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전쟁과 인간> 과거는 앞에 있지만 미래는 등 뒤에 있다

  작성자: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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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0-15 11:33:08

난징학살과 홋타 요시에의 소설 『시간』
전범국 日 작가의 ‘난징대학살’ 증언
피해자 중국 지식인으로 화자 전환
인간 윤리·역사·전쟁 참혹함 다뤄
‘과거 부정하면 미래는 없다’ 메시지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그림 ‘보들레르의 초상’. 홋타 요시에는 이 그림을 보고 소설을 구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필자 제공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그림 ‘보들레르의 초상’. 홋타 요시에는 이 그림을 보고 소설을 구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필자 제공

홋타 요시에의 『시간』 박현덕 옮김·글항아리·2020

홋타 요시에의 『시간』 박현덕 옮김·글항아리·2020


1982년 일본 정부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범죄를 교과서에서 삭제했다. 아시아를 들끓게 한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이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이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일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이 격렬히 반발한 부분은 ‘난징 학살’을 둘러싼 기록이었다.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2월, 일본군은 국민정부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고 3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자행한 학살은 각종 증언과 사진으로 기록됐고, 현재까지 두 국가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앙금으로 남았다. 일본 정부는 교과서를 수정해 민간인 피해를 전투 중의 우발적인 사고로 치부했고,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30만 명이라는 숫자가 과장됐음을 지적하면서 ‘학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의 일본 소설들은 전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1955년에 발표됐으나 최근 번역된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의 소설 『시간』(글항아리·2020)은 일본 작가가 난징학살을 정면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해군성의 직원인 주인공 천잉디는 타락한 사법관인 형에게 버림받는다. 형 천잉창은 동생의 가족을 외면하고 한커우로 탈출하는 배에 먼저 승선한다. 그러면서 동생 천잉디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집과 재산을 지키라고 명한다. 난징을 탈출하는 배는 고위 관료들과 식솔들만 탑승할 수 있었고, 시민들 대다수는 도시에 남겨진다. 천잉디는 외국인 거주 지역으로 피신했으나 거기에도 들이닥친 일본군은 중국인들을 선별해 100명씩 짝을 지은 다음 강가에 파놓은 구덩이 앞에서 기관총으로 학살한다. 임신한 아내 모처우, 다섯 살 아들 잉우, 사촌여동생 양양과 격리된 천잉디는 시체를 정리하는 노역에 동원된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강가에 버리면서 천잉디는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여 머뭇거리지만, 시신은 끊이지 않고 밀려온다. 마침내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까지 기관총 사격을 받게 됐지만 천잉디는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남는다.

학살 현장에서 도주한 천잉디는 자신의 집을 숙소로 삼은 일본군 장교 기리노 중위의 하인으로 일하게 된다. 점령 이후의 난징은 스파이와 친일파, 비밀경찰들이 뒤섞인 또 하나의 전장이었다. 소수 기득권자들은 친일파가 됐고 대부분은 은밀한 저항의 길을 택한다. 천잉디는 지하실에 설치된 무전기로 일본군의 동향을 한커우의 중국군 정보부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된다. 과거에 대학교수였던 기리노 중위는 천잉디가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지식인임을 알자 친근하게 대한다. 천잉디는 기리노 중위에게 잠시 호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둘은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었다. 천잉디의 아내와 아들은 살해됐고, 겨우 살아남은 사촌 여동생 양양은 일본군에게 강간당하고 마약에 중독된 상태다. 밤마다 천잉디는 지하실에 앉아 무전을 송신하고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그를 더욱 절망하게 만든 건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위생부에 근무하는 천잉디의 백부는 일본군과 결탁해 마약을 팔고, 병원의 의약품을 암시장으로 빼돌린다. 한커우로 피신한 형은 그곳에서도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일본군의 정보를 캐내는 첩자들은 쉽게 회유돼 서로를 감시하는 이중간첩이 됐다. 천잉디는 화가 쿠르베의 그림 ‘보들레르의 초상’을 응시하며 계속 글을 쓴다.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얼마나 무의미한 말인가. 숫자는 관념을 지워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람이 이만큼이나 죽어야만 하는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 목적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죽은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죽을 사람은, 수만 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범죄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최전방에 자원하는 기리노 중위를 보고 천잉디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한다. “교수임을 견디지 못하고, 장교임을 견디지 못하고, 고독함을 견디지 못한다. 흠칫하며 뒤로 빠지려고 한다. 그래서 구석에 몰리면 폭발한다. 이것이 위험한 것이다. 도망과 폭발. 이것이 난징 폭행의 잠재적 이유였던 게 아닐까.”

양양은 상하이에서 치료받도록 해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난징에 남는다. 그녀는 ‘같은 자리에 남아 열심히 뿌리를 움직이는 나무처럼’ 고통을 피하지 않고 현장에 머물고자 한다. 기리노 중위는 파국을 향해 갔던 일본의 불행한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양양과 천잉디는 각기 ‘기억의 윤리’와 ‘역사’를 대변한다.

패전 이후 중국에 억류됐다가 1947년에야 풀려나 귀국한 홋타 요시에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화자의 시점을 중국 지식인으로 전환해 이 소설을 썼다. 극우파들의 비난에 직면한 홋타 요시에는 1974년부터 1977년에 걸쳐 칩거하면서 화가 고야의 일대기를 다룬 4부작 평전 『고야』를 발표했다. 나폴레옹의 에스파냐 침공과 에스파냐 인민들의 처절한 저항,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비극적인 시대를 기록했던 화가 고야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은 『시간』의 주제의식을 확장한 것이다. 1998년, 작고하기 전 홋타 요시에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인용하여 말했다.

“과거와 현재는 자기 앞쪽에 있는 것이므로 보는 것이 가능하지만, 보는 것이 불가능한 미래는 등 뒤에 있다”고. 그러므로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등 뒤의 미래는 없다. 인간은 암담한 미래를 향해 뒷걸음으로 걸어가는 존재이므로.

<이정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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