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로드’에서 다뤄볼 수 있는 대형 트레뷰셋.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공성 효과를 자랑한다. 필자 제공

자연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원거리 투척 무기인 돌은 단지 손이나 슬링으로 던져 피해를 주는 개인 병기로만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활의 제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돌보다 더 정확하게 적을 맞힐 수 있게 되면서, 병사들의 숙련도 훈련이 훨씬 더 많이 필요했던 투석병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사람의 숙련도로 대체가 안 되는 거대한 크기의 돌덩이를 날려야 하는 전장의 순간들에서 돌은 여전히 묵직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기계로 대체된 새로운 돌 날리는 방식의 도입이 그것이다. 고도의 훈련을 요구하는 숙련된 투석병의 양성 대신, 보다 무거운 돌을 더 강하고 빠르게 날릴 수 있는 기계적인 방식이 고안되었다. 초기의 투석 무기들은 주먹만 한 돌멩이에서 투사체를 좀 더 무겁고 큰 돌덩이로 바꾸면서 전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좀 더 무거운, 좀 더 멀리…투석기의 발전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사용된 초기형 투석기들은 수십 ㎏에 달하는 무게의 돌덩이들을 원거리로 쏘아낼 수 있는 무기였다. 밧줄을 윈치에 감아 끝까지 돌렸다가 탁하고 풀리는 순간 작용하는 장력으로 나무 지렛대에 걸어 올려둔 돌을 날려 보내는 방식이 초기 투석기인 캐터펄트 류의 방식이었다. 손을 사용하는 슬링에 비해 훨씬 더 무거운 투사체를 날리기 때문에 타격력은 훨씬 더 강해졌지만, 그만한 무게를 날리기 위해 들어가는 페널티도 적지 않았다. 일단 캐터펄트류는 돌을 날리는 힘만큼을 버텨내기 위해 몸체 자체도 무겁고 튼튼해야 했으며, 따라서 투석병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보다는 제자리에 고정된 채 돌을 발사해야 하는 고정형 무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퀴가 달리긴 했지만 이는 투석기의 간단한 이동을 도울 정도이지 빠른 기동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처지는 기동력만큼을 충분한 화력으로 보상해 내느냐 하면 그것도 애매한 부분이었다. 현대의 화약 무기처럼 강한 폭발력을 동반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날아오는 돌을 피하면 그것만으로도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었다(물론 날아오는 돌을 쉽게 피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전장에 늘 들고 다닐 만한 무게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석기는 해체해 운반하다가 적당한 전장 위치를 잡게 되면 그때 조립하여 설치, 발사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기도 했다.



중세의 트레뷰셋:

본격적인 공성(攻城) 병기로 거듭나다

애매했던 초기 투석기는 기술 발전을 거치고 전장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좀 더 의미 있는 무기로 진화하는데, 중세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튼튼해지기 시작한 성채를 바탕으로 수비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투석기의 발달이 대표적이다.

트레뷰셋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투석기는 여전히 고정형이고 건설에만 1주일씩이 소요되는 거대 장비였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설치가 완료되면 그 파괴력은 화약 무기 등장 이전의 여러 무기 중 최강이라 불릴 만한 수준을 자랑했다. 발사대 앞쪽에 매달린 거대한 무게추를 위로 올려 고정시켰다가, 이 추를 낙하시키면서 발생하는 힘을 지렛대의 원리로 발사대에 전달하면 100㎏에 달하는 돌을 200m 가까이 되는 적 성채 너머까지도 날려댈 수 있는 무기가 트레뷰셋이었다.

이만한 무게의 투사체를 그만한 거리로 날려댈 수 있게 되면서 공성전은 본격적으로 성벽을 한번 부숴볼 수 있을 거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트레뷰셋의 용도를 만들어냈다. 단순히 성안의 적 머리 위로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성벽 자체에 물리적 타격을 주어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화약 무기의 등장 이전까지 트레뷰셋과 같은 투석병기들은 돌을 날려 적의 성벽을 부수고 첨탑을 무너뜨리거나, 혹은 불붙인 돌덩이를 던져 화재를 유발하거나, 아니면 역병에 걸린 시체를 성안으로 쏘아대는 생물학전의 형태까지도 가능케 했다.



게임 속의 투석기들:

배너로드 ‘트레뷰셋’과 포트리스 ‘돌탱’

그렇기에 공성전을 다루는 어지간한 게임들에서 투석기는 그리 보기 힘든 요소가 아니다. 중세 공성전을 상당히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는 2020년작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 배너로드(이하 ‘배너로드’)는 적의 성을 포위하면 1차적으로 공성무기 단계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공/방 양측 모두 다양한 투석무기를 건설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캐터펄트의 일종인 망고넬 투석기와 대형 투석기인 트레뷰셋을 지을 수 있으며, 트레뷰셋은 그 파괴력만큼이나 상대적으로 건설시간이 오래 걸려 자칫하면 절반도 짓기 전에 적의 구원군이 몰려와 야전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건설만 되면 사다리로 기어오르다 아군이 쓸려나가는 일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공성캠프를 먼저 건설해야 하는 공격 측은 보다 빠르게 투석기를 건설해 내는 수비 측 돌덩이 세례에 밀려 투석기를 만들자마자 파괴당하는 일도 겪는 어려움을 안고 전투에 들어간다.

인류 역사 전반의 문명과 전쟁을 다루는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는 트레뷰셋이 상당히 흥미로운 형태로 등장한다. 어마어마한 사거리로 어지간한 적의 성채와 방어탑은 사정거리 바깥에서 공격이 가능한 게임에서의 트레뷰셋은 그러나 막대한 1발당 피해량에도 불구하고 실제 트레뷰셋이 가진 단점까지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공격을 위해서는 별도의 조립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평시에는 수레에 실린 부품 형태로 운반되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의 트레뷰셋은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뒤 내려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공격 후 이동에도 마찬가지로 들어가는 동작인데, 이 때문에 트레뷰셋은 움직이는 적의 병력에는 비효율적이며 고정된 방어건물을 부수는 용도에 특화된다. 실전에서의 트레뷰셋 운용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실전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투석무기만 게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지금의 대략 30-40대에게 가장 익숙한 투석무기의 이미지는 나무로 된 바퀴 달린 귀여운 투석기 이미지다. 대포를 쏘는 온라인게임 ‘포트리스 2’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캐터펄트’는 거대한 돌덩이를 고각으로 쏘아 올리며 ‘돌탱’이라는 별칭을 얻었는데, 아마도 오늘날 투석기를 상징하는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로 자리잡혔을 듯싶다.

묵직한 물리량을 쏘아 올리는 투석기의 면모는 화약 무기의 발전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특유의 운용법은 현대의 포병에도 일부분 교리로 계승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훗날 등장하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유닛 ‘공성 전차(시즈 탱크)’가 보여주는 공격 전 공성포 방렬은 트레뷰셋과 같은 투석기의 설치 시간에 대한 교리적 오마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돌보다 더 강력한 많은 것들이 전장 병사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시대지만, 전장 상황 속에서 병기가 갖는 특수성으로 만들어진 운용법은 첨단 무기의 시대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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