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동티모르에 전개한 상록수부대 장병들이 현지 지역 주민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방일보 DB

동티모르 상록수부대는 현지 전개에 앞서 호주 북동부 타운스빌에서 약 2주간 현지 적응훈련을 하며 다국적군사령부와 부대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협조를 이어갔다. 동티모르 다국적군 활동을 주도하는 호주의 요청을 반영했던 것. 동티모르에 파견되는 각국 병력을 단계적·체계적으로 작전지역에 투입해 발생 가능한 혼란을 사전 방지하고, 이들의 협조·운영체계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는 조치였다.

최광국 예비역 원사(당시 상사)는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1진 통신운영관이었다. 선발대원으로서 부대 전개의 선두에 섰으며, 현지에서는 부여된 통신 임무뿐만 아니라 부대 지원업무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역할을 했다. 최 예비역 원사가 1999년 10월 1일 당시 호주 타운스빌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통신장비 개통·점검이었다.

“출국 전 인마샛(Inmarsat) 장비를 비롯한 위성통신장비 운용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호주에서 현지 적응훈련을 시작하면서는 제일 먼저 위성통신을 개통했어요. 본국 부대들과 통신 연결을 마치고 가족들과도 잠시 통화할 수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최 예비역 원사를 비롯한 1진 부대원들은 호주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현지 적응훈련과 동티모르 작전 활동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계속해서 점검·확인했다.

“물론 부대원들은 강한 전투력과 정신력, 체력을 지닌 특전 요원들이었지만, 동티모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많지 않아 파병을 준비하며 걱정과 우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현지 적응훈련은 그와 같은 준비 중 미비점을 보완하는 시간이었던 셈이지요.”

특히 동티모르 문화·정세와 현지언어 같은 기본소양을 포함해 교전규칙, 다국적군 접촉 시 행동요령, 도심지역 수색, 매복전투와 같은 전술훈련은 큰 도움이 됐다. 또 호주군과 함께 훈련하면서 그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선취 습득하기도 했다.

약 2주간의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상록수부대는 선발대와 본대로 나눠 임무 지역인 동티모르 동부 라우템 지방으로 전개했다. 라우템 전체를 책임 구역으로 하고, 라우템 중심도시인 로스팔로스에 부대 본부를 두기로 했다. 선발대는 10월 16일, 본대보다 약 일주일 앞서 다국적군 수송기를 타고 라우템 인접 공항으로 이동했고 다시 헬기를 통해 로스팔로스 시가지 외곽 주둔지 부지에 도착했다. 또 일부는 물자·장비를 실은 선박이 입항하는 항구로 전개했다.

동티모르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무장세력과 주민 간 충돌·교전으로 토지는 황폐했고 건물은 파괴된 상태였다.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어디론가 숨어 있는 주민들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생명체가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시가지는 건물들이 모두 무너졌고 곳곳에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또 시가지 외곽에서는 불에 탄 들판과 동물의 사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처참한 상황이었어요.”

주둔지는 과거 인도네시아군 대대가 주둔했던 터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군이 철수하면서 시설 대부분을 파괴해 사용이 불가능했다. 최 예비역 원사와 선발대원들은 주둔지에 천막을 설치해 숙영을 준비했다. 또 연병장에 본대 인원을 수용할 24인용 천막도 20동 설치했다. 아울러 로스팔로스 시내에 주둔 중이던 영국군 소대로부터 책임 지역을 인수하는 동시에 주민들에게는 한국군 주둔 사실을 알리며 협조를 요청했다. 본대가 도착하는 즉시 본격적인 임무 개시가 가능하도록 준비를 이었다.

“한번은 주둔지 인근 비상활주로 주변을 수색·정찰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폭격으로 곳곳이 파괴돼 활주로 상태도 불안정했거든요. 항공기가 내릴 수 있는 상황인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차량을 이용해 시속 120㎞로 활주로를 달렸어요. 최소한 그 정도 속도에서 차량에 문제없다면 항공기 이착륙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상록수부대는 본대가 전개한 직후 주둔지 구축에 전력했다. 우기를 앞두고 있었기에 장기간 주둔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시설이 필요했다. 현지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시작한 주둔지 공사는 11월 20일까지 약 1개월간 계속됐다. 남아 있는 건물 중 일부 재사용이 가능한 것은 구조를 보강하고 내부를 보수했다. 나머지는 철거 후 재설치했다.

그 기간 상록수부대는 주둔지 구축과 함께 초기작전을 병행해 작전지역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치안 유지 작전개념을 구체화했다. 조기에 안정된 치안 상태를 확보·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이후에는 빠르게 확보한 지역안정을 바탕으로 평화유지활동(PKO)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작전을 이어갔다. 복귀하는 난민을 관리하며 잠재적인 위협 요소 제거에 중점을 뒀다. 또 그 과정에서 민사활동에도 신경 써 지역 주민과 신뢰를 쌓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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