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가 1975년 7월 최초 개조에 성공한 M48전차(위)와 1978년 개조 후 주행시험을 하고 있는 M48A5전차 .

육군에서 잠시나마 장갑차로 개조 가능성을 검토했던 M551 쉐리던 공수전차.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를 획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어떻게 보면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를 가장 손쉽게 획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미 만들어져 그 성능을 인정받고 있는 제품을 ‘완제품’ 형태로 직접 도입하는 ‘해외구매’일 수 있다.

하지만 ‘빠르게 도입해서 운용할 수 있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파급효과가 없다. 오히려 외국에서 ‘생산 중단’될 경우 수리부속 확보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운용상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방법도 있다. 외국에서 이미 실용화된 무기체계를 국내 업체가 원 제작업체와 기술협약을 맺고 생산 권한을 대여 또는 양도받거나 기술지원 아래 생산하는 것이다. 이 역시 크게 장점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대부분의 구성품을 해외에서 도입해 조립 생산하는 수준에서 그치기 때문에 기술 축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기술적 종속관계만 불러올 수 있다.

　그 다음이 R&D(Research and Development)다.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의 기술을 국내에서 단독으로, 또는 외국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이 연구된 기술로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해외 직도입이 쉽기는 하지만

1974년부터 시작된 ‘전력증강 8개년 계획’, 즉 율곡계획(사업)에 따라 육군이 ‘기동성’ 있는 전력을 보유하기 위해 ‘장갑차’ 확보에 고심해야 했다.

　육군은 1967년 미 군원으로 M113장갑차를 일부 인수하고 1971년 기계화사단을 최초로 편성하면서 미 군원으로 미군 장기초과품(LSE) 가운데 270여 대를 도입해 기계화보병대대에 주력 장비로 운용했지만 날로 늘어가는 수요에 수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M113기본형이 A1·A2로 성능개량이 되면서 수리부속 조달이 어려워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작전환경에 부응하는 ‘궤도형 장갑차’를 획득해야 한다는 데는 별 이론의 여지가 없었으나 획득 방법이 문제였다. 가장 손쉬운 해외구매 방법은 재원(財源) 확보가 관건이었다. 또 당시 ‘방위산업 진흥’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국내 연구개발은 그즈음의 환경으로 볼 때 어쩌면 크게 고려해볼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의 우리나라 산업기반 형편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 국산 자동차 ‘포니’가 1976년 2월 울산공장에서 첫 출고됐을 정도에 불과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역시 비록 몇몇 총포류의 국산화해 가는 시점이라 해도 장갑차라는 ‘웬만큼’ 규모를 가진 무기체계를 국내 연구개발로 생산하기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기동전력 분야의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연구인력이라고 해 봐야 군용트럭과 CM6614 차륜형 장갑차의 국산화 사업에 관계된 10명 미만의 인원이 전부였다.

쉐리던 공수전차를 개조한다면

　육군이 먼저 생각해본 것은 ‘개조(改造)’였다.

　1977년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력기획처장인 임동원(육사13기 소장 예편) 준장은 국방과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파견된 육군현역장교 민성기(육사23기·준장 예편·현재 시스템체계공학원 원장) 중령을 찾았다.

　임 장군은 합참 군사력소요·전략기획과장(73~76년) 시절 이병형(육사4기·예비역 중장·전 합참본부장·작고) 장군과 이재전(육사8기·중장 예편·작고) 장군의 지휘 아래 ‘율곡계획’을 입안해 ‘율곡과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연대장(76~77년)을 마치고 1978년 준장으로 진급해 육본 전략기획처장(77~80년)으로 근무하면서 2차 율곡계획을 수립, 80년대 군사력 증강의 청사진을 짜고 80년 10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육군에 설치된 ‘80위원회’의 간사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임 준장은 미국 가톨릭대학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민 중령에게 “미국에서 쉐리던(M551 공수전차)이 곧 도태되는데 (쉐리던의) 섀시(chassis)를 갖고 다목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장갑차로 만들어 운용하면 어떻겠느냐는 미국의 제안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M551 전차는 수송기에서 지상으로 투하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공수전차였다. 기존 경전차를 능가하는 고기동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투 중량이 15톤 정도여서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전차다. 정글과 비정규전이라는 특수한 작전 환경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하는 등 중량 감소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방어력까지 약화돼 전차임에도 불구하고 장갑차(APC) 수준의 방어 능력밖에 갖추지 못했다.

　“섀시는 동력전달, 제동, 현가(懸架), 전기 등의 각종 장치를 갖추고 있으니까 이것을 바탕으로 장갑차를 만드는 것은 못할 일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도태장비나 생산이 중단된 장비는 후에 반드시 운용상에 문제를 일으켜요.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정리해 보고를 드렸습니다.”

우리 힘으로 개발할 수 없을까?

　민 중령의 보고 후 육군은 쉐리던의 장갑차안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고, M113 기본형 장갑차에 의존하고 있던 육군으로서는 M113A1·A2를 직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 돼 결국 해외구매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소요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 중령은 ‘뜻밖의 발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 장갑차를 개발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비록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 이력이 아직 일천하고 기동장비에 대한 연구개발도 그리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전차 개조ㆍ화포 개발 등을 통해 쌓은 몇몇 기술을 적용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즉, KM900(CM6614) 차륜형장갑차를 국내 생산하면서 기관총 공격으로부터 방호가 가능한 수준의 장갑판재 제작 기술과 용접기술을 확보한 점, M48계열의 전차를 개조하면서 궤도의 특성을 익힌 점, 화포 주퇴복좌기를 제작하는 대한중기(현 위아)의 기술이면 동력의 힘을 전달하는 샤프트(shaft) 가공도 충분해 보였다는 점, 대우중공업이 엔진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조남태·강윤수 연구원 등과 함께 장갑차 기술현황을 조사하고 개념연구도 진행하면서 사업계획서를 마련, 1978년에 ‘한국형 다목적 장갑차 개발안’을 국방부에 제출했다. 소요는 약 300대로 보았다. 곧 반대가 뒤따랐다. 독자적으로 개발할 능력이 없다,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직구매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등이 그 이유였다.

　국방부의 정책결정 분위기는 그즈음 FMC사의 M113장갑차를 ‘기술도입 국내생산한다’는 방향으로 흘렀고, 실제 생산업체로 S중공업이 선정되면서 그렇게 정해졌다. 장갑차의 독자개발이 가능하다는 믿음, 그리고 자주국방 실현과 산업발전 기여라는 당위성은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현실론’에 밀린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민성기 중령과 조남태·강윤수 연구원 등은 납득할 수 없었다. 민 중령은 이 물줄기를 바꾸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