억을 잊고 너무 자만하고 있다가 6·25전쟁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MiG-15에 능히 맞설 수 있는 F-86이라는 기동성능이 우수한 전투기가 있어 어려움을 즉시 극복할 수 있었다. 이후 놀랍게 등장하고 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MiG-15와 F-86은 진정한 제트시대를 개막한 라이벌로 전사에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치열한 독파이팅(Dog Fighting : 전투기가 상대 전투기의 꼬리를 물고 쫓는 것)이 워낙 유명하고 생김새도 유사해 종종 간과하는 사실 인데, 이 두 라이벌은 엄밀히 말하면 탄생부터 목적이 전혀 다른 전투기들이었다.
  F-86은 1,200발의 탄환을 탑재한 6문의 12.7mm 기관포로 속사공격을 가하는데 반해 MiG-15는 일발 필살이 가능한 40발의 37mm 기관포 1문과 80발의 23mm 기관포 2문을 탑재했다. 다시 말해 F-86은 공중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의 제공기로 세계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는 미국의 자신감을 반영한 전투기였지만 MiG-15는 소련 본토 공격이 가능한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탄생한 방공 요격기였다.




• 공포가 낳은 공포


  6·25전쟁에서 격추 비율이 F-86이 우세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러한 상이한 탄생 배경에 따른 기체의 구조적인 차이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MiG-25도 아버지뻘인 MiG-15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도 미국의 전략폭격기는 소련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MiG-25를 최신예기로 취급하면서 두려워했지만 정작 소련은 미국의 전투기들이 주관심사는 아니었다.
  중폭격기, 특히 핵폭탄 투하가 가능한 전략폭격기는 상대에게 위협적이지만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당히 나약한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폭격기를 목표 지점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했는데 전투기로는 호위할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었고 이것은 대륙을 뛰어넘는 초장거리 폭격에 투입되는 전략폭격기의 운용과 관련해서 떠나지 않는 고민거리였다.
  6·25전쟁에서 MiG-15에 예상하지 못한 아픔을 겪은 미국은 개발중에 있던 차세대 폭격기의 컨셉을 속도에 맞추었다. MiG-15 같은 소련의 요격기들이 감히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고공비행이 가능한 폭격기를 만들면 자유롭게 적진까지 날아가 폭탄을 던지고 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었다. B-29가 고고도를 방패막으로 삼았다면, 새로운 폭격기는 거기에 대해 속도를 자위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야심만만한 구상을 가지고 개발에 착수한 것이 바로 차세대 전략폭격기 XB-70 발키 리Valkyrie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B-36, B-47, B-52, B-58처럼 B-29의 뒤를 이을 다양한 종류의 중폭격기를 개발해 제식화 하고 있었지만 이것 가지고도 타는 갈증을 채울 수 없었던 것이었다. 공표된 XB-70의 성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이었고 소련은 경악했다.
  고고도에서 마하 3까지 속도를 내도록 설계된 XB-70에 소련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 다. 소련은 자국을 침공할 XB-70의 비행고도 및 속도와 맞먹는 요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른 모든 것은 필요 없고 단지 고고도로 빨리 치고 올라가 고속으로 비행이 가능한 요격기의 개발에 진력했다. 그만큼 소련이 느꼈던 공포는 대단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MiG-25였던 것이다.
  그런데 고고도를 마하 3의 속도로 치고 들어가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목표였던 XB-70의 개발 사상은 이미 시대에 뒤쳐진 것이었다. 전략핵 투발 수단은 대륙간탄도탄 같은 장거리 미사일로 넘어가고 있던 중이었고 U-2의 예에서도 보듯이 강력하고 정밀한 SAM과 AAM의 등장은 그 동안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고고도도 결코 안전한 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림 9] MiG-25의 탄생을 이끈 미국의 초음속 전략폭격기 XB-70 발키리. 하지만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해 개발이 취소되었다.



  분명히 XB-70의 하드웨어는 당대 최고 기술의 집합체라고 통칭될 만큼 뛰어난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문제는 효용성이었다. 과연 거대한 폭격기로 적진까지 날아가 공격을 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격렬한 의견이 오고 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소련은 MiG-25의 개발에 매진했다.





[그림 10] 2인승 훈련기인 MiG-25PU. 최근에는 우주비행사 양성이나 성층권 체험을 하려는 관광객용으로 사용될 만큼 위상이 변했다.



  결국 추락사고 등의 이유로 XB-70은 개발이 취소되면서 삽질로 막을 내렸지만 막상 서둘러 대응 수단의 개발에 나선 소련은 MiG-25를 이미 배치하던 단계였다. 그런데 자신들 때문에 벌어진 MiG-25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모르던 미국은 MiG-25의 성능을 과대평가하며 도리어 겁을 먹었던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제대로 모르던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고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알았을 때는 충분히 극복할 자신감이 생기지만 모를 때에는 삽질이나 낭비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단순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다 필요 없고 오로지 XB-70같은 고고도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단일 임무를 위해 탄생했지만 막상 목표 대상이 사라지자 엉뚱하게도 서방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졌고 오늘날은 우주 체험 관광 사업에 쓰일 만큼 변화무쌍한 길을 걸어온 MiG-25는 그래서 무기역사에 있어 재미있는 이단아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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