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 입은 시민’ 정신 기여하다
지원병제 전환 등 존재가치 위협
지휘부 교육·장병 학습문화 조성
내적지휘 새 사고·협력·대안 소개

독일연방군 장병과 일반 학생이 ‘의회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 독일연방군의 운영철학, ‘인너레 퓌륭(IF·Innere Fuhrung)’ 차원에서 군과 사회의 결속을 위해 중요하게 평가되는 여러 활동 중 하나다. 필자 제공/출처=독일연방군 홈페이지

독일연방군 『내적지휘 연감 2018 (Jahrbuch Innere Fuhrung 2018)』

한국군에는 ‘내적 지휘’라는 개념으로 알려진 독일연방군의 운영철학 ‘인너레 퓌륭(IF·Innere Fuhrung)’이 극단주의, 테러리즘, 사회와의 분리경향, 구성원의 무관심 등으로 존재가치를 위협받고 있다. 『IF 연감 2018』은 발행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분야의 신랄한 비판을 수용하고, 혹독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변혁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을 펼쳐 보인다.



IF의 위기와 재정비

독일연방군의 IF는 역사적 전통과 과오에 대한 반성, 그리고 기본법의 정신에 따라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국가의 원칙들을 군에 정착하고 ‘제복 입은 시민’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운영철학이다. 1955년 연방군 창설과 더불어 시작된 IF는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군사적 활동의 당위성을 제공하고 군을 사회와 결속시키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진작하고 지휘권이 법과 규정에 의해 작용하는 데 크게 기여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국방부는 국방백서를 비롯한 여러 장면에서 연방군의 IF에 대한 자긍심을 표현하고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냉전체제의 붕괴로 새롭게 민주주의 노선을 걷게 된 동유럽의 많은 국가는 독일연방군의 IF를 그들의 군 운영철학으로 적극 도입했다.

그러나 그동안 독일 내부적으로는 IF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빈번하게 제기돼 왔었다. 2011년 연방군의 의무복무제가 지원병제로 전환되고, 해외파병 임무가 안정화 작전에서 전투 임무로 바뀌면서, 연방군의 전투준비태세에 대한 실질적인 점검의 기회를 갖게 됐는데 그 결과는 매우 참담했다. 작전 수행에 요구되는 교육 및 훈련 경험이 부족하고, 전투준비에 소요되는 무기·장비에 결함 내지는 부족함이 식별됐다. 특수전 부대에서는 ‘신나치 스캔들’이 발생하고, 육군의 주력 소총에 심각한 장애가 발견됐으며, 테러 모의 혐의를 받은 장교가 체포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연방군과 제복에 거리감이 커지는 현실을 입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보도되기도 했다. 연방군의 전 구성원에게 공유돼야 하는 IF가 일부 지휘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주장과 전혀 실제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이론으로 치부돼 가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독일 국방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국방 분야 전체에 걸쳐 다양한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 국방부는 이미 2016년 발간된 국방백서를 통해 하이브리드(Hybrid) 위협, 연방군의 회복탄력성, 전략적 역량 등에 대해 논의했으며, 2018년에는 『연방군 구상(Konzeption der Bundeswehr)』을 통해 향후 연방군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런 변혁의 도상에서 독일 국방부는 연방군의 운영철학인 IF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재정비를 시도하고 있다. 매년 발행되는 연방군의 IF 연감은 연방군이 IF와 관련해 어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지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정보들을 제공해 준다.



IF 연감 2018

IF 연감은 2009년 최초로 발행돼 2018년 10주년을 맞았다. 2018년 발간된 IF 연감은 총 4부로 구성됐다.

제1부에는 IF의 현재에 대한 논의들을 실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하자면, 먼저 IF는 연방군이 ‘국가 속의 국가’ 혹은 ‘사회와 분리된 군’의 모습이 아닌 사회의 한 일원으로 결속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구상됐다. 그런데 독일 내부적으로 연방군이 사회로부터 이격되는 추세가 식별되고 급기야 2017년 개최된 유럽의 한 콘퍼런스에서 군복 착용자의 참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최근 30년 동안 언론 매체에서 다뤄지는 연방군에 대한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우세한 듯했다.

한 논문은 IF가 장병들의 훈육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 착안해 실제 장병들의 성격과 품성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봤는데, 젊은 장병들이 ‘내적 지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논문은 IF에 대한 정확한 교육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군인의 책무에 대한 인식과 올바른 군 이미지에 대한 숙고를 제안했다. 또 다른 논문은 연방군이 사회와 통합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단의식이 작동되고 있다고 봤으며, 구 동독군이 서독군에 정말로 성공적으로 통합됐는가에 대한 논의를 제시했다.

제2부는 IF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협력 그리고 대안 제시에 대한 글들을 소개한다. IF 개념에 대한 이해가 계층별로 상이한 문제를 해소하고, 구성원들에게 IF의 목적을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나 있다. 한 논문에서는 연방군의 운영철학인 IF를 유럽의 지휘철학으로 승화시키는 방안을 제시했고, 다른 논문은 IF를 군대사회학적 관점에서 자노비츠의 개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해석했다.

제3부는 군사정책과 전략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된 논문들은 군사정책 차원에서 ‘연방군의 신구상’이 갖는 문제점을 논의한다. 또 전략과 안보정책, 실제적인 위기와 위협의 예측, 전략 개발 전략의 학습, 사고의 오류 등에 대한 이슈들을 IF와 연관해 다루고 있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사회, 국가 그리고 군의 통합에 대한 논의와 파병군인의 생활에 대한 논의가 제시되고 있다.



재정비를 위한 과제들

2018년 IF 연감에서는 독일 국방부가 연방군 운영철학이라는 IF의 위상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의무병제에서 지원병제로 전환한 이후 군 운영상의 문제, 전쟁 양상과 전략 부문에서 안보 국방 정책의 개발과 지휘부의 교육 문제, 제복 입은 시민 개념의 지속적인 개발, 연방군에 대한 미디어 관리, 윤리적인 문제, IF에서 다뤄지는 안보 정치적 이슈들과 관련된 과제들이 논의됐다. 특히 전장에서도 IF가 매우 유용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으며, 실제적인 적용지침이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울러 장병들에게 ‘학습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우리 군에게 주는 시사점

군사적 운용 차원에서 독일연방군을 이끌어 가는 핵심 두 가지는 바로 연방군의 운영철학인 ‘IF’와 지휘원칙인 ‘임무 지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군의 운영철학과 지휘원칙은 무엇인가?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로서 우리의 정신이자 철학이며,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체계적인 그 무엇인가가 있는가? 군 구성원 대다수가 군인복무규율이나 군인복무기본법 등은 법과 규정의 영역이고 정신교육은 공보정훈 분야의 업무라 여기며 리더십은 육군리더십센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한국군도 민주주의 국가 군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군 구성원들이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리더십의 구현 목적과 실천 원칙은 무엇인지, 복지·의무·종교 등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행위 규범은 어떻게 규정돼야 하는지 등 이 모든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운영철학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됐다. 그 새로운 운영철학을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문화, 줄여서 ‘민군문화’라고 이름 지어본다. <김용주 육군사관학교 교수/육군대령>