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유엔임무단 사령부 내 우리 군 연락사무소의 모습. 사진 제공=김광우 예비역 준장

당시 한 독일군 장교가 김광우 소령의 머리를 깎고 있다. 유엔임무단 사령부의 유일한 한국군이었던 탓에 타국군 장병들과의 교류는 필수였다.

1993년 소말리아 유엔임무단 사령부에는 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온 연락 장교·부사관들이 있었다. 피부색과 생김새는 달랐지만, 소말리아의 평화·재건을 만드는 임무 목표는 모두 같았다. 유엔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친 것. 그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뤄진 교류·협력은 원팀으로서 전장을 함께 누비는 강한 힘이 됐다.

적대세력의 공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오늘 아침까지도 환한 얼굴로 인사를 나눴던 한 외국군 장교가 갑작스러운 포탄 공격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숨을 거뒀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대세력의 위협이 크면 클수록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장병들은 서로를 더욱 격려하며 더 큰 우정을 쌓아갔다. 그들에게 협력이란 전우애를 키우는 원동력이었으며, 유엔 평화유지 활동의 소명을 다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차곡차곡 믿음과 신뢰로 이어졌다. 무장 폭력사태를 끝내고 소말리아에 평화를 심겠다는 오직 하나의 목표가 있었으며, 자국의 명예를 걸고 이 땅에 온 이유가 있었다. 당시 김광우 소령(예비역 육군준장)에게는 그와 같은 우정이 더욱 절실했다. 사령부 내 한국인이라고는 김 소령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군 연락장교로서의 업무와 생활을 오롯이 혼자 해내기 위해서는 타국 군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한동안 혼자서 한국군을 대표해 사령부 내 모든 참모부 업무를 수행했지요. 덕분에 각국 장병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업무 외에 각국 장교·부사관들과 여러 분야에 걸쳐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누고 쉽게 알 수 없는 다양한 수준의 군사 정보를 수집했다. 소말리아 정세와 각국의 군사적 흐름을 시시각각 본국에 보고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군이 정확한 판단과 지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상록수부대가 안전한 상태에서 적극적 임무 수행하는 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묵묵히 한 셈이다. 김 소령이 사령부 내 타국 군과 교류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기본업무 수행에서 그쳤다면 사상자 한 명 없이 완벽히 임무를 완수한 우리 군의 성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타국 군 장병들은 우리나라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국 근무 경험이 있는 미군은 물론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장병들이 이따금 김 소령을 찾아와 한국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김 소령은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과 당시 개최되고 있던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를 소개하고, 우리나라의 문화, 전통, 역사, 음식을 자랑했다.

“외국 장병들은 특히 김치와 라면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음식만큼 서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매개체가 또 있을까? 김치를 먹어보고 싶다며 김 소령을 찾아오는 외국군 장병이 점점 늘었다. 일과 시간 이후 김 소령이 근무하는 한국군 연락사무소 컨테이너는 세계 각국 장병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 소령은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전달했고, 민족의 우수성을 알렸다. 김 소령 역시 타국 군 장병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음을 나눴다. 독일군 장교는 선뜻 김 소령의 머리를 깎아줬고, 인도군 부사관은 자국의 전통 음식을 기꺼이 꺼냈다. 열악하고 부족한 환경에서 서로를 도우며 함께 위험을 헤쳐나갔다. 평화를 만들어갔다.

김 소령의 업무에는 공보지원과 통역 업무도 있었다. 특히 국내에서 찾아오는 취재진을 지원하고 그들이 무사히 현장을 담아 국민에게 소개하도록 도왔다. 여러 신문·방송 매체에서 찾아왔는데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 모 일간지 기자가 취재차 모가디슈에 왔을 때였다. 기자는 모가디슈 시내 호텔에 숙소를 잡았는데, 김 소령은 타국 군으로부터 그 호텔이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낮은 수준의 정보를 들어 기자를 만류했다. 그리고는 기자를 호텔에 머물게 하는 대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사령부 내 김 소령 숙소로 이동시켰다.

“그날 밤 호텔에 폭탄이 터졌어요. 호텔에 있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기자는 무사히 취재를 마쳤고 소말리아 현지 소식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불확실한 정보였지만 작은 정보도 허투루 넘기지 않은 김 소령의 세심함 덕분이었다. 또 평소 타국 군 장병들과 교류하며 신뢰를 쌓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서현우 기자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0209/1/BBSMSTR_000000100138/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